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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공 Sep 04. 2020

[서평]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재기발랄 퇴마사 이야기

  보건교사. 교사라기엔 교육적 소임이 막중한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의사라기엔 다룰 수 있는 질병이 한정적인 자리. 그저 복도 한 편에 자리한 보건실에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선생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그렇지 않을 때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다소 소외되는 선생님. 그래서 고요하고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도 깃든 자리.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민음사

      

  하지만 사립 M고의 보건교사는 어딘가 다르다. 학생들의 방문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행여나 사건이 생길까 봐 학생들 뒤를 쫓아다니는 그녀. 문제가 생기면 이 선생 저 선생 붙잡고 도움을 청하는 보건교사. 안은영은 학교에 있는 매 순간, 미어터지는 일복으로 하루가 모자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데, 그것은 액토플라즘.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가는 안은영은 죽은 것들에 맞서 산 사람을 지키기 위해 고단한, 그러나 가끔은 보람 있는 삶을 받아들인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장난감 총과 무지개색 칼을 들고 다니는 것은 조금 모양이 빠지지만, 딴에는 쏘고 찌르고 피하며 굉장히 치열한 전투를 치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사악한 것들로부터 학교를, 아이들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교사로서 학생 보호 의무를 누구보다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그녀의 남모를 분투기. 어딘지 엉뚱하기도, 엉성하기도 하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보건교사의 등장이다.

      

  어둡고, 음침하고, 으스스한 퇴마 혹은 심령술사 소재를 이토록 재기발랄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그것은 영원히 음지에서 다뤄야 할 것을 너무나도 손쉽게 양지바른 곳에 널어버린 것 같아 헛웃음마저 유발하는 발상의 전환이랄까. 작가의 말 초입에 적힌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라는, 쾌감을 향한 작가의 비장함은 명징하게 성공했다. 쾌감을 작정한 작가는 이토록 위험할 수 있다.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할 정도로.

      

  정세랑 작가는 오로지 쾌감만을 생각하고 썼다지만, 작품 곳곳에 배어 눈길을 잡아끄는 삶에 대한 작가의 가벼운(?) 통찰은 소설을 읽는 묘미이다. 나아가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안은영을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곳곳에 묻어나는 정세랑 작가의 역사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주목하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키워 보는 것도 좋겠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느껴진다.

      

  어쩌면 이야기 본연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재미를 필두로 하여 생생한 인물과 사건으로 구성된 <보건교사 안은영> 10개의 에피소드는 시들해진 상상력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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