부타페스트에서 집을 구하기 전 호텔생활을 했다. 학기를 마치지 못한 아이 학업을 위해 오전에는 호텔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옆자리에서 컴퓨터를 켜고 무엇인가를 작성하고 있으니 그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나 보다. 많은 여행객이 드나드는 호텔 라운지에 반나절을 규칙적으로 앉아있는 아이와 엄마라니 그럴 수도 있겠지. 주변 시선에 관심이 적고 싶은 나도 반복적인 사람은 눈에 익었다.
그날은 할머니께서 먼저 다가오셨다.
세련된 백발 커트머리, 따뜻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주스 한 잔 들고 우리 테이블로 오셨다.
“한국 사람이죠? 어째서 매일 이곳에 있는 거예요?”
우리는 관광객은 아니고 아이가 학기 공부를 해야 해서 이곳에 있다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어떻게 이곳에 오신 거예요?” 여쭈어보니 본인의 연세는 80세이지만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다급하게 호칭을 어머니로 바꾼다. 나 왜 그렇게 깍듯하게 굴었을까?
할머니는 본격적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할머니께 아드님이 두 분 계신데 한 아드님이 교수다. 국외 학회 기회가 많은 아드님이 해외로 이동하실 때 할머니도 함께 하시며 세계 곳곳을 관광하신다 하셨다. 다음 달에는 아프리카를 가신다고.
“아드님께서 어머님 적적하지 말라고 함께하시니 좋으시겠어요. 효자시네요”라고 맞장구치니 그렇지만은 않다고 너스레를 놓으신다.
“교수가 벌면 얼마나 벌겠어. 학교에서 나온 비용으로는 이 호텔에 머무르지도 못해. 내가 다 보태는 거지. 여기 호텔은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지? 우리는 얼마 전에 포oo에서 머물렀는데 그곳 청결상태가 최고야. 화장실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고 사용하자마자 청소해 줘. 얼마나 청결한지 몰라. 교수 월급으로는 먹고살기가 팍팍해. 알지?”
그러면서 할머니의 재력과시가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한강변이 보이는 40평대 아파트에 거주하신다.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유산으로 풍족하게 지내신다고 하셨다.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니 증여세가 아까워 살아계신 동안 어떻게든 쓰고 가시려고 한다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 부부에게 한강변 집도 마련해 주시고 적당히 가까운 듯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신다고. 한강변에 삼대가 모여산 다니. 말로만 듣던 부자시구나 싶었다. 그리고 할머니 이야기 중 형편이 좋지 않은 동생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나에게는 그 동생의 집조차 나는 엄두가 나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야말로 그들의 세상에 사시는 할머니시구나 싶었다.
부자 할머니의 넘치는 부유함이 탐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 보다 주스 한 잔 들고 오셔서 서슴없이 말을 거는 붙임성과 여유로움이 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타고나기를 저런 성향이 없어. 저런 성격은 내가 아니야' 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저런 건 내가 아니니 굳이 노력을 할 필요 없잖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것 같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사교적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었나 보다. 그것을 무시했었나 보다.
마음속 욕망을 더 깊이 들여다보자면 할머니 보다 할머니가 이미 관계를 맺은 다른 모녀 투숙객과 함께 대화하고 싶었다. 우리와 같이 그 호텔에서 매일 조식을 먹던, 현지에 이미 적응해 보이는 모녀가 있었다. 나는 그 엄마에게 이곳 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었다. 한마디를 해도 나와 같은 또래로 보이는 그녀와의 대화가 더 유익하고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모녀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럴 용기가 없었다. 쑥스러웠고 부끄러워서 타이밍을 놓쳤다.
마음속에서 지금이라도 가서 인사를 할까. 말을 붙여볼까. 내 소개를 해볼까 전쟁이 일어났다.
그날이 할머니가 머무르시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아는데,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한다.
마음속에 있었던 갈등은 '원래의 내가 아니야, 나랑 어울리지 않아' 라는 자기 위안을 통해 사라졌다.
할머니에게 진정 부러웠던 것은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시도해 보시는 행동력이었던 것 같다.
다음날은 놀이터를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야외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도 놀이터 생활을 했고 지금도 놀이터가 보이면 한나절을 논다. 작은 아이들 사이에서 덩치 큰 아이가 혼자 노는 것이 안쓰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소환하면 힘에 겹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한국 친구. 덩치도 제법 딸아이와 비슷해 보이는 동성친구다.
엄마들 사이에는 흔한 일. 놀이터 가서 엄마들이 안면을 트면 아이도 친구가 되는 상황.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 연령에 있을 수 있는 아이 친구 만들어 주는 방법 중 하나. 그걸 해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하기 싫었던 그 역할. 한편으로는 조금만 크면 알아서 사귈 텐데 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안했고.
그걸 해외에 와서 해본다.
두근두근 말을 걸까 말까 여러 번 고민하다가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시죠? 아이 연령대가 비슷하니 같이 놀면 좋을 텐데요.
몇 학년이에요? 여행 오셨어요?”
그걸 해낸다. 아이는 알까? 엄마가 이렇게 마음속으로 요동치는 전쟁을 하고 행동했다는 것을.
아이들이 서로 인사하고 나이를 알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제 엄마를 부르지 않는다. 또래가 그립기도 했겠지. 덩치가 비슷한 친구와 그네도 탔다가 미끄럼틀에도 올랐다가 정글짐으로 옮겼다가. 아이의 시선이 엄마에게 머무르지 않는다. 놀이터에 어린이가 많지만 둘만의 놀이터가 된다. 혼자 타는 그네가 아니라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는 나만 느낀 것일까? 말을 많이 나누지 않아도 같이 이동하면서 함께 노니 기쁘다.
이건 아이보다 나의 기쁨이고 성장이다.
이 어려운걸 내가 타지에서 하다니. 나 스스로도 감동이다.
문득 라운지에서 만난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와의 대화를 나눈 경험이 나를 용기 내게 한 것일까?
할머니의 여유로운 경제생활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줬던 것이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감사했다.
이러다가 나중에 외국인 엄마한테도 말 거는 거 아니야?
용기가 급발진하다 내 중심으로 다시 돌아온다.
예전의 나라고 생각했던 내성적인 나를 부정할 일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다가가는 나를 무턱대고 환영할 일도 아니다.
나를 그 어떤 정해짐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
다만, 스스로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용기 내어 행동해 본 것을 칭찬한다.
다른 사람과 관계 안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배울 수 있도록 생각해 본 것을 칭찬한다.
할머니 한강변 아파트에서 오래오래 행복하시고
아드님과 말 잘 듣는 며느리, 손녀들과 여행 많이 다니면서 건강하세요.
저희 큰집 구하면 할머니께서 월세 내시며 머무르시고 싶다고 하셨었는데 남는 방은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할머니께 배운 것이 많아 다시 만나면 따뜻한 밥 한 끼 꼭 대접해드리고 싶네요.
건강하세요 할머니^^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