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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Oct 25. 2022

2022년 10월의 서울



모든 계절을 좋아하지만 10월을 특히 좋아한다. 너무 덥지도 않고, 습기도 없고 하늘도 가장 예쁘고 남자친구의 생일도 있고. (남자친구 생일은 내가 하고싶은것 다 하는 날.)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 생일이면 가장 크고 예쁜 케익을 사주었다. 엄마는 나를 낳기 전에 태몽으로 높은 산 위에서 어쩔줄 몰라하고 곤란해하고 있을 때 산보다 더 큰 코끼리가 다가와서 등을 대주고 땅에 내릴 수 있게 엎드려 준 꿈을 꾸었는데 (그 태몽이 모든 역경과 고난의 시발점이 될 줄이야, 내 주변만 보아도 태몽은 사이언스 인듯 하다.) 아무튼, 그래서 할아버지가 4-5살 무렵 엄청나게 큰 코끼리 케익을 주문했고 케익의 크림이 상해 먹지 못하게 되고 초에 불만 붙였던 생일에 대성통곡을 하며 그 케익을 붙잡고 끝까지 먹어야 한다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생일을 신나게 기념하는 것은 내게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 나는 내 생일이나, 남의 생일이나 똑같이 신나하는 류의 인간이다. 처음에는 인터넷에 얼굴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올릴 생각이 없었다. 굳이 숨길 마음은 없었지만 굳이 내 걸 생각도 없었는데 우연히 구경하게 된 블로그에서 활짝 웃는 자신의 사진을 올린 이웃 블로그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이웃 블로그 속 애띈 얼굴의 활짝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어차피 내 놓고 다니는 얼굴, 온라인 상에서 내 놓는다고 크게 다를 것이 있겠나. 끝도 없이 주절거리는 내 글은 매우 인내심이 많거나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라면 지겨워서 읽지 않을테고 그러면 사진 한장 정도는 뭍혀서 보이지도 않을 터. 



내 생각을 내놓는것이 내 얼굴을 내 놓는 것 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일이고,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얼굴이 아니라 내 멋대로 내뱉는 말과 책임지지 못할 감정이다. 


5월과 10월은 브롬톤을 들고 서울에 간다. 하루는 그랜드 하얏트에 묵고 하루는 포시즌스로 가는데 그 주변은 우리에게 자전거로 놀러다니기 가장 좋은 동네이다. 한 겨울, 한 여름을 제외하고 미세먼지가 심한 봄을 제외하고 자전거 타기 가장 좋은 계절. 자전거 가방은 특실의 경우는 좌석 앞에 두기에도 공간이 충분하고, 하나는 맨 뒷 자석을 잡아 그 뒷 공간에 두면 수납 가능. 브롬톤 캐리어 백은 이번에도 정말 잘 썼다. 출발 직전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비엔씨에서 애기때부터 좋아했던 마들렌을 샀는데 원래 아주 얇게 크림이 들어갔던 자리에 딸기잼을 넣어 충격을 받았다. 지금이야 영화를 보러가고 싶으면 어디든 10분 이내면 볼 수 있겠지만 (아닌가) 내가 어렸을 때는 남포동까지 나가야만 했다. 아빠는 영화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유명한 영화가 나오면 무조건 보러갔었는데 영화관 근처에 있었던 비엔씨 본점에서 내 동생은 솔방울빵을 고르고 나는 늘 마들렌을 골랐다. 왜 바꿔버린거야...돌려줘 내 빵... 잠도 거의 못 자고 새벽에 출발했는데 너무 흥분해서 잠도 오지 않았다. 캐리어 하나에 브롬톤 캐리어백 두개면 일반 택시는 조금 버거운 편이라 im 택시를 불러 호텔로가 짐을 먼저 맡기고 점심 먹으러 한참 전 부터 남자친구가 가 보고 싶다던 노스트레스 버거로 출발. 



작년 10월에도 생일 브롬톤 여행으로 2박3일 일정으로 올라와서 똑같이 그랜드 하얏트에 먼저 묵고 다음날 포시즌스에 묵었는데 내리자마자 한 겨울날씨에 너무 당황을 해서 얼어죽을 뻔 해 하얏트 로비에서 후드를 뒤집어 쓰고 벌벌 떨던 사진이 남아있다. 이번에는 날씨 체크만 서른 번은 했음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 월요일을 제외하면 그렇게 춥지 않아 보였지만 겁이나서 챙긴 스카프를 크루넥 안으로 하고 있었는데 뭐야, 너무 더워서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내 스카프. 십년이 넘어도 늘 새것 같다. 비법은? 땀에 직접 닿지 않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러개를 사서 자주 하지 않으면 된다. (사지 않고 자주 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것은 모르는 모양.) 



노 스트레스는 샐러리 맛집이다. 나는 샐러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히 인기가 매우 많은 곳인데...청소를 하지 않으시는 걸까 아니면 컨셉인걸까....??? 해방촌 가파른 골목에 위치해 차들은 끊임없이 엄청난 소리를 내 뿜으며 다니고 매연은 보너스였다. 비위생적이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가게 앞 매연 자국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그리고 버거가 너무 짜서 절반은 남겨버리고 말았다. 맛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원래 짠 것을 잘 먹지 못하는데 짠 것을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엄청 짠 맛이다... 버거를 좋아하는 남자친구의 첫 마디는 '야채가.... 하나도 없어.' 남자친구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편인데 균형있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게 제일 먼저 보인 모양. 우리는 노스트레스버거에서 패닉어택이 와 버렸다.......하하하하하하하... 빨리 탈출하자며 울며 자전거를 펴고 출발. 




이대로 해방촌에 대한 기억을 망칠 수 없어 기지를 발휘 한 것인지 늘 가보고 싶었지만 오픈 시간이 맞지 않아 가 보지 못했던 젤라또 가게를 기억 해 냈다. 이름은 코타디. 이쪽은 주로 아침일찍 오파토에 오는 것이 대부분이라 12시 오픈인 이 가게는 늘 밖에서 구경만 했는데 엄청 소중한 느낌의 젤라또 가게. 오픈 시간이 약간 남아 밖에서 기다리면서 드디어 패닉에서 탈출했다는 우리를 보면서 우리 같은 애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건가, 비슷한 둘은 어디서 만났나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젤라또를 너무 좋아해서 이탈리아에 가면 하루에 보이는 모든 젤라또가게에 들어가서 하루에 5번 이상도 먹었다. (그렇게 치면 니가 안 좋아하는게 있긴 하냐.) 호지차, 허니 라벤더, 바질토마토, 체리 프렌치 바닐라를 골랐다. 조용한 곳에서 젤라또를 먹으니 탈탈털린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 날씨도 너무 좋고, 기분도 좋고, 커피 한잔 하러 원인어밀리언으로 출발. 자전거가 있으면 이것이 좋다. 주차, 교통체증 걱정 없이 해방촌에서 한남동으로 아무 생각 없이 다녀도 된다는 것. 


아, 이거지. 가장 사랑하는 하얏트에서 보이는 가을 낙엽이 지는 남산의 모습. 두 달만에 좋아하는 뷰를 되찾았다. 지붕뷰와 반 지붕에 가린 남산의 모습에서 탈출했고 이번에도 엑스트라 토퍼를 부탁드려 잘 잤다. 내가 그렇게 까탈스럽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전날 신라호텔이나 포시즌스를 먼저 간다면 한숨도 못 잘 침대이다. 크리스마스에 연박을 하면? 정말 너무 피곤했었다. 이 정도면 전 객실 침대를 좀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아무튼 친절히 도와주셔서 감사히 투숙했다. 낙엽이 지는 나무를 보고 하루 종일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보니 나 늙은 것 맞는것 같다. 만족스러운 뷰를 보고 4시에 예약해둔 옥수동의 와인바로 출발했다. 요즘은 어디든 웨이팅 전쟁인듯한데 너무 모든 것을 정해두고 빠르고 바쁘게 움직이기 싫어 예약을 미루다 꼭 가고 싶은 곳들을 다 놓쳐 저녁먹을 곳을 찾다가 옥수동에서 가 보고 싶은 두 곳을 찾았다. 네이버맵으로 보니 자전거로 10분 이내였는데 내가 간과한것은 한남에서 옥수동으로 넘어가는 곳의 가파른 언덕.......하하하하하하



나는 워낙 하고자 하는 것에는 눈이 돌아가는 편이라 가파르고 심지어 중간에 길이 끊겨서 차도로 가야하는 언덕을 무려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무리가 없지만 성품이 온화한 분들께는 대중교통을 추천하겠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은 술, 담배를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 질병없이 평균기대수명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다.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은 정말 어지간하다라는 표현인데 어른들이 내게 너무 야박하다고 생각했고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나도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아마 술을 좋아했더면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병 이상씩 마쳤을 것. (아닌가, 그 이상인가) 내추럴와인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간단. 라벨이 너무 예쁘기 때문. 원래 예쁜것을 매우 좋아하고, 무엇이든 예쁜 것은 꼭 가지고 싶어하는데다 프린팅된 글자는 거의 병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품목인데 사서 그 와인병에 어울리는 요리를 해서 일요일 저녁에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맛은? 거의 모른다. 그냥 짠 것 싫고 술냄새 나는 것이 싫다. 한병 따면 반 이상이 남지만 그래도 무척 즐겁다. 잘 모르니 추천 해 주시는 것을 골랐고 매우 유명하다는 홍시소스 부라타와 살치살 구이, 그리고 남자친구가 그토록 원했던 미니 핫도그를 시켰다. (ㅋㅋㅋ) 신기한 요리들이 많다고해서 어떤 소스를 썼는지 궁금해 살치살을 시켜 보았는데 고기의 퀄리티에 대해서 큰 기대는 없었고 꽤 질긴 긴 편 이지만 소스가 무척 특이했다. 홍시소스 부라타는 너무너무 맛있어서 꼭 추천하는 메뉴라고 하는데 모든 메뉴들이 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편이고 꼭 홍시소스 부라타 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옥수동은 20대때 한남동으로 데이트를 가면 늘 지나가던 동네였는데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동네였고 우리는 이 동네가 참 마음에 들었다. Against Borders Center 이라는 이름은 너무 길고 어려우니 옥수동 abc 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인스타그램 dm으로 예약해서 갈 수 있고 우리는 토요일 4-6시 를 이용했는데 너무 어두워지기 전의 분위기가 참 기분 좋았다. 잠을 거의 자지 않아서 인지 두 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핑핑 돌았던 내 자신이 너무 웃겼다. 사람들은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한다는데 나는 사실 술을 마시지 않고 마치 술을 마신 것 처럼 무척 잘 노는 편이고 사실 술을 마시면 매우 과묵해진다. 평소에는 의무감이 되었든, 압박감이 되었든 늘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하게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귀찮아서, 아니면 나도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데 그냥 내가 아이스 브레이커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술을 마시면 하지 않게 되는건지 뭔지. 아무튼 나는 술도 못 마시는 주제에 술자리의 분위기에 역행하는 인간이니 술을 같이 마시기에 정말 재미없는 사람일 것이다. 남자친구의 생일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미니 케이크 팝업카드도 잘 챙겨가서 기분 좋은 사진을 남겼다.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은 이미 풀북이라 차선으로 선택했던 곳인데, 이번 여행의 발견. 옥수동 아파트 뷰로 유명한 디핀 옥수. 어겐스트 보더 센터에서 1분 정도 거리의 지하에 위치한 곳 인데, 고지대에 있다보니 건물 지하가 맞은 편 지상이 보이는 곳이라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공간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음식의 평가란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 누군가의 평가에 내 의견이 바뀌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내가 기분 좋게 먹은 음식, 내가 즐겁게 먹은 음식이 내게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약간은 객관적인 평을 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훌륭했을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정통 이탈리안보다 일본식 이탈리안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라 도쿄에 가면 꼭 들르는 곳들이 있는데 한국에서도 손에 꼽게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해 기쁘다. 이 곳은 생면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그 무엇보다도 이 곳의 완벽한 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훌륭했던 생면의 식감보다도 정말 매우 균형있는 음식의 간 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곳. 나는 간을 잘 맞추지 못하고 사실 거의 하지 않고 먹는 편인데, 이런 음식을 먹어보면 상당히 많은 공부도 되는 편이다. (물론 공부가 된다고 내가 따라 만들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고.) 즐겁게 이야기 하면서 하는 식사도 물론 좋지만 사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식사에만 집중해야 많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열심히 이야기를 하면서 하는 식사는 너무 안타깝게도 기억에 남는 것이 많이 없는데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늘 긴장해있는 탓 일수도. 이미 와인을 마시고 와서 와인과 곁들이지는 않았고 사실 내 수준에는 탄산수가 최고라 탄산수와 함께 먹었는데 와인의 종류도 상당히 다양한 듯 했고 대부분이 페어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사실 거의 절반은 졸음이 쏟아질 것 같은 컨디션 이었는데 한 입먹고 완전히 정신을 차려서 다행히 와인 한잔 반의 음주라이딩은 면했다. 너무 맛있었고, 옥수동은 정말 좋았다. 더 잘 찍어 남기고 싶었는데 셔터를 누르는 순간 다른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방해가 되지 말고자 안타깝게도 사진은 b컷이다. 참치 타르트와 머셀 치타라 파스타,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를 골랐고 모두 매우매우 맛있었다. 아마 이미 먹은 음식이 없었다면 분명히 파스타 두 개는 더 시켰을 것 이다. 




와인 한 잔에 혼미했던 정신을 파스타로 극복하고 지나오던 길에 보았던 카페에 들러 오늘 부족했던 그린 충전. 야외 공간에서 힘 다 빠진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한잔 들이키고 정신을 가다듬은 후 다시 출발. 케익도 맛 보고 싶었지만 욕심 부리지 않으려 참았다. 앞으로 이틀 동안 많이 먹어야 하기 때문에 디저트 배 라도 아껴두는 것으로. 






라고 생각하고 떠났는데 오랜만에 들르고 싶어 들어온 한남더힐 근처에 아이스크림 소사이어티...? 이건 먹어야지. 자기 생일이라고 버스데이 맛을 먹겠다는 남자친구를 보니 세월의 힘이 무섭다. 원래 남자친구는 단 것도 먹지 않고 생일 같은 것은 별로 챙기지도 않고 술 담배에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등산을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나를 만나고 한 방에 모든 것을 다 끊고 단것을 좋아하고 한달 내내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들은 그렇게 금연이 힘들다던데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담배 냄새 너어어무 싫어!!!!' 라고 말하며 인상을 팍 쓰는 내 얼굴을 보니 무서워서 담배가 딱 싫어졌다고 한다. 사실 내 남자친구는 정말로 말을 잘 듣는 편이라 나는 속 썩을 일이 없다. 새로 사귄 친구가 남자친구는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하냐고 하니 답 할 말이 없어 약간 당황했었다.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것은 나와 노는 것, 취미도 나와 노는 것, 좋아하는 음식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 이렇게 말 할 수는 없잖아........욕먹게. 이번에도 또 한번 느낀 것인데 나는 꽤나 특이한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정말로 찾기가 쉽지 않은데 모두 가감없이 드러내도 내가 하는 모든 말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은 정말 복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시각각 속이 상하는 속좁은 내가 단 한번도 남자친구 때문에 속이 상했던 적은 없다는 것이 다시금 놀랍다. (매우 극대노 한 적은 많았지만 말이다.)




맑고 화창한 날씨를 충분히 즐겨 감사했고 낮에도 밤에도 아름다운 풍경. 잘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잘 살아야, 내년에도 또 올것이 아니겠나. 




이미 흐릴 것을 각오하고 맞은 다음날 아침은 그동안 궁금했지만 애매한 위치에 방문 해 보지 못한 코끼리 베이글로 갔다. 하얏트에서 아래로 쭉 내려오면 의외로 매우 찾기가 쉬운데 이 곳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생전 가 보기 힘든 위치에 있다. 설마 아직 줄을 설까 했는데 설마는 역시 사람을 잡아 우리는 삼십분 정도는 줄에 서 있었고 구매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품목 중 갓 나온 올리브, 트리플 치즈 베이글과 무화과 콩포트 구매. 코끼리 베이글은 이름과 모양만 베이글이고 사실상 화덕 빵 이었는데 갓 나온 빵은 한국 사람이면 웬만하면 다 좋아할 식감 같았지만 나는 베이글을 기대하고 갔기때문에 처음에는 약간 실망했다. 후기에 너무 질기다는 평이 있었는데 빵의 특성상 식어서도 맛있을 수 있는 빵이 아니었다. 굉장히 인상적인것은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협소한 매장에서의 직원분들의 친절함과 또한 능숙함 이었는데 요즘 같아서는 아무나 일 할 곳을 찾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실직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나저나 이 동네 근방은 처음인데 주파수가 아주 잘 맞지는 않더라, 웨이팅 하는 시간이 왠지 모르게 조금 힘든 편 이었다. 베이글 원탑은 라츠오, 코끼리는 화덕에서 구워 담백하고 매우 쫄깃함 식감의 빵이다. 




사실 코끼리 베이글은 이 곳 때문에 갔다. 컵케익을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데 미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미국식 컵케익 이라니. 게다가 한남동엔 더이상 리암스 케이커리가 없는데 그럼 가야지.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으나 매장의 분위기는 참 멋졌고 엄청나게 달다는 후기를 보았는데 내가 보기엔 미국식이라기엔 한국사람을 위해 많이 순화된 버전이다. 미국의 향수를 느끼면서도 적당히 달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아주 조용한 가게라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사진을 후딱 찍고 나왔지만 너무 멋진 분위기였다. 사장님은 한국말이 유창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생일을 위해 준비했던 초. 미운 4살이니 숫자도 4. 이 쯤에서 말을 안들으며 깐족 깐족 삐딱선을 타기에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돌을 들고 쫒아갔는데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거리에 정차한 택시 속 기사님을 비롯해 차를 세워두고 앉아있던 두 명의 사람까지 무려 3명의 관람객이 있었다. 이 동네는 부끄러워서 다시는 못 가겠다.



다시 아무도 없는 한남동으로 돌아오니 정신이 정화되는 느낌…사람이 너무 북적이는 곳이 갈수록 힘들어 큰일이다. 20대때 자주갔던 산수화가 그대로 건재하다. 어린 애들이 찻집은 왜 갔는가 하면 우리는 일호식 마니아였기 때문. 덩쿨 식물에는 예쁜 열매가 달려있었고 바라만보아도 좋았다.


점심으로 예약한 뇨끼바. 모두 매우 친절하셨고 좋은 자리를 배정 해 주셔서 채광에 목숨거는 나는 너무 행복했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내 입에는 간이 센 편이었는데 모두 훌륭했고 남자친구가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해 좋았다. 나는 안심보다는 확실한 등심파인데 어제의 살치살의 질김 직후여서 그런지 안심이 너무 맛있게 느껴졌다. 고기 자체의 시즈닝도 많이 느껴지는데 내가 선호하는 간보다 1.5-2배까지는 강하게 느껴졌지만 부담스럽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이 이곳의 특징인 듯 했다. 즐거운 식사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들어간 순간부터 친절히 응대 해 주신 덕분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것들이 발전하고 있고, 그 발전이 너무 빨라 정말 놀랄 때가 많은데 사람이 만드는 공간의 힘에는 아쉬움이 남을때가 많다. 서로가 친절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한다면 맨밥에 김만 먹어도 좋은 것이다. (김은 너무 맛있으니까 다른 걸 예로 들어야 할까) 함께 여행을 다닐 때 마다 먹으러만 다녔더니 파스타 한 접시를 먹어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어 참 좋다. 귀여웠던 파인애플 컵의 자몽에이드와 넉넉하게 제공되어 좋았던 탄산수도 좋았다.




하얏트 계열 호텔에서 일년에 10박을 채우면 그 다음 해는 오후 2시까지 객실을 이용할 수 있다. 점심먹고 들어와서 잠시 쉬기 딱 좋고, 체크아웃 시간에 바쁘지 않아 좋다. 그 이상의 티어가 될 일은 내게는 없고, 딱 만족하는 혜택이다. 다른 자잘한 혜택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것보다 여유롭게 쉬다갈 수 있는 것이 중요하기 나에게는 딱 좋다. 체크아웃 후 포시즌스로 옮길 때는 이번에는 카카오벤티로 이동 해 보기로. 부산 벤티도, 아이엠도, 타다도 없어서 그저 조금이라도 큰 차가 걸리기를 기원해야 하는데 서울은 너무 좋다. 아참, 이번 토요일은 카카오톡에 역대 최장기간의 오류가 있었던 날이었다.







포시즌스는 정말 압도적으로 최고로 좋다. 우선은 내리면서부터의 서비스가 다르고, 신속한 체크인을 마치고 방 문을 열면 아, 여긴 정말 최고로 좋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약간 애매한 바로 뒷쪽 골목의 일부 풍경을 상쇄하기 위한 전략인지 젊고 키큰 직원 분들을 입구에 배치하셨나..? 어린 여대생들은 설렐듯한데 나는 사실 너무 친절히 짐을 챙겨주셔서 감사는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차에서 내리면 짐을 챙겨서 로비로 안내를 해 주시는데 따로 이름을 말 하거나 내가 무언가를 챙겨야 할 필요없이 몸만 내려서 체크인만 하고 방에 가면 나머지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도록 직원분들간의 업무 전달이 정확하다 못해 죄송할 지경… 약간 러시의 고급 버전을 지향하시는지 차를 기다리거나 같이 짐을 들고 올라와주실 경우 입구의 직원분들이 파워 E 성향처럼 이런 저런 말을 붙이시는데 나도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은 하지만 저 분은 저렇게 관심을 표하시는게 을매나 힘드실 것 인가 싶다. (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신 것 일수도. 집채만한 가방 두개가 자전거라고는 대부분 생각하지 않는다.) 



포시즌스는 일년에 10박을 투숙해도 포인트 적립이나 티어 혜택은 공식적으로는 없다. (비공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기록이 따로 남기때문에 그 다음 투숙때 재방문에 대한 인사 정도, 그리고 간혹 다음 프로모션이 있을 때 체크아웃시 고지 정도. 레이트 체크 아웃도 가능한 패키지 일 때만 가능. 올해는 괜찮은 패키지도 거의 없다. 매달 재방문을 해도 업그레이드 한번도 없다. 나는 그런것에 대한 기대는 없어 그저 투숙의 경험이 좋기만을 바란다. 그저 좋기는 커녕 몇 번을 와도 최고로 좋다. 짐을 풀고 잠시 쉰 후 삼청동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타고 포시즌스에 놀러가면 좋아하는 모든 장소 어디든 편히 이동할 수 있어 행복하다.

삼청동이 이렇게까지 북적이는 것은 처음 보아서 깜짝 놀랬다. 비누방울이 가득 나오고 있던 건물을 지나 오랜만에 조선김밥에서 김밥 두줄을 사서 브롬톤 폴딩바스켓에 넣으니 너무 만족스러웠던 것.. 벤치에 앉아 간식으로 김밥을 먹으며 흐린 일요일에대한 아쉬움을 달래면서 사람 구경. 절반은 한국 사람 절반은 외국인이었다.




오랜만에 삼청동 수제비가 생각나서 거의 십년만에 방문했는데 애매한 시간에 방문하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다섯시 조금 전에 방문해서 30분을 기다려야했다. 이날은 감자전과 옹심이를 주문했는데 이름만 옹심이 이고 찹쌀새알이라 배가 꽤 불렀다. 예전엔 한겨울에 한참을 기다려 수제비를 먹으면서 이 집의 어떤점이 사람들을 이렇게 줄을서게 만들까 궁금했는데이번에 방문해보니 알 것 같았다. 바쁘고 좁은 가게에서 그누구도 불친절한 사람 한 분 없이, 손님들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누구나 편안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깨끗하고 정성이 담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음식의 맛 만으로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그 곳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게된다는 것이 이 곳의 매력인 것 같다.





예전에는 서울에 꽤나 유명한 업장이 생기면 한번씩 방문해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너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니 모든 곳이 새로울 지경. 이 건물은 예전에 남자친구의 생일에 방문했던 식당이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메인 요리가 오리였고, 기분 좋고 즐거운 식사였는데 다른 좋은 곳에서 건재하기를. 그 다음 해 생일에 방문했던 다이닝인스페이스도 문을 닫게되었다는데 함께 생일을 보낸 곳들이 오래오래 남아있으면 좋겠다. 서래마을의 스와니예는 아직 그대로인 듯 한데 다음에 한번 더 방문 해 보아야겠다.



청와대를 넘어 서촌으로 넘어가는 코스는 우리가 좋아했던 산책로였는데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찾아간 곳은 서촌의 미경이네 라고 불리는 MK2. 노필터티비에서 보았던 가구 사장님의 카페라는 것을 기억해둔 남자친구 덕에 방문. 조명과 의자가 특별했고 분위기도 멋지고. 결정적으로 토마토 그라니타가 너무 맛있어서 열개도 먹을 수 있을 듯. 너무 아쉬워 피스타치오 맛도 하나 추가. 피스타치오도 좋고 토마토가 너어무 맛있었다.. 다음엔 세개 시킬 예정……


우리는 서촌에서 자주 놀았다. 누하의 숲에서 두명이서 메뉴 세개를 시켜먹고는 시장 바로 앞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가득 사서 열심히 먹었다. 늘 가던 곳이 문을닫아 시장 안 과일가게에서 귤과 포도를 사서 폴딩바스켓에 담아 호텔로 돌아왔다. 과일가게 할머니께서 할로윈 기념 인형과 풍선 장식을 해 두신것이 귀여웠다. 


신라호텔에 묵을 때 가기 좋었던 카페가 서촌에도 생겼다. 공간은 본점이 더 좋은 듯 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방문 해 보아야겠다. 정말 놀란 것은 맞은 편에 오복미역이 있었다는 것 인데 나는 오복미역이 이렇게 전국구로 퍼져나갈 줄 정말 몰랐다. 누가 미역국을 사먹어? 이러고선 한번 들어가 보았다가 한동안 열심히 먹으러 갔었는데 나만 맛있는 줄 알았어…ㅎㅎㅎㅎ




미리 골라둔 케익을 픽업해서 초 한번 더. 늘 선물만하고 맛은 처음 보는 것 같은 포시즌스의 케익. 무스케익을 좋아해서 맛있게 먹었다. 포시즌은 더 이상 일회용 어메니티를 제공하지 않는데 시그니엘과 같은 딥티크. 개인적으로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딥티크 제품 향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이번에는 러시에서 배스밤을 구매하지 않아 비치된 배스솔트를 잘 사용했다. 기념으로 챙길 것이 없어 아쉽지만 사실 환경에는 더 나을지도. 흐린 날씨는 슬프지만 흐린 덕분에 오래 밖에 있고 싶지 않아 호텔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다음 날 아침은 어제 먹고 남은 과일과 빵들로 간단히 먹고 남자친구가 가보고 싶어하던 회현식당으로 출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정동길을 지나갔는데 가로수길 나무들에 시민들이 만든 손뜨개 옷이 입혀져 있었다. 나는 만약 서울에 살게된다면 이 주변에 살고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투자같은 것은 감각도 없고 아는 것도 부족하고 의심은 많아 스펀지처럼 흡수도 잘 하지 못한다. 나는 어디 살고싶은지를 생각할 때 그 동네에 사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나도 저 분처럼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동네가 내가 살고싶은 동네이다. 덕수궁 주변을 걸을 때마다 동네 산책을 나온 어르신들을보면 그런 생각을 했다.  요요기 우에하라에도 살고싶고, 달맞이에도 살고싶고, 정동길 근처도 살겠다고 남자친구를 닥달중이다. 



남대문을 지나 찾아가기가 약간 어려웠던, 지난번에 방문하지 못한 회현식당에 도착했다. 점심은 단일메뉴 구성이라 주문하기 편리했는데 음식 자체로는 기대보다는 조금 덜 했지만 기분 좋은 식사였다. 기대를 너무 했기 때문이지 음식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밥이 퀄리티가 조금 아쉬웠고, 전반적인 간이 조금 애매했고, 구성도 매우 조화로웠다는 생각은 안들었고, 아코메야의 한국 버전일까 생각했기 때문에 약간은 실망했지만 한 번은 왔을 것 같고, 자전거 없이 이 쪽으로 올 일은 없을 것 같아 이번 방문에 만족했다. 그나저나 긴자 아코메야가 없어졌다는 소식이 너무 놀랐다. 무조건 코스였는데..다른 지점에서도 식사는 가능할테니 곧 도쿄를 방문하게 된다면 다시 알아봐야지. 



을지로에 있는 챔프커피를 찾아가다 본 반가운 남산타워. 챔프커피는 왜 부산에 없는가....챔프 원두를 쓰는 몇 곳이 있는데 챔프만은 못하다. 챔프에서는 아메리카노보다는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주로 시켜먹는다. 커피를 잘 알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맛있는 커피 먹기가 힘들다 생각이 드는걸 보면 어느 정도 취향은 생기고 있는 모양. 을지로 챔프커피는 도저히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있다. 조명과 여러가지를 팔고있는 세운상가라는 곳 3층에 위치 해 있는데 이 근방은 처음 방문해 보았다. 3층에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서 종종 보였던 다른 가게들도 많았고 평일 낮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원래 이십대 중반이 넘을 때 까지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먹어봐야 카라멜 마끼야또. 친한 언니가 너 그러면 살찐다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라길래 나는 아무 생각없이 설탕 스틱을 세개를 늘 넣어마셨다. 남자친구는 그때 너무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너무 유유히 당연하다는 듯이 설탕을 연거푸 넣어마시길래 얜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을 했다고.....




덕수궁 근처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 다시 들렀다. 늘 가던 코스대로 리에주 와플에 들러 남자친구에게 와플을 하나 먹이고, 야채가 부족했다며 시즌마다 바뀌는 생과일 주스를 사먹고 (이건 사실 채소류가 아니라 당류로 분류해야 겠지만) 늘 앉는 곳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덕수궁 근처가 정말 좋다. 여기서 보이는 어르신들처럼 검소한 차림새에 바른 자세, 단정한 걸음걸이를 가진 어른으로 나이들고싶다. 





남자친구가 찾아본 호주 로스터리라는 곳을 잠시 들렀는데 생각보다 커피가 너무나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 곳도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들고 온 김에 와서 다행. 기온이 많이 내려가 날씨가 많이 추워 아무도 없이 조용히 따뜻하게 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기차 시간이 촉박하니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곳은 갈 수 없고, 어디를 갈까 하다 안국역쪽의 깡통만두라는 곳에서 비빔국수를 먹어볼까 했는데 직전에 인사동에 있는 개성손만두 궁 이라는 곳에 가기로 결정. 처음 인사동에 갔을 때 생각보다 너무 .. 운치가 없어 충격 그 자체여서 다시는 방문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랜만. 어제 삼청동 근처 처럼 여행을 온 외국인들이 가득했다. 

가스트로피직스라는 책에서는 음식을 먹는 경험은 혀가 아니라 뇌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려운 말 끌고 올 것 없이 찬밥에 김치 뿐 이라도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밥상은 나이가 들어서도 가슴 속에 남지만 모든 반찬에 젓가락이 한번 이상 가기 힘들게 떡 벌어지게 차려진 밥상도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 식사를 한다면 모래알이 따로 없다. 나는 끼니를 떼운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고 그렇게 식사하지 않는다. 빵 하나를 먹더라도 맛있는 것을 맛있게 먹는다. 나는 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끼니를 떼운다는 말은 나 자신에게도, 그 음식을 준비한 사람에게도 너무 미안할 일이 아닌가. 내 삶의 그 어떤 일도 간단히 떼우고싶지 않다. 게으르게 보내도 최선을 다해서 늘어져있고, 모든 것을 충분히 즐기고싶다. 나는 미슐랭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 어디 가서 밥 먹어봤소 자랑하고싶은 것도 없다. 어차피 내 수준에서 느낄 것은 느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모를 것이며 음식의 취향이 더 낫고 못할 것도 없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밥 이라도 식사의 경험이 기억에 남는 것은 맛이 아니라 그때 나의 감정과 생각이기 때문에 손꼽는 장소에서도 나에게 가치가 있는 곳은 소수이다. 대를 이어온 가업인 경우 업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자신이 팔고있는 것이 무엇이 될 지 생각해야 한다. 내가 주방에서 끓여 나온 만두 전골 한 냄비가 내 부모의 평생의 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이 음식도 나에게 한 끼 밥을 떼우는 것 이상의 배움을 주었을텐데 아쉽다. 들어가면서부터, 주문을 받고 음식이 나오는 과정 전부가 낯 뜨거웠다. 우리 뒤 테이블에는 외국인들이 한가득 앉아있었고, 우리 테이블 앞에서 우리 음식의 일부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저 냄비를 나르던 아주머니 입에서 나온 영어 욕설과, 그것을 바로 뒤에서 보고도 아무런 말도, 흘린 음식을 닦지도 않던 사장은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걸린 가게에서 무엇을 판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을까. 나라면 나의 어머니나 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음식이 누군가에게 한 끼 떼우는 용 에 불과하다면 나는 아마 가슴이 아파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모두 본인의 인생이고 본인의 선택이다. 아무 말도 없이 식사를 하고 나와 그날 하루종일 고민했다. 할 말이없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누구라도 그러할텐데 자꾸 두고두고 생각하는 내 좁은 심성이 불만스러웠다. 떨치려고 해도 나도 그 사람들처럼 나 하고싶은대로 말하고 행동해서 다 퍼붓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쑥 올라온다. 생각해보면 그런 일들은 항상 전조가 있었다. 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 아닐거야, 하는 생각이 분명히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본 친구라서, 나이 많은 어른이라서, 일로 엮여 있어서, 이미 너무 지나간 일을 들추는게 치사한 인간이 되는 것 같아서 속으로 불만을 쌓고 겉으로 나오는 내 행동이 닳아가는 것을 보면서 상대방에 대한 감정도 상하고, 내 스스로에 대한 실망만 커졌다. 아, 돌아가서 한 마디 해주고 올까. 그것이 나은걸까? 아니지. 그냥 앞으로는 아니구나, 생각이 드는 순간 열 발자국 떨어질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돌아서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완전히 고갈된 기분을 채워보려 식혜를 샀는데 꽤 비싼 가격이었음에도...비락 식혜맛이 났다......ㅠㅠ....이렇게 슬플수가..


아쉬운 마음에 지나오다 본 양갱집이 너무 예뻐보여 사 가려고 하니 구매 후 3시간 이내 냉장보관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해서 포기. 바보, 먹을 것을 하나만이라도 사 올걸. 만두집에서 막 나와 부글거리던 참이라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식혜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식혜가 정말 맛있었으면 했는데..곁들여 주신 미니 약과는 맛있었다. 슬픈 마음에 집에와서 냉장고에 있던 기순도 쌀식혜를 크게 한잔 따라 마셨다. 구매해서 먹는 식혜중에는 제일 좋아해서 주말마다 자주 사 먹는다. 



호텔로 다시 돌아가 자전거 정리를 하고 택시를 불러 서울역으로 갔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남자친구가 잠시 멈춰 찍어둔 사진. 똑같은 사진기로 찍어도 남자친구가 찍은 사진과 내가 찍은 사진이 다르다. 내가 찍은 사진은 뭔가 더 의기양양하고 남자친구가 찍은 사진은 조금 더 정적이고 약간은 쓸쓸하기도 하다. 더 잘해줘야 하나, 나는 사정없이 스포일드가 되어 버렸는데 남자친구는 아직 멀었나보다. 




기차를 타기전 허한 마음에 무언가 먹고싶어져 공차를 시켰는데 픽업간 남자친구가 얼굴이 하얘져서 그 어디에도 공차가 없다며 그 큰 서울역을 다 뒤져 거의 숨이 넘어갈 기세로 밀크티를 픽업해왔다. 남자친구의 온전한 정신과 맞바꾼 밀크티를 열심히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며, 같은 생각을 나누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처럼 걱정 근심 없을 수 있어 감사하다. 내가 이십대 중반일 때 친한 언니가 좋은 남자친구, 배우자는 나와 모든것이 맞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언니의 말을 이해한다. 



해마다 10월이 오면 우리 둘 모두가 잔뜩 들떠 한달 내내 생일을 하자며 자전거를 타고, 좋아하는 곳들을 방문하고, 별 의미없는 농담을 하면서 누가보면 쟤네는 뭘 하길래 둘이 저렇게 재밌어? 하는 모습 그대로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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