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재난 통계의 공백' 4/14 <함께하는 세상 만들기>
코로나19 시기였어요.
당시 확진자가 나오면 응급키트를 집으로 보내줬는데
시각장애당사자에게 종이에 인쇄된 안내문, 점자도 없는 체온계가 배달됐습니다.
확진으로 격리 중인데, 필요한 정보와 도구에 전혀 접근할 수 없었던 거죠.
전국민을 마음 아프게 했던 일이 있었다. 지난달 울산-경북-경남지역 대형 산불이다.
산불은 강풍과 함께 번지며 총 26명의 생명을 앗아간 안타까운 재난이었다.
일반인 사망자 24명 가운데 무려 70%가 80대 이상 고령자, 치매 환자, 장애인 등 스스로 대피하기 어려운 분들이었다.
이번 산불 피해 상황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재난 취약계층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같다.
장애인을 위한 재난 대응 체계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냐고 묻는다면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재난 대응 시스템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발표한 <장애인 재난 안전 지원체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①행정안전부에서 사용하는 대응 매뉴얼이 재난 유형과 장애 유형별 세분화되어 있지 않았다.
②재난 예방 교육이 실시되고 있지만 대부분 시설 이용자 대상이고 1회성 교육이 많았다.
③재난이 일어난 뒤 현장에서 민간단체의 노력 외엔 편의시설 제공이나 우선 대피 체계는 없었다.
④지원 물품을 나눠주거나 대피소 지정 시에도 장애를 고려하지 않는 등 부족한 점이 있었다. 이마저도 피해 대상의 장애 등록 여부가 확인이 안되기 때문에 미비한 숫자만이 지원을 받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기초 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대응'은 시작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행정안전부에서 매년 발간하는 <재해연보>를 살펴보니, 장애 관련 구분이 아예 없다.
소방청에서 발간하는 <화재통계연감>은 장애 구분이 있긴 한데 정신장애와 지체장애만 포함돼 있다.
그러다 보니 보건복지부 내부자료에 따르면, 2021년 장애인 대상 화재 출동 건수는 47건으로 집계되는데,
<화재통계연감>엔 21건만 기록돼 있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
(참조: 장애인 재난 안전 지원체계 연구)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관련 기관의 57.6%가 재난 대응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이유로는‘필요성을 못 느낀다’, ‘담당자가 없다’는 응답이 많았다.
심지어 장애인 관련 기관에서도 당사자가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피해현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지원함으로써 국민들이 겪은 아픔을 최소화 할 의무가 있는 행정안전부에는 재난 취약계층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다.
재난 유형에 따라 소방청, 산림청 등으로 소관이 흩어져 있어 총괄 조정 기능이 부재한 상태이다.
2017년 합동부처 주관으로 수립됐던 <장애인 안전 종합대책>도 2021년 종료 후에는 후속 계획이 없는 실정이다.
정부부처 행정 시스템에 아주 오래된 관습이 하나 있다.
바로 ‘장애’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만 하면, 무조건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넘긴다는 것이다.
이건 행정안전부만의 문제는 아니다만,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19 시기였다.
당시 확진자가 나오면 응급키트를 집으로 보내줬는데.
시각장애당사자에게 종이로만 인쇄된 안내문, 점자도 없는 체온계가 배달됐다.
그는 필요한 정보도, 도구도 전혀 접근할 수 없었다.
(기사 참조: https://theindigo.co.kr/archives/22626)
이런 식의 문제가 재난 상황 전반에서 반복되고 있다.
응급구조대가 출동해도, 장애에 대한 기본 정보조차 없기 때문에 휠체어 이용자를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청각장애인과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모른 채 현장에 투입되는 것이다.
장애가 여전히 특수한 복지 문제로만 인식되고 있고, 그래서 재난 상황에서 언제나 ‘우선 구조 대상’이 아닌 ‘사각지대’였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복지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문제이다.
이제는 모든 부처가 장애를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
반가운 소식은 3월에 재난안전법 관련 2건의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그 중 아까 언급했던 기초통계 문제를 해결하고자 법안 발의가 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행정안전부가 안전취약계층을 위한 별도의 재난분야 위기관리 매뉴얼을 관리하지 않고 있으며,
안전취약계층 각각의 특성을 반영한 지원이 부족한 측면을 지적하며
장애인을 포함한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실태조사를 3년마다 실시하고, 그 결과를 위기관리 매뉴얼에 반영해서 보다 실질적인 보호 체계를 구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접근 및 기능적 요구 도서관(AFNL, AFN Library)을 운영 중인데,
장애인, 고령자, 교통약자 등을 위한 재난 대비 자료, 대피 계획, 의사소통 도구, 정책 자료 등 실질적인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종합 자료실이다.
지역 정부와 커뮤니티 리더들이 포괄적 대응 계획을 세우는 데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초 발생한 캘리포니아 남부 산불 당시, 이 자료 시스템이 장애인과 고령자 대상 지원에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평가가 있다.
재난은 모두에게 닥치지만, 그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재난 정책은 결국 모두를 위한 안전망이다.
“함께 피하는 재난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