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늦은 시간에 음식을 먹는 일이 거의 없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 중 하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운동하고 샤워한 후 좋아하는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탄산수와 아주 맛있는 초코렛 2-3개를 먹으며 좋아하는 미드를 보는 것이었다. 탄산수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늘 박스로 사두고 냉장고에는 늘 시원한 탄산수가 있어야 했다. 어떤 날은 머리에 대포를 맞은 것처럼 머릿속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모든 기가 다 빠져나간 것 같아도 시원한 탄산수 한 모금에 진짜 맛있는 초코렛 한 입이면 그 스트레스가 다 해소가 되었다. 조용한 새벽 그 초코렛을 먹는 순간은 지금 내가 있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어렸을 때는 초코렛을 잘 먹지 못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초코렛이 씹히는 질감이 너무 익숙지 않아 사탕처럼 녹여 먹거나, 잘 먹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초코렛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나는 초코맛이나 초코렛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정말 맛있는 초코렛, '봉봉 오 쇼콜라' 의 복합적인 맛을 정말 좋아한다.
맛있는 고급 초코렛은 정말 많다. 잘 만들어진 초코렛의 대명사 같은 장폴에방, 파리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자끄 제낭, 어느 추운 겨울날 남자친구가 나에게 꼭 핫초코를 먹여주고 싶다며 한남동의 작은 매장으로 데려갔던 드보브에갈레, 마카롱으로 매장을 열었다가 사라져버린 피에르 에르메, 한국 최고의 초코렛을 맛볼 수 있는 삐아프 모두 훌륭한 초코렛들이다. 한참 잡지를 즐겨보던 시절에 한국에 삐아프 라는 초코렛 가게를 연 고은수 쇼콜라티에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한국뿐 아니라 어디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최고의 수재가 공부하던 분야가 아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것에 대한 조금은 흔한 (그 사람의 노력이 흔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전달하는 뻔한 서사 방식 말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도대체 초코렛이 얼마나 맛있길래 한국에 그 당시에 거의 보기 힘들었던 수제초코렛 브랜드가 문을 열었을까 궁금했었던 기억이 남아있어 서울에 놀러 간 김에 초코렛 몇 개를 사서 돌아왔다. 그 이후로 서울에 가면 종종 들러 한 번에 욕심껏 초코렛을 사 오기도 했고, 발렌타인데이에는 매번 삐아프의 초코렛을 선물받아오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인기가 높아져 티켓팅처럼 구매가 어려워진 바람에 남자친구가 매우 울상이다. 남자친구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발렌타인 데이에 초코렛을 사러 굳이 서울을 다녀오는데 몇 년간 찾아오는 것을 기억하는 분도 계셨다며 뿌듯해하는, 아무튼 삐아프는 여러모로 추억이 많은 브랜드이다. 삐아프의 초코렛은 정말로 잘 만들어진, 매우 고퀄리티의 초코렛이다. 명성이 높은 해외 유명 브랜드에 전혀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몇몇 브랜드보다는 훨씬 뛰어나다는 생각이 드는, 한 알에 2-3천 원의 높은 값을 지불할 가치가 충분한 초코렛이다. 크기를 생각하면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지만 잘 만들어진 초코렛의 힘을 경험해 보면 여력이 된다면 기꺼이 경험하고자 할 만큼 훌륭하다. 캬라멜이 가득 들어간 봉봉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초코렛이고, 모든 초코렛이 하나하나 재료의 고유한 맛이 살아있으면서도 초코렛과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이제는 구입하기 어려워진 발렌타인데이 한정 초코렛은 특히나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심이 들어가 있는지가 많은 설명 없이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잘 만들어진 봉봉 오 쇼콜라는 가로 세로 3센치를 넘어가지 않는 작은 크기에,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 것 같은 가격표를 달고 있지만 정말 그 작은 초코렛 하나가 무엇이라고, 하루의 노고와 쌓여있는 스트레스가 한 번에 날아가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매우 고급스럽고 호사스러운 수제 봉봉들과는 조금 노선이 다른 미국의 Bon Bon Bon 봉봉봉은 미국 감성과 창의성이 물씬 느껴지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기반의 수제 초코렛 상점이다. 봉봉봉의 초코렛은 전 과정이 수제로 만들어지고, 7개의 초코렛을 배합하여 기본 초코렛을 만들고 다양한 필링을 가득 채운다. 견과류나 캬라멜이 들어간 클래식한 초코렛부터, 도넛앤 커피, 스모어 같은 미국의 대표 간식의 맛, 그리고 최근들어 인기가 많아진 트러플, 파프리카 가루와 같이 특이한 재료가 들어간 초코렛도 있고 비건을 위한, 그리고 글루텐 프리 재료로 채워진 초코렛도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봉봉봉의 초코렛을 본 순간, 맛이 없는 초코렛은 싫어하기 때문에 다 남길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귀엽고 예뻤기 때문에 바로 주문을 했다. 긴 포장 상자의 특성상 배송대행비도 생각보다 많이 나와버렸지만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초코렛을 당장 꼭 가지고 싶었기 때문에 한국에 도착하는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그 기다림과 모험은 값졌다. 단지 예쁘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했던 초코렛은 생각보다 맛도 있었다. 위의 나열된 브랜드들의 초코렛과는 달랐지만 균형이 맞지 않아 그저 달기만 하거나 맛의 고급스러움이 없는 유치한 초코렛이 전혀 아니었고 특이한 맛의 조합도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맛을 한번씩 맛볼 수 있는 초코렛을 주문했고, 그다음은 특히 맛있었던 초코렛을 위주로 내가 직접 선택했고 생각이상으로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 다음은 더 많은 초코렛이 들어있는 긴 상자를 주문했다. 개수가 많을수록 포장 상자가 길어져 처음 열 때의 즐거움은 배가 되고 배송대행비는 트리플이 된다. 배달되어져 온 긴 모양의 상자를 열면 토끼같이 작은 귀여운 상자들이 쪼르륵 놓여있는 모습이 한눈에 보이고, 작은 분홍색 상자를 열면 내가 고른 직육면체의 두 입 크기 초코렛이 귀엽게 앉아있는, 보는 것만으로 즐겁고 맛을 보면 더 즐거운 봉봉봉 초코렛은 오늘은 무슨 맛을 고를지 정하고 기대감에 부풀어 상자를 여는 순간부터 맛을 보는 마지막까지 소소한 즐거움이 되어준다. 초코렛 자체의 가격도 낮지 않은 편인데 배송비가 들다 보니 자끄제낭이나 장폴에방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때도 있지만 호화로움이 주는 풍요로움보다 작고 소중한 즐거움이 그리워질 때마다 봉봉봉을 주문하게 된다.
내가 봉봉 오 쇼콜라를 정말 좋아하게 된 계기는 내가 한참 열심히 블로그를 하고 있었던 20대 시절, 누군가 내 글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었던 그 공간을 통해서 몇 명의 친구를 얻었던 그때, 가까운 블로그 이웃으로부터 받았던 작은 초코렛 상자를 통해서였다. 지금은 한국에서 구매하기 어려워진 아르마니 돌치의 9구 초코렛은 놀라울만큼 완성도높은 초코렛이었고 초코렛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감탄 할 정도였다. 그 이후로 다행히도 가까운 거리에서 아르마니의 초코렛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큰 상자 하나를 사와서 매일 밤마다 하나, 두개씩 꺼내 먹으며 밤마다 초코렛을 먹는 습관이 생겼다. 좋아하던 화장품 브랜드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던 그 블로그의 주인은 전설이 된 유명 지휘자의 이름을 딴 닉네임을 쓰고, 언뜻 보기에도 그 당시에 독보적인 취향의 범주와 수준을 가진, 블로그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었다. 그 블로그는 짧은 시간에 유명해졌고, 지금의 많은 인플루엔서들처럼 블로그를 통해 선별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사이트까지 열었지만 어느 순간 모두와 연락이 끊겨 나중에 블로그를 찾아보았을 때 일부 몇몇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고도 물건을 받지 못해 형사 고발 문제도 얽히게 된 듯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어떤 계기로 나와도 연락이 끊기게 되었고 문제가 발생하기 조금 전부터 많은 이웃들이 생기면서 그 당시의 파워블로거들과도 가까워지는 그 사람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던 중이라 그런 일이 있었는지 한참 후에서야 알았다.
사실 그 블로그가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전까지는 꽤 긴 시간 동안,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정말 특별한 인연이었고 나는 덕분에 한동안 굉장히 행복하고 즐거웠다. 새벽이 늦도록 채팅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내게 굉장히 여러 번 내가 좋아할 만한 온갖 물건들을 선물로 보내왔고, 나중에는 대가 없이 많은 선물들을 받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추천해 준 물건값을 보내면 내가 보낸 돈의 두, 세배에 달하는 선물들을 더 보내주곤 했었다. 물건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이지만 내가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정말 세심하게 고심한 흔적이 상자 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받았던 물건 들 중에는 정말 고가의 선물들도 있었지만 내 얼굴만큼 커다란 파란색 반짝이가 뿌려진 리본을, 그저 내가 좋아할 것 같아 넣어 보냈다던 그 말이 나는 아직 기억난다. 그 사람은 언제나 내게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성의를 보여주었다. 서로 매우 깍듯한 언어로 대화하고 극존칭을 사용하면서도 더없이 가깝고 친한 사이처럼 진심을 나누었다. 한참 전에 내가 올렸던 포스팅을 찾아보고 갖고는 싶었지만 고민했었던 움직이는 토토로 시계가 꽤나 고가였음에도 선뜻 예쁘게 포장해서 내게 선물로 보내왔었고, 내가 답례로 보내주었던 생일 선물을 받을 때는 아주 점잖으면서도 정말로 기쁜 마음을 충분히 표현했다. 나는 그 사람과 취향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그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는 정말 많고도 길지만, 이 전의 내 글처럼 내 모든 생각을 쏟아내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 사람은 정말 특이하고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놀라울 만큼 재치 있고 지적이었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언제나 적정한 거리를 유지했음에도 진심을 보여주고 나누는 사람이었다. 그냥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라는 말과 함께 보내주었던 마음은 거짓일 수 없고 거짓일 리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쏟아지는 말들에도 나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일 리 없다고 믿는다. 정말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사람은 언제나 정중했고, 나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짧지만 귀하고 소중했던 시간을 내 편견과 세상의 소문으로 더럽히지 않고, 나는 진심을 다해 그 사람의 건강과 안녕을 바랄 것이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