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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공 Oct 23. 2020

[서평] 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

특색있는 에세이

  시중에 많은 에세이 책들이 나오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글에서부터 저자가 활동하는 전문영역에서의 경험을 나누는 글까지. 에세이의 스펙트럼은 넓다. 하지만, 시중에 출판된 에세이를 주욱 훑어보면 에세이 작가의 다양성이 무색할 정도로 특색있는 에세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힐링’이라는 용어가 화두가 된 이후부터였을까. 에세이 책들은 왠지 모르게 한결같이 따뜻한 말과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획일화되어가는 듯하다. 거기에 반복되는 미사여구의 나열은 자칫 지나친 감정 과잉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불편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 웅진 지식하우스

  하지만 허지웅의 작가의 이번 책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작가가 어떻게 차별화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지 보여준다. 먼저 주목할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작가는 세상을 마냥 낙관적으로 바라보지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다소 냉소적인 시선에서 삶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거리를 유지한 채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덕분일까. 이 책은 많은 에세이 책들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이야기에 대한 강박에서 탈피했다. 독자에게 억지로 감동을 전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에 담백하다.

     

  다음의 묘미는 곳곳에 등장하는 철학적 인용이다. 자신이 경험한 삶을 니체, 쇼펜하우어, 데카르트의 철학적 사유 안에서 재해석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에세이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일조한다.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들의 어려운 이야기로 다가오던 철학이, 얼마나 멋지게 우리 삶에 녹아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 많다.

     

  영화 평론가로 오랜 기간 활동했던 저자의 이력이 잘 살아있는 책이기도 하다. 글의 곳곳에서 다양한 영화 제목과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사실, 하나의 이야기에서 영화, 드라마, 다큐와 같은 다른 이야기를 참조할 때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독자가 감상하지 않은 작품을 무턱대고 언급할 경우 독자는 글의 맥락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언급하는 영화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해석을 달아놓았다. 영화 이야기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도리어 해당 영화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허지웅 작가가 암 투병을 극복하고 나서 펴낸 책이다. 그래서 일종의 암 투병기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구매했지만, 본인의 병에 대한 언급은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으로서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진솔한 이야기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모로 작가의 개성과 특색이 묻어나온, 정말 좋은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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