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내가 겪은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나는 소위 말해 사연 있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가혹하다 생각했는데, 뒤늦게 깨닫고 보니 가혹한 짐을 짊어지고 살지 않는 인생이 없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사연 없는 인생이란 없었다. 주변에 많은 사연을 안고 사는 인생들이 있었는데 몰라주었다.
내가 다른 이들의 인생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자 저마다의 사연을 들려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사고, 배신, 폭력, 투병 등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 법한 인생을 실제로 떠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뭐 실제 있는 일이니까 드라마나 영화로도 그려졌겠지.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그들의 인생의 문제들은 현재진행형이다.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자세와는 별개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진 트라우마가 여전히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내 주위만 살피고 느낀 점이기에 결코 단언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닮거나 상처가 되었던 행동을 스스로는 하지 않으려 하나부터 열까지 부단히 신경 쓴다. 예를 들자면 자신에게 예의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애써 웃으며 꾹꾹 참는다. 입 하나 뻥긋 안 한다. 과거의 나 같은 경우, 입을 다문 이유는 더는 사건사고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사건사고에 지쳐서 또는 한번 화내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화낼지 스스로 모르겠어서 무서워서였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 그 마음을 어쭙잖게 헤아리자면 너무 혐오하기에, 똑같은 사람이 될까 봐 참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야 뭐.. 내 팔자를 받아들이고(받아들인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씹어삼키고) 앞으로도 계속 사건사고를 만들어 내고 짜증 나는 사람들에게 온갖 화를 분출해 똑같은 사람이 되기로 했지만, 그건 내 사정이고. 내가 아끼는 다른 사람들이 가끔 자신들의 상처를 어쩔 줄 몰라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보통은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문제들인지라 할 수 있는 게 없어 내 무력함에 몇 날 며칠 슬플뿐이다.
그런데 딱 한 번만 오지랖 떨게 해주라.
사람은 절대 누군가와 100% 똑같아지거나 똑같은 인생을 살 수 없으니까, '너'는 '너'니까 누군가 발 뻗을 자리 보고 뻗으면 자신 있게 도끼로 잘라주라고. 과거의 기억에 현재까지 아프다면 자신을 도마뱀이라고 상상해 보자. 깔끔하게 이전의 꼬리는 잘라버리고 예쁜 새 꼬리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 된다. 그리고 나도 이를 계기로 이렇게 쉼 없이 시부려 왔던 나의 있었던 과거를 없었던 일로 지운다.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많기에 그거 하나를 원동력으로 앞으로를 정면돌파하며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