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달살기, 언제 갈까?

by 도리


솔직히 말하자면 제주에 가기 제일 좋을 때는 봄과 가을이다.

봄의 제주는 생기가 넘친다. 육지의 봄이 겨울에게 붙잡힌 발목을 질질 끌면서 오는 동안 제주의 봄은 진작에 겨울로부터 벗어나서 폴짝폴짝 뛰어오는 듯 하다. 노랑이 만발한 유채밭을 지나 벚꽃이 가득 흩날리는 2차선 마을 도로를 달릴 때는 입가에 미소가 비질비질 새어나오고 가슴 속에 행복이 피어오른다. 벚꽃이 지더라도 아쉬워할 틈이 없다. 곧바로 수국의 차례가 오기 때문이다. 둥근 부케 같기도 하고 생일 파티용 풍선 같기도 한 수국이 두둥실 무리지어 피어나면 들뜬 마음도 파스텔빛으로 물든다. 언젠가부터 너절한 봄의 전령이 되어버린 미세먼지 폭풍도 제주만은 비껴갈 때가 많아서 운좋게 제주에서 봄을 보냈던 때는 수시로 미세먼지 어플에서 집과 제주의 수치를 비교해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가을의 제주 또한 만만치가 않게 좋다. 억새로 유명한 새별오름이 아니더라도 저녁무렵 가을 햇빛을 받은 모든 풀무리들은 자신이 간직한 최고의 모습을 뽐낸다. 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땅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봄과 여름 동안 무섭게 습기를 뿜어냈던 식물들이 잠시 숨을 가다듬는 때가 되면 쾌적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날들이 이어진다. 봄과 가을,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역시 못고르겠다. 봄과 가을 둘다 정말 최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아이를 데리고 와야하는 입장에서는 봄과 가을은 둘 다 선뜻 선택하기가 어려운 시기다. 기관이나 학교를 빠지는데 부담이 없는 용자라면 몰라도 나와 당신,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용맹하지는 않으니까. 소심한 보통 부모들이라면 으레 여름방학이냐, 겨울방학이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여름 한달살기의 장점은 물놀이를 실컷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각기 색이 다른 바다를 날마다 바꿔가며 풍덩풍덩 빠지고, 게와 작은 물고기를 잡고, 햇볕에 달궈진 파라솔 아래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는 날들의 즐거움은 각별하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여름 제주의 장점이 별로 없다고 말하면 좀 의외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의 여름 기온 자체는 육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습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서 물속을 걷는 듯 느껴질 만큼 습한 날들이 며칠씩이나 이어지기도 한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제습기를 쉴새없이 돌려대도 부족해서 보일러까지 틀어둬야 하는 상황이 된다.

여름에는 모든 비용이 일제히 크게 오른다는 점도 아쉽다. 숙소비용, 비행기 삯, 편의시설 등 모든 비용이 두배 가까이 오르는 일이 허다하다. 거기다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한가하고 여유로운 한달살기를 꿈꿨다면 조금 다른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관광객은 일정한 장소에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시간대나 장소를 피해 다니는 것이 가능은 하겠지만 어쨌든 신경쓸거리가 하나 늘어나는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제주에서 여름 내내 물놀이’라는 장점이 상당히 압도적이고 기타 열겨된 단점들이 여름 휴가지들이 대부분 공통으로 갖고있는 것이므로 여름 제주는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다.

겨울 제주는 눈놀이가 하이라이트다. 제주의 설경은 육지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풍경이다. 눈이 많이 온 날은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에 말 그대로 굴러다니며 놀 수 있다. 그런데 겨울 제주에서는 그것 말고도 할 일이 제법 많다. 꽃놀이와 눈놀이가 하루코스짜리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한라산쪽으로 올라가 겨울내내 눈이 녹지 않는 곳에서 눈썰매를 타고 내려온 뒤, 고기국수 한 사발씩 때리고 소화시킬 겸 유채꽃밭을 걷는 것이 제주에서는 일상이다.

제주의 겨울은 걷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바람만 잠잠하다면 오름을 오르고 올레길을 다니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최근에는 겨울 방학에도 성수기 요금을 요구하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여름보다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 한달살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아이들의 방학일정까지 고려하면 겨울이 더 낫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에 있는 약 2주간의 등교기간 동안만 체험학습신청서를 낸다면 한달이 아니라 두달살기에도 너끈한 일정이 만들어진다. 요즘에는 겨울방학을 조금 늦게 시작하는 대신 따로 봄방학을 두지 않고 3월 개학까지 길게 쉬는 학교도 많다. 그 경우에는 따로 체험학습신청서를 낼 것도 없이 여유로운 일정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 한달살기하기에 가장 적당한 때는 바로 당신의 일정이 가능한 바로 그 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계절마다 각기 다른 장점과 매력이 있으므로 한달살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한 계절을 고집하기보다는 일단 되는대로 도전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일단 가능한 일정에 맞춰서 와보고 또 다른 계절에도 오고 그러면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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