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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Oct 19. 2023

엄마와 가을

엄마의 연주에 참석하지 않았다. 전에도 평일 저녁에 하는 엄마의 연주에 매번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나 대신 연주를 보러 가 줄 제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굳이 일을 미루면서 까지 가지는 않았다. 엄마의 학위 수여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굳이 그 나이에, 또 학위를 따러간 엄마가 싫었기 때문에 갈 수 있었어도 가기 싫었다. 할머니에게 나만 가족들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길래 평일 오전에 누가 출근안 하고 거기가서 사진을 찍어주냐고 성질을 부렸다. 엄마의 제자로부터 받은 학사모를 쓰고 웃고있는 늙은 엄마의 사진을 보면서 아직도, 지금까지 지겹게 나를 따라다니던 슬픔보다 더 슬플 수 있다는 것이 야속하고 우스웠다. 체면차리기 위해서 뭐든 버릴 수 있는 우리 가족들이 너무 싫어서, 체면 떨어지는 짓을 죽기보다 싫어하면서 체면을 차리는 것은 싫어하는 나는, 엄마가 굳이 그 상황에서 학위를 따겠다고 했을 때 불같이 화를 내며 엄마를 2년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학위를 따러 갔던 진짜 이유는 연주자로서의 삶의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무대 위에 선 엄마 뒤로 띄워진 화면 속 학위 수여자의 한마디를 보고 알게되었다. 아직 더 슬플 수 있는 것 이었다니. 그때까지가 슬픔의 끝 일거라고 믿었었나. 나는 대체 왜. 


카카오톡 상태 메세지에 띄워둔 연주 포스터가 너무 거슬리는데 오늘이 몇 일인지도 모르게 정신없는 내가 그 날짜만은 계속 기억을 하고 그 전 주에 다시 확인을 하고, 그 주의 시작에 다시금 새겨두고 점심때쯤되어 점심.저녁.올때 갈때 택시값. 을 찍어 보내고 10만원을 송금했다.이제 나이가 들어 모두 각자의 삶이 있는 엄마의 제자들이 평일 저녁에 연주를 보러 가기는 힘들 것 이라는 것을 알아서, 누가 왔었냐고 묻지도 않았다. 잘 들어갔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 있지도 않았다. 할머니가 걱정을 할까봐, 할머니에게 밥값도 주고 택시비도 줬으니 걱정마라고 하니 할머니가 잘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역시 나를 모른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십만원을 보낸건지 할머니는 모르는 것 같다. 아니면 알더라도 잘 먹고 잘 살아보이는 나 보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하려고 할머니의 인생을 갈아 곱게만 키운 딸이 더 우선이라서 였을지도. 이해한다. 무엇이 되었든 이해한다. 그런데 내가 할머니였더라면 엄마는 니가 아니라도 밥 잘 먹고 잘 다니니 걱정말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고 했을 것 같다. 니가 괜히 슬플 필요 없는 일을 슬프게 만드는 것 같다고. 저 좋아하는 연주하는데 니가 왜 그러니, 너 밥이나 사 먹으렴. 나는 그랬을 것 같다. 


엄마가 연주 영상을 보내왔다. 무대 중앙에 놓인 피아노로 걸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마자 더 보지 않고 급하게 화면을 껐다. 강아지 영상인 줄 알고 받았는데 뭐냐고 퉁명스럽게 답장을 보내고 파일을 다운 받았다. 영상을 보지 않았다. 엄마의 연주를 보지 않았다. 

볼 수 없어서 보지 않았다. 

나에게 엄마는 잘 있다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 하고 싶은 것 같아서 보지 않았다. 



엄마를 이해할 수 있지만 엄마의 체면치레도 이해하는 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려고 한다. 가능하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딸의 삶은 너무 뜨겁게 버거웠다. 엄마의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의 남편을 대신 해 그들이 해주던 것을 내가 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린날의 내 마음이 슬픔에 조금씩 닳아가면서 내 역할이 아닌 것을 했을 때의 대가를 이미 혹독하게 치렀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었다. 나는 내 역할에 충실했어야 하는데, 그래야 모두가 행복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내 책임은 오직 내가 행복해지는 것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고,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 선 에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고, 가능하다면 내가 하고싶은 것이 정말로 잘 사는 삶에 가까워 질 수 있도록 나를 닦고 발전시킬 수 있다면 더 좋고, 그렇게 사는 것 만이 나의 책임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시뻘겋게 달아오른 내 눈이 차마 누를 수 없는 연주 영상 버튼 위를 굴러다니며 왜 아직도 나는 더 슬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것 같다. 별로 크지도 않은 눈이 무거울 리가 없는데 울지 않으려고 힘을 주어서 인지, 이미 눈물이 찰 대로 차놓고선 울지 않겠다고 바득바득 버티고 있어서 인지 거 참 되게 불편하네. 

올 해의 가을도, 이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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