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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양세계 May 07. 2023

힘들게 몸을 굴린 날엔 굴림만두를

썰렁한 개그일 수도 있지만 몸을 힘들게 굴린 날엔 굴림만두가 제격이다. 운동을 5시간 가까이 한 날이 있었는데 무려 천 칼로리 정도를 소비했다. 엄청나게 혹사당한 몸을 이끌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집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길에 우연히 굴림만두 가게를 발견했다. 

나는 평소에 친구와 만두 원정대를 결성해서 만두 맛집 도장 깨기를 하러 다닐 정도로 만두에 진심인 사람이다. 그동안 먹은 만두로는 개성만두, 복어 만두, 러시아 만두, 몽골 만두, 교자, 소룡포 등등 다양하지만 부끄럽게도 그때까지 굴림만두라는 것은 먹어보지 못했다.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일반 만두와 어떤 점이 다를지 궁금해서 그 가게에서 고기 굴림만두 한 팩을 포장해서 집에 왔다.


만두에 어울리는 술은 맥주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왠지 달콤한 술을 마시고 싶어서 스파클링 와인도 한 잔 따랐다. 톡 쏘는 탄산이 있는 달착지근한 와인에 짭조름한 굴림만두는 정말 잘 어울렸다. 동글동글한 만두를 입에 넣고 살살 굴리다 보면, 펑 하고 터져 나오는 고소한 육즙이 탄산의 바다에 섞여 황홀한 맛의 심포니를 만들어 낸다. 마치 폭죽놀이를 보는 것 같은 환희가 입안에서도 터진다. 풍미의 바다가 온 미각을 흠뻑 적시고 나면 자연스럽게 입에서는 탄성이 새어 나온다. 아, 맛있다!


굴림만두의 생김새는 프라이팬에 부치기 전의 동그랑땡의 소와 닮았다. 굴림만두의 투명한 감자 피는 일반 만두피와 다르게 소화도 잘되고 만두피의 밀가루 맛에 방해받지 않고 맛있는 소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쏙쏙 한 개씩 집어먹기 좋고, 밀가루가 적어 소화도 잘되고,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소로 단백질도 보충할 수 있어서 운동한 날에 제격이다. 굴림만두의 투명한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고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을 수 있다. 속을 알 수 있는 투명함에서 오는 신뢰가 있다. 


투명함을 따지자면 나는 불투명함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싶다. 완전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나를 그대로 내보이는 게 뭔가 쑥스럽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사춘기 이후로 그림자처럼 쭉 함께 자라 지금의 나는 수줍음이 많은 어른이 되었다. 나를 내비치는 일에 조심하며 살아왔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어느 정도 보여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안전하게 느껴지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니 이 정도는 보여줘도 괜찮다는 걸 느끼며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어느 정도 드러내는 편이 아무래도 얘기하기 더 즐겁다. 나 역시 속을 아예 알 수 없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보이는 사람이 더 대화하기 편한 것 같다.


옛날에는 왜 사람들은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할까, 진짜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서 얘기하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지금은 왜 그런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처음부터 자신의 안방 문을 열어젖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다들 마당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서 이야기하며 어느 정도 신뢰를 쌓은 다음에 문을 하나씩 여는 것일 테고, 그런 잔잔한 신뢰를 쌓기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안전하기에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나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관계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도 닫아두는 문이 있을 테니 말이다. 관계마다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 다를 수도 있다. 그래도 투명함이 주는 매력을 알기 때문에 좀 더 자연스럽게 나를 드러내는 일에 용기를 가지고 싶다. 아직은 불투명한 밀가루 만두피지만 조금씩 나를 개방하다 보면 점점 투명한 감자 만두피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굴림만두를 접하고 나서 내가 아는 만두의 세계가 더 넓어져서 기뻤다. 아직 세상에는 내가 먹어본 만두보다 못 먹어본 만두가 더 많을 테지만 일단 열심히 운동한 날에 어울리는 만두는 정해졌다. 운동을 마치고 잔뜩 펌핑된 전완근에 매달린 굴림만두 한 팩이 가볍게 달랑거린다. 힘들게 몸을 굴린 날이라면 굴림만두를 드셔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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