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감을 주는 어른으로 다가가기 위한 철저한 준비 과정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또 이번학기에 수강한 ‘아동, 청소년 상담’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어린 시절 부모뿐만 아니라 주변 어른들로부터 받는 심리적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가정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어른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동기를 주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경험, 기다려주고,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행동이 아닌 그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기관인 EdConnect는 지난 25년 동안 호주의 초등학교 (Primary School), 중고등학교(High School)에서 학습 및 멘토링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봉사자들을 교육하여 학교와 연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봉사자는 선호하는 연령대를 선택할 수 있고 집에서 멀지 않은 학교로 배정되어 1주일에 한번, 학교가 운영되는 시간 동안 학교에서 1시간 동안 해당 아동과 시간을 가진다. 학습 지원 또는 1:1 멘토링이 있는데 난 멘토링을 선택했다. 주로 마음이 어려운 아이들이나 학교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연결된다고 한다. 한번 시작하면 아이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때까지 장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지원하게 된다.
EdConnect의 미션: 취약 계층 또는 위기 상황에 처한 아동, 청소년들이 교육적 성공과 웰빙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세대 간 자원봉사자들을 준비시키고 연결함
To prepare and connect intergenerational volunteers with disadvantaged or at-risk young people for education success and wellbeing.
이곳에서 봉사자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절차가 있었다. 우선 서류 접수와 함께 두 명의 추천인 검토가 필요한데, 추천인이 작성해야 할 질문들은 나의 성격, 소통방식, 반대의견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아동, 청소년을 지원하는 역할에 적합한 장점, 인내심을 보여준 예시등 본인에게 쓰라고 해도 꽤 시간이 걸릴 질문들로, 굉장히 세세한 내용을 다룬다. 또한 아동 관련 일을 하기 위해 발급받아야 하는 Working with Children Check와 범죄기록조회(Nationally Coordinated Criminal History Check )가 요구되며, 이를 모두 통과한 후에는 담당자(Liaison Officer)와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인터뷰는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인터뷰 형식을 갖추었지만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였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마지막 단계는 온라인 트레이닝을 통해 봉사자로서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스킬을 습득하게 된다.
온라인 트레이닝에서는 아이와의 관계 형성, 문제 상황 대처법, 봉사자로서의 역할과 책임 등 매우 실질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영상 자료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연습할 수 있었고, 각 모듈을 마칠 때마다 간단한 퀴즈도 있어 교육 내용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진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에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그리 복잡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매우 체계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점에 놀랐다.
이와 동시에, 과거 한국에서 했던 봉사활동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고아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그러고 이후에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학습을 지원한 경험이 있다. 두 번 다 어린아이들을 상대하는 봉사활동이었지만 봉사자로서의 검증 절차만 있었을 뿐 아이들의 특성이나, 고아원과 다문화가정이 가지는 특수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은 제공되지 않았다. 지금 내가 경험한 체계적인 봉사자 교육이 있었다면,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각 아이들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느껴졌다. (약 15년 정도 전의 옛 기억을 바탕으로 한 내용으로, 요즘은 한국에서도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EdConnect는 이후에도 봉사자에게 정기적으로 트레이닝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최근에는 ‘ADHD 이해하기’와 ‘트라우마기반 (Trauma Informed) 자원봉사’ 등 다양한 상황, 상태에 있는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교육들이 있었다. 이처럼 단순한 도움을 넘어, 학습과 심리적 지지를 위한 체계적인 접근이 아이들에게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봉사자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 자료에 기반한 교육을 받은 후 바람직하고, 안정적인 어른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만날 때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은 훨씬 클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의 의미를 실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작은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경험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