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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공 Apr 20. 2020

일하는 삶과 그 고단함

[서평] 김혜진, <9번의 일>

  이른 아침, 잠이 채 깨지 않은 상태로 출근 준비를 하면서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을 생각한 적이 있다.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켜 세워 몽롱한 정신으로 채비를 하고, 아침밥을 욱여넣는 시간. 퍽퍽한 밥을 꾸역꾸역 씹으면서, 벌기 위해 이걸 삼켜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깨고 싶지 않은 잠에서 깨어야 하는 일. 먹고 싶지 않은 밥을 먹어야 하는 일. 살려고 하는 노동인데, 내 삶은 어디에 있는지. 발 딛고 온전히 서 있는 기분이 아닌, 허공에 매달려 사지를 버둥거리는 비참함이랄까. 일로 나열된 쉼표 없는 생활 속에서 가빠지는 호흡으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안부를 소홀히 하는 것, 친구의 아픔을 못 본 체 하는 것, 동료들의 이야기에 무관심해지는 것, 그리고 망가져가는 내 몸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먹고 살려면 으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혹은 사는 게 원래 이런 거라는 반쯤은 체념한 목소리로 의심 없이 보내오던 일하는 삶. 그렇지만 우리는 '일'과 '노동' 이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것을 묵인하고 지내왔을까. 웃음과 애정을 지우고 불신과 미움으로 채워왔던 나날들.  시간이 갈수록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지고, 흐릿해지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과 그 생경한 느낌이 싫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온갖 이유로 놓아버릴 수 없었던 ‘일’. 노동하는 삶은 이렇게 처참할 수밖에 없는 건가. 퇴근길 적막한 거리에서 씁쓸하게 흘려보냈던 웃음이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 <9번의 일>이다.




<9번의 일>, 김혜진, 한겨레출판


  그는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며 26년간 일해왔다. 작았던 기업이 커가는 과정에 자신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을 은밀한 자부심으로 느끼는 ‘그’이지만 현실은 냉혹한 수치의 세계. ‘저성과자’로 분류된 ‘그’는 회사의 지속적인 퇴직 권유와 압박에 시달린다. ‘저성과자’ 교육에 이어 계속되는 업무변경과 업무지 변경. 본사 현장팀 소속에서 영업 부서로, 지방 소도시의 시설팀으로, 업무지원단으로, 마지막은 통신탑을 설치하는 하청 업체로 발령을 받는다. 하지만 26년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직무로 자신을 내던지는 회사를 보며, 회사를 탓하기보다는 본인의 무능함과 미련스러움을 자책하는 ‘그’이다. 그렇게 먹고 살고자 하는 일이 고되어지고, 힘들어질수록 ‘그’의 생활은 이상하게 일그러진다. 아내 ‘해선’과의 대화는 미끄러지기 일쑤이고, 아들 준오의 생활에 대해서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동료들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직책 혹은 관할구역으로 호명된다. 통신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승강이를 벌이며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그’는 자신이 점점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선뜻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그건 단지 생계라는 얄팍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20년이 넘는 자신의 삶이 담긴 곳, 그리고 그 지난한 세월 동안 쌓아온 회사에 대한 유대감과 소속감, 동질감 따위의 것들이다. 덧붙여 익숙해진 일에서 과감하게 탈피할 수 없는 관성. ‘그’가 노동을 통해서 겪는 핍진한 삶이 정신적인 것이라면 육체적으로 말라가는 인물들도 있다.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수술을 받은 아내 ‘해선’, 목수 일로 무릎이 성치 않은 ‘장인’, 추락사고로 다리를 절뚝이는 ‘3번’. <9번의 일>은 일이 가져다주는 고단함, 살아보겠다는 인물들의 의지가 강할수록 서로를 소외시키고 모른 체하는, 노동의 비극적 단면을 보여준다.




  <9번의 일>은 작가 김혜진이 통신회사 노동조합을 취재하고 쓴 글이다. 작품 내에는 직원에게 사퇴를 종용하는 회사와 그에 저항하는 노조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따라서 자칫하면 이 작품이 부당한 회사와 억울한 노동자의 이야기로 읽히기 쉽다. 하지만 작가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을 통해 잊혀지고 파괴되는 우리의 일상이다. 생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그러진 삶과 개인들. 생계를 위해 안온한 삶을 내놓아야 하는 노동의 아이러니. 작가는 일하는 삶의 이면에 감춰진 고통을 조명한 것이다.

     

캄캄한 산길을 오르는 동안 그는 아이를 생각했다. 몇년 뒤면 준오도 자신의 일을 갖게 될 거였다.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어떤 일을 발견하게 될 거였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일이 되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지 알게 될 거였다.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버리는지 깨닫게 될 거였다.
(김혜진, <9번의 일>, 한겨레 출판사, P. 252)



*커버 이미지: <조용한 오후> 최다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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