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이지만 괜찮아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생물학의 관점에서 거대한 시각으로 엮어냈다. 현생 인류는 45억 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 행성에 약 20만 년 전에 나타났다. 그리곤 어떤 생물 종도 달성하지 못했던 거대한 사회를 형성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생물학의 관점에서 하나의 큰 질문을 던진다. 생태계 피라미드 중간층에 속했던 하나의 생물 종 사피엔스는 어떻게 지구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을까.
그는 인류문화가 발전해온 과정을 세 가지 혁명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약 7만 년 전에 일어난 ‘인지혁명’, 약 12,000년 전에 발생한 ‘농업혁명’, 불과 500년 전에 일어난 과학혁명이 그것이다. 세 가지 혁명을 통해 유발 하라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수많은 인간 개체가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었던 동인이다. 생물학에서는 나름의 언어를 가진 하나의 생물 종이 협력할 수 있는 최대 개체 수를 150마리라고 본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약 7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일종의 보편적인 질서 아래에서 인간사회를 형성했다. 자연 생태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개체 수가 응집력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지구 최상의 포식자가 된 데에는 이 집단적 협력이 주요했다고 본다.
사피엔스의 번영을 설명하는 데 그가 주목한 것은 인류학에서 일반적으로 중요시하는 언어의 발명이다. 다른 생물 종보다 체계적인 언어를 만들어낸 것.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공동체 형성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한계, 개체 수 150마리를 뛰어넘기 위해 인류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했다고 본다. 그건 바로 ‘상상의 질서’를 창조해 낸 것이다.
인류는 평등, 자유, 종교와 같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질서를 구축했고 이를 믿음으로써 집단적으로 협력할 수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으면서 형성한 사회. 그것이 인간 사회인 것이다. 이때 인간이 창조한 상상의 질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응집시켰는데, 유발 하라리는 세 가지 상상 속 질서에 주목한다. 화폐, 제국, 종교.
저자는 화폐 질서와 제국의 질서, 그리고 종교의 질서를 기반으로 인류가 지구적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이 세 가지 질서가 보이지 않는 기둥으로 혹은 연결망으로 어떻게 인간사회를 지탱하고 연결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일상에서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숨은 질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을 통해 보다 견고한 상상의 질서를 구축해온 인류는 이제 과학혁명을 일으키는 중이다. 인류의 목적은 영생. 과학자들의 시각에서 죽음은 더 이상 인간 삶의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니다. 현재 우리에게 죽음은 단지 기술적이고 과학적 문제일 뿐이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죽음도 초월하는 존재를 만들어 낼 것이다.
현생 인류의 20만 년 역사를 집약하여 해석한 유발 하라리의 견해는 흥미롭다. 특히, 이것은 역사학에 가깝지만, 주장의 많은 부분이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뢰가 간다. 생물학과 역사학의 융합.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은 우리 인간 삶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는 것 같다. 특히 생물학과 뇌과학의 영역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많은 해답을 주고 있다. 하지만, 20만 년이라는 우리의 역사를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사료가 충분하지 않아 밝혀낼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과감히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라고 인정한다. 나아가 저자는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학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견해를 함께 소개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 것일지라도 다양한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게 한다.
지식의 밀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쉬지 않고 지적 쾌락을 가져다주는 책인 것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