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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이 Aug 23. 2024

어머니와 막내딸(5)

또 다른 이별의 시작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작은방에는 하얀 광목천으로 제청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아버지 사진을 놓아두고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올렸다. (상식은 돌아가신 부모님께 밥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며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일 하다가 얼마동안 기간이 지나고 나서는 아침저녁으로 그다음에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만 지냈다. 우리들과 똑같은 밥상이었고 우리들이 먹기 전에 먼저 아버지께 드리고 나중에 우리들이 먹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3년상을 지내고 탈상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언니 병은 점점 더 안 좋아져서 우리 집에서 조카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언니는 오래전부터 결핵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조카들은 엄마와 우리들이 돌봐 주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집안일도 도와드리고 어떤 날은 학교에서 곧장 밭으로 갈 때도 있었다. 밭에서 일하시면서 엄마가 부르시던 노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나는 엄마가 이 노래를 부르실 때면 슬퍼서 부르시는 노래라고 생각하며 옆에서 따라 불렀다.

 겨울에 땔감이 없어서 가을에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기도 했다. 소나무에서 떨어진 솔잎을 갈퀴로 긁어모아 차곡차곡 단을 만들어 새끼로 묶어서 머리에 이고 오는 것이었다. 엄마 혼자만 해오면 거리도 멀고 힘이 드니까 나도 나뭇단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도 머리에 이고 갈  수 있으니 해달라고 해서 엄마가 작게 꾸려 놓은 나뭇단을 내 머리 위에 올려주고 엄마는 언덕을 찾아서 그곳에 큰 나뭇단을 세로로 세워 놓고 머리에 이었다. 어느 때는 내가 엄마 머리에 이을 수 있게 거들어 드렸다. 집에 오다가 힘들어서 중간에 쉬기도 하고 내 나뭇단을 엄마가 다시 포개서 이고 오실 때도 있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우리들은 같이 생활을 하다가 작은오빠는 목장으로  넷째 언니는 동네 어린아이를 봐주다가 언니는 다른 목장으로 가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게 된 오빠와 언니 또 결혼한 오빠와 언니들은 걱정이 없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더 걱정이었다.

나도 돈을 벌러 갔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학교를 다녀야 해서 어머니가 걱정을 하신 것이었다.

어머니도 돈을 버셔야 하는데 내가 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조카들과 생활하기 힘들어하는 아픈 큰언니한테 나까지 맡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몇 년 전에 돈 벌러 나가시면서 큰오빠와 큰올케언니한테 아버지 작은오빠 넷째 언니와 나를 맡겨두고 가셨었다. 그런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오빠네 내외만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갔다. 그 오빠한테 나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우리들하고 같이 살기 싫어서 나갔는데 또다시 내가 가게 되었다. 나도 가기 싫었지만 학교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큰오빠가 살고 있는 두메산골로 전학을 오고 어머니는 동네 형님 아우 하면서 지낸 먼 친척 아주머니 아들네 가게에서 주방일을 도와주셨다.

 친척아들 오빠네는 살기가 넉넉해서 우리가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어머니가 일도 많이 거들어 주셨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 이야기는 꼭 들려주고 싶다.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셔서 형님이라고 부르셨고 아주머니는 어머니보다 연세가 많으신데도 꼭 어머니께 형님이라고 부르셨다. 아버지 나이를 따라서 그리 하신 것이었다. 얼마나 친하셨는지 하루저녁엔 아버지와 아저씨는 우리 집에서 계시다가 밤에 아저씨가 가실 때 아버지는 바래다주신다고 따라가셨고 아저씨네 집에 다가서는 형님 혼자 어떻게 가시냐고 내가 모셔다 드린다고 다시 우리 집으로 오시고 그러면 아버지는 또 아우님 혼자 어떻게 가냐고 내가 바래다준다고 하셨고 그렇게 밤새도록 아버지와 아저씨는 양쪽집을 왔다 갔다 하시다가 날이 훤하게 밝았다고 했다. 그 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였지만 아버지의 걸음으로는 10분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친척 오빠네서 벌어 내 학비와 생활비를 조금씩 도와주셨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조카를 봐주면서 힘들게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큰 오빠가 갑자기 큰 언니가 살고 있는 우리 집으로 다시 이사를 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 속이 상하고 슬퍼서 울었다. 전학을 와서 겨우 친구들과 지내게 되었는데 또 전학을 가면 나는 고향친구들한테 창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언니와 조카들이 살고 있는데 오빠네가 가면 언니와 조카들은 또 어디 가서 살라고 왜 다시 그 집에 가서 산다고 하는지 그때는 몰랐었다. 결코 한집에서 다 같이 살 수가 없는데 혼자서 이런저런 걱정을 했었다. 또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결국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아버지의 그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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