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우연의 날갯짓이 나비효과처럼 큰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작은 그 날갯짓이 내 삶에 일으키는 해일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운명은 언제나 잠시 머물 손님 같은 복장을 하고 우연의 가면을 쓴 채로 찾아오는 걸까? 아니면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데 단지 내가 그 일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필연으로 옷을 갈아입는 걸까?
사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굉장히 작은 나비의 날갯짓에서 시작되었다. 취향 저격의 작가님을 알게 된 일도, 평생 하고 싶은 운동을 발견한 일도 시작은 사소한 우연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작년 혹은 재작년의 나만 하더라도 지금의 내 모습과 취향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과정도 초보인 나에게는 어느 정도 우연에 기대는 일에 가깝다.
대학교에 들어간 첫 해, 사진 수업에서 처음으로 필름 카메라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필름 카메라는 일회용 자동카메라만 써봤던 터라 수동으로 조작하는 법이 낯설고 어려웠다. 우리 집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필름 카메라가 없길래 그냥 중고나라에서 입문용 수동 필름 카메라로 유명한 미놀타 x-300을 샀다. 개강 전에 연습해 볼 생각으로 필름 한 롤을 다 찍어서 사진관에 현상을 맡겼는데 돌아온 것은 한 톳의 김이었다. 나는 내가 해조류 양성에 이렇게 재능이 있는지 몰랐다. 필름 인화를 맡기기 전 제대로 필름이 들어갔는지 궁금해서 카메라 덮개를 열어봤는데 그때 빛이 다 들어가서 필름이 전부 타버리고 만 것이었다. 열기 전에는 필름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눈으로 볼 수 없는데 열어서 확인하면 필름은 사망해 버린다니, 슈뢰딩거의 필름 카메라다.
그 뒤로도 나는 종종 김을 만들곤 했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지식이 쌓이고 카메라 조작법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빛이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한 학기 동안 흑백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직접 현상과 인화까지 하는 것이 수업 내용이었다. 현상은 학교 현상실에서 했는데 그곳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빛이 들어가면 안 되기에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서 꼼지락거리며 필름을 만지고 있으면 어깨너머로 귀신이 구경하고 있을 것 같아 뒤통수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작업을 끝내려고 손을 분주히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 옆에 있던 암실은 공포영화처럼 시뻘건 조명만 켜져 있었고 항상 정착액에서 나는 시큼한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통에 넣어서 필름을 현상하는 과정은 까다로웠지만 빨간 암실에서 빛을 원하는 만큼 쪼여가며 인화지에 필름을 프린트하는 일은 꽤 재밌었다. 마치 포토샵을 아날로그로 하는 느낌이랄까. 빛을 오래 쪼이면 쪼일수록 사진의 희멀건 부분이 어두워지며 질감이 슬슬 드러났다. 흑백필름으로만 사진을 찍을 땐 지루할 줄 알았는데 컬러가 없으니까 오히려 흑백의 다양한 농도와 질감에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신선하고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쓸 일이 없어서 구석에 처박아뒀던 필름 카메라를 최근 들어 오랜만에 다시 꺼내 들었다. 원래도 오래되었지만 방치해서 더 상태가 안 좋아진 카메라를 필름 카메라를 전문적으로 수리해주시는 종로의 맥가이버 할아버지께 들고 가서 치료받았다. 연차를 낸 어느 맑은 날, 친구와 창덕궁에 가서 필름 사진을 찍었는데 오래된 궁에 드리워진 오후의 따뜻하고 노란 햇살이 너무 예뻤다. 내가 걸작을 찍었다고 확신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현상을 맡겼는데 결과물은 흡사 유령을 찍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잔뜩 흔들려 있었다. 알아서 초점을 맞춰주는 자동카메라와는 달리 수동 카메라는 초점링을 스스로 돌려서 맞춰야 하는데 카메라의 무게가 무겁기도 하고 이게 맞춰진 건지 긴가민가해서 초점 맞추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그래서 원래 수동 카메라로 찍으면 필름의 반절은 당연히 흔들리는 건가 했는데 나중에 유튜브를 찾아보고 나서야 뷰파인더의 십자선이 어긋나 보이지 않게 맞춰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과거의 내가 사진 수업 과제를 어떻게 제출했던 건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요즘 필름 사진을 찍으면 그래도 삼분의 이 정도는 초점을 맞추는 데 성공하는 것 같다. 결과물이 생각보다 훨씬 잘 나왔을 때도 있는데 그런 스캔본을 받으면 이걸 진짜 내가 찍었나 어리둥절해하면서 우연이 어둠 속에서 부린 마법에 고마워한다. 생각지 않았던 작은 일이 인생에 큰 행복을 만들어 줄 때가 있는 것처럼 필름도 그런 기대치 않은 선물 같은 순간이 있어서 사랑하게 되나 보다.
어쩌면 마음에 들었던 우연만 기억에 남아 운명이 되고 그렇지 않았던 우연들은 모두 스쳐 지나가서 잊힌 걸지도 모르겠다. 흔들린 필름 사진에는 크게 고맙지 않았던 것처럼. 우연에게 운명이라는 겉옷을 걸쳐준 사람은 바로 나였다. 우연도 필연도 내가 입혀주는 옷에 따라 이름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일은 내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인 것 같다.
현상하기 전에는 어떤 결과물이 들어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섣부르게 모든 일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필름을 현상하기 전에 열면 김이 돼버린다. 너무 가까이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 걸음 물러나서 초점링을 돌리고 십자선을 피사체에 맞춘다. 기대보다 좋은 걸작이 나올 수도, 생각보다 나쁜 망작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터를 누른다. 우연의 나비가 일으킬 마법 같은 파도를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