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격은 지극히 내성적이지만 나의 육체는 활동적이라 항상 집 밖으로 나가기를 원한다. 보통 내성적이면 집에 머무르길 좋아하는 집순이어야 결이 맞는데 그런 성격에 맞지 않게 나는 집에만 있으면 금방 답답해진다. 육체만큼은 집순이의 반대 격인 ‘밖순이’라 부를 수 있다. 그렇지만 또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 이내 기가 빨려버리고 만다. 이렇듯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비애를 가진 나에게 ‘쉼’이란 자연을 충전하는 일이다. 사람들과 함께 가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자연 속 운동은 활동적이면서 내성적인 나 같은 성향에 아주 적절한 쉼표가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바위를 타고 말도 타게 되었다.
암벽등반은 나에게 아주 잘 맞는 취미활동이다. 동일한 목적을 가진 모임의 장점은, 공통된 화제가 있어 정적을 견디지 못해 필사적으로 이야깃거리를 찾느라 어질어질한 내향인의 두뇌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는 데 있다. 아침 일찍 부모님 뻘의 등산객들과 섞여 북한산 등산로를 올라간다. 죽을 것 같은 고비를 한 세 번쯤 지나 사족보행으로 기어오르는 상태가 되면 어느새 인수봉 등반길의 초입에 도착한다. 인공 암장에서는 절대로 느껴볼 수 없는 ‘진짜’ 바위와 재밌는 루트가 거기에 존재한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바위도 산마다 느낌이 다르다. 불암산의 바위는 살갗이 떨어지게 만들 정도로 표독스럽지만, 북한산의 바위는 그보다는 좀 더 유순하다. 바위마다 다른 재밌는 루트를 오르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바위를 잡는 순간에는 바위와 나,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다. 바위는 과묵하고, 나는 하얀 초크 자국과 왠지 잡기 쉬워 보이는 돌을 더듬거리며 화젯거리를 찾는다. 때론 지켜보는 사람들이 멀리서 아련하게 외쳐주는 조언이 대화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 순간의 나는 철저하게 혼자이면서도, 매달린 줄 하나로는 사람과도 연결되어 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사회 속에서 가냘픈 인간관계를 애써 유지하며 살아가는 내향인의 삶과 닮은 걸 깨닫는 순간이다. 행여 떨어지더라도 밑에서 줄을 잡아주고 있는 빌레이어가 있어서 든든하고, 잊고 있던 타인에 대한 신뢰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등반을 마치고 함께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산 밑에서 먹는 음식은 물 한 잔조차도 맛있다.
승마 역시 내향적 밖순이에게 맞춤한 자연 속 운동이다. 해변이나 들판같이 자연에서 말을 타는 외승을 나가면 말도 신난 게 느껴진다. 내향인은 사람에겐 낯을 가려도 동물에게는 낯을 가리지 않는다. 어쩐지 나보다 낯을 더 가리는 생물을 만나면 인간이든지 동물이든지 긴장을 풀게 된다. 말은 강아지보다는 고양이 성격에 더 가까워 예민한 말 역시 나에게 잔뜩 낯을 가리고 있다. 말은 오른쪽에서 다가가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나는 당근이나 각설탕을 입에 물려주고 왼쪽에서 쓰다듬어주면서 살짝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말과 대화할 때는 고삐, 박차(발로 신호를 주는 것), 음성부조(혀 차는 소리) 등을 사용한다. 말에게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일이 참 어려웠는데 출발하라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고삐를 당기는 정지신호를 줘서 말이 혼란스러워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말이 통하는 생물보다 말이 안 통하는 생물과 입씨름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말없이 눈치로만 서로의 뜻을 알아차린 커플처럼 우리의 뜻과 방향이 일치하는 순간에는 상당한 쾌감이 느껴진다. 그럴 땐 종을 초월한 생각의 자기장에 함께 연결된 것 같아서 신기하다.
축구나 농구처럼 누군가와 같이, 그것도 여러 명이서 함께 경기를 해야 한다면 머릿속이 몹시 복잡해질 테지만 혼자서 하는 운동은 나만 신경 쓰면 돼서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또 같이 간 사람들과 공통된 화제로 얘기할 수 있어서 즐겁다.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어떠한 만남도 전혀 원하지 않는 건 아니다.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임이라면 내향인이라도 충분히 수다스러워질 수 있다. 그런 모임이 끝난 후, 집에 혼자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주 흡족할 것이다.(귀가 방향이 같을 때 생기는 예상치 못한 동행은, 예기치 못한 야근같이 내향인을 긴장하게 만든다.)
개인적인 공간이 유지되는 사귐은 편안하다. 그런 적당한 거리의 느슨한 관계가 안도감을 준다. 내성적인 성격이 활동적인 몸뚱어리에 태어난 탓에 어긋난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활동적인 육체가 멱살을 끌고 간 덕분에 집순이였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다채로운 경험들을 자연 속에서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어긋남은 오히려 장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