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아빠를 만났던 것은 20대 후반의 언젠가 엄마의 혈압약을 대신 받아오느라 길거리에서 잠시 보았던 때이고 마지막으로 식사를 했던 것은 내가 20대 초반의 일이다.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간 투병했던 할아버지를 직접 간병하면서부터 할머니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는 병원마다 젊은 의사들을 줄 세워두고 출신학교를 물으며 선배 기강을 잔뜩잡던 할아버지 때문에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죽는 날 까지 송곳처럼 날카로웠던 늙은 아버지를 충실히 간호하며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켰다. 우리는 아빠없이 이사를 했고 새 집에 쌓여있던 아빠의 짐들도 점점 정리가 되었다. 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빠 혼자 뒤늦게 연락을 받아 늦게 오는 것이 뻘쭘할까 싶어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소식을 알려주니, 아빠는 자신의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너네는 늦게 와 놓고 왜 내게 전화를 해서 빨리 오라고 하느냐고 화를 냈었다. 우리는 늦지 않았었지만, 혈압이 오르고 떨어지는 것을 수 없이 반복해 몇일동안 서울 - 부산 기차를 입석으로 몇 번이나 오갔었지만, 사실 관계를 따져 억울함을 표하기에는 이미 부풀어버린 감정이 흘러넘쳐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아빠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운함이나 분노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을 것이고, 종료와 종결을 준비했다. 모진 소리를 쏟아내는 아빠가 미웠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손상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 작년 친가쪽 사촌의 결혼식이 있을 때 잠시했던 통화에서 많이 변한 음성으로 어느새 서른 일곱이나 먹은 나를 마치 일곱살 아이 대하듯 다정하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우리의 시계는 거꾸로 갔음을 느꼈다.
나는 가끔 아빠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내가 어렸을 적 지었던 아빠의 병원 뒤에 심었던 키 작고 연약했던 대나무가 어느새 울창하게 우거져 어느 새 자라 6층 창 밖을 가득 메운 모습이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고 있다는 부동산 알림글을 볼 때도 있고 말이다. 키가 크게 자라난 대나무들을 보자니 세월의 흐름이 실감이 나면서 그 작은 조각의 기억들이 어떻게 흐려지지도 않고 뚜렷한지, 다른이들의 눈에는 띄지도 않을, 스쳐 지나가는 배경의 일부에 불과한 그 대나무 정원을 알아보는 내 자신이 새삼 신기하다. 내 부모가 지나가듯이 나누었던, 병원 뒤에는 대나무를 심는 것이 어떨지 건축 소장이 추천하더라는 말을,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어렸던 내가 하나도 흘려보내지 않고 꼭꼭 다 담아둔 것이 신기하다. 담아 둔 것은 그것 뿐 만이 아니지, 유난히 기억력이 좋은 나는 어떤 것은 담아두고 어떤 것은 가두어 두었다. 없애버리고 싶었던 것들은 조각조각 낼 수록 파편이 깊이 파고 들 뿐 이라 상처를 낸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나는 곱게 접어 넣고 필요하지 않는 이상 굳이 열어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나는 주기적으로 활짝 웃는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을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어 둔다. 잘 나온 사진보다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웃는 얼굴을 고른다. 간혹 아빠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나처럼 멀리 돌아갈 것 없이,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편히 잘 보시라고 때마다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밝은 얼굴의 사진로 바꾸어두곤 아빠도 나와 같이 나를 찾고있을 지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가족들을 무시하고 혼자 모든 것을 누린다고 분노하는 동생과 다르게 나는 애초에 아빠가 가진 것들이 내것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접었기 때문에 한 번도 내것이 아니었던 것에 대한 미련이 없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내 성격적 특징들이 아빠로부터 온 것 이라는 것에 만족한다. 위선이 아니라, 그 이상은 원하지 않기 때문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많이 받는 만큼 나의 더 많은 것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테니, 더 이상의 그 어떤 영향도 받고싶지 않기 때문에 바라지 않는다.
그리움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미움이나 사랑도 아니다.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정리 중이다. 18년의 세월은 공포로, 그 다음 10년의 세월은 지독한 미움으로, 그리고 나머지의 세월동안 나는 과거의 기억과 아빠를 쏙 빼 닮은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를 배워가며 감정적이지 않게, 그리고 굳이 불필요한 공감과 연민 없이,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게, 받아들임 이라는 표현 보다는 정돈과 정리하는 마음으로 더 이상 아빠로 인해 어떤 물결도 일어나지 않게 살아왔다. 간혹 아빠의 소식이 궁금해 이것 저것을 검색 해 보는 나에 대해서도 그 이유를 궁금해 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날은 바람이 불고 또 어떤 날은 비가 오는 것 처럼,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굳이 잊으려고 애쓰는 것 보다 간혹 생각나면 생각이 나게 두고, 궁금하면 찾아보고, 또 잊어버리고 살고를 반복한다. 나는 일년에 몇 번씩 답장없는 메세지를 보내며 내 할 도리를 다 하고, 그때마다 남아있을 지 모를 마음을 곱고 작게 접어 함께 보낸다. 그렇게 하다보면 나의 아주 깊은 마음 속에 남아있을 감정이 되었든, 기억이 되었든, 그것들이 앞으로 남은 내 삶에서 내게 어떤 고통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나치게 애쓰고 잘 하려고 기를 쓰지 않고 균형을 잘 맞추어 함께있으면 자연스럽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말 못할 사정같은 것 없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정돈된 사람이 될 것 이다. 그리고 꽤 잘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정직한가 라고 묻는다면, 대게, 라고 답하겠지만 나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고 간단한 사람이다. 얽혀 있는 것은 잘 풀고, 어지럽게 흩어진 것은 잘 정리해서 필요하면 꺼내보고, 불 필요하면 넣어두고, 복잡하고 어려울 것 없이 살 것 이다. 나의 일부를 부정하고, 나의 일부를 숨기고, 나의 일부에 분노하면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사람이 될 수록 보이기 싫은 것만 보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간단하고 단순하게,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을 택한다.
두려우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고, 분노하는가 묻는다면 아주 가끔씩은 그렇다고 할 것이며, 그립느냐고 묻는 다면 괜찮다고 하겠다. 새 해가 되었다. 절반은 마음에 들고 절반은 그렇지 않은 나와 함께 새 해를 시작한다. 모든것이 자연스럽고 정돈된, 명쾌하다면 더 없이 좋을,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