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었다.......
그 뒤로 혼자서 병원을 몇 번을 더 다녔다. 그러나 좋아지는 것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잊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만큼 힘든 것도 없었다. 내 병은 내가 안다고 고집이 세서 그런지 병원에서도 닫힌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날마다 의미 없는 생활을 해 나갔다. 꼭 해야 할 일 할 말만 하고 필요 없는 말이나 농담도 할머님께는 하지도 않고 또 내가 먼저 할머님께 말을 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여기서 나가면 갈 곳도 없고 어느 한 군데 마음 둘 곳이 없었다. 할머님은 계속 화재사건으로 나를 괴롭히셨고 오히려 할머님보다도 더 괴로운 것이 나라는 것 정말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할머님이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속이 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은 할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책임지고 모시고 있겠다는 마음도 잊어버리고 할머님도 내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고 없어지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모든 것은 거기에 맞춰서 생각을 하고 말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고 생각을 했다. 나의 온 마음은 이제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살아서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죽어서 행복하고, 살아서 싫은 사람이 있으면 죽어서 좋은 사람이 있고, 살기를 원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살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죽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렇게 모든 말들을 반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한결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옷가지를 정리를 하고 집안 대청소도 하고 냉장고며 구석구석 더 깨끗하게 정리를 해두었다. 또 할머님 반찬도 시장에 가서 좋아하실 만한 걸로 몇 가지 해두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옛날에 그 아파트는 옥상문이 다 개방이 되어서 가끔 답답할 때 한 번씩 올라가서 구경을 했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다른 상황이었다. 지금은 내가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앞도 뒤도 옆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한 길 밖에 보이지 않았다. 옥상에 올라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 참 넓고 좋은 밤 경치였다. 내일이면 이런 것도 다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그리고 어느 한 난간에 가서 밑을 보니 또 다른 난간이 있었다. 옥상베란다처럼 난간이 하나 더 있었다. 일반 옥상에서 떨어지면 바로 땅바닥으로 추락이 되는데 여기는 옥상에서 떨어지면 바로 난간이 하나 더 있어서 바닥이 아니라 옥상 베란다 난간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한 칸 더 밑으로 옥상베란다로 내려갔다. 가서 얼마나 엉엉 울었는지 모른다. 정말 이 길밖에 없는지 그래도 다른 건 다 괜찮았다.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는 것이고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마음에 엄마가 걸렸다.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보면 엄마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마음이 아프실까 얼마나 슬퍼하실까 더구나 그 애지중지하던 딸 아파서 죽어가는 딸을 수발들면서 다시 살려 놨는데 객지에서 이렇게 못 살고 죽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생각하니 눈물만 쏟아져 나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딸이 꽃다운 나이에 살지 못하고 죽었으니 얼마나 창자가 찢어지게 아플 것인지 생각하니 나는 눈물밖에 흘릴 것이 없었다. 아파트가 떠나가라 엄마가 돌아가신 것보다도 더 서럽게 엉엉 울었다. 아래를 쳐다보고 또 엄마를 생각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엄마를 두고 모진마음을 먹지 못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 애틋하고 내 마음이 여려서 엄마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아플 때 말고는 속상하게 해 드린 일이 없었는데 이 일로 엄마가 평생을 힘들어할 것을 생각하니 쉽게 행동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 옛날 큰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엄마가 우리들 모르게 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옥상난간에서 얼마나 울고 있었는지 내 울음이 스스로 지쳐 사그라졌을 때 누군가 옥상에 올라온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난간에 바짝 엎드려 숨어 있었다. 경비아저씨가 점검차 올라온 것 같았다. 그때서 나도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그 난간에서 올라오려는데 조금 높아서 그런지 잘 되지 않았다. 내려갈 때도 내 키보다 조금 깊어서 간신히 내려갔는데 올라올 때는 더 힘이 들었다. 까치발을 하고 손은 있는 힘껏 옥상난간을 붙잡고 발로 벽을 버티고 낑낑거리며 어떻게 해서 간신히 올라왔다.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한 일이었다. 하마터면 올라올 때 잘 못해서 실수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정작 죽고 싶어서 갔지만 죽지 않았고 잘 못해서 떨어져 죽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고 끔찍한 일이지만 나는 그 밑 난간을 어떤 마음으로 내려가서 어떤 용기로 올라왔는지 아직까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