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트 활용편
콜탑의 노하우는 정말 간단하다. 콜 실적이 많으면 된다. 이게 무슨 “밥 먹으면 배부르다”와 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그냥 많기만 해서는 안 된다. 열심히 일하기만 해선 안 되고 빠르고 잘 해내야 하는 것처럼, QA(Quality Assurance) 평가 기준에 맞춰 고품질의 콜이 많아야 한다.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직 근로자의 흔한 오해 중 하나가 QA 평가란 상담원의 감시 혹은 통제할 목적을 가진다고 여기는 것이다. (가끔은 인센티브를 적게 주려는 수작이라고 음모론을 퍼트리기도 한다.) 물론 그런 목적으로 QA 평가를 하는 곳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QA 평가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사의 이미지를 위해 콜 품질을 상향평준화하는 것이다.
콜 품질을 상향평준화하기 위해서는 자사의 상품 혹은 서비스에 대해 정확히 안내하고, 전산 작업 등 실제 업무도 안내한 것과 동일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를 시행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일을 하거나 오해의 여지를 남겨서도 안 된다. 사실 이것은 비대면 응대를 하는 콜센터에서만이 아니라 대면 서비스를 하는 곳에서도 모두 통용되는 기준이다. 다만 전화라는 매체는 오로지 목소리로만 대화를 하다 보니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콜센터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듣는 QA 평가 기준 중에 ‘경청의 태도’라는 것이 있다. 대면 서비스를 할 경우는 반짝이는 눈동자나 진지한 표정 혹은 위아래로 끄덕이는 고개 등으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비대면 서비스인 콜센터에서는 맞장구를 친다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응대하는 등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이 잘 구현되지 못하면 콜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도 있지만, 고객의 민원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래서 QA 평가 기준에서는 해당 콜센터에 적합한 적정선의 기준을 제시한다. 기준을 제시하는 기본 방법으로는 ‘스크립트’ 배부가 있다.
콜센터에서의 스크립트는 ‘전화 대본’을 뜻한다. 요즘은 보이스 피싱조차도 스크립트가 있을 정도로 스크립트는 콜센터의 필수 요소다. 경력자들은 스크립트만 보더라도 현재 주력하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알 수 있고, 어디에 중점을 두고 통화 내용을 이끌고 갈지 알 수 있다. 잘된 스크립트는 통화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아웃바운드의 경우 영업 성공률을 높이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스크립트다. 그런가 하면 스크립트에는 고객과의 분쟁이 있을 만한 요소를 미리 예방하거나 깜박하고 잊을 수 있는 필수 안내 사항을 기재해 놓는 경우도 있다. 통화 시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기에 스크립트는 전쟁터에 나간 군인에게 필요한 총처럼 업무 시 꼭 필요한 도구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스크립트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완제품으로 군인에게 지급되는 총과 달리 스크립트는 80~90%만 완성되어 배부되고 나머지는 해당 팀과 상담원 본인이 채워 넣어야 하는 반제품인 것이다.
스크립트가 반제품으로 배부되는 까닭은 고객이 100명이면 100개의 다른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크립트대로만 읽어 내리다가는 ‘앵무새냐, 왜 했던 얘기만 반복하냐’며 고객 민원이 발생하거나 그 민원이 더 크게 부풀어 오를 수가 있다. 그래서 나머지 10~20%는 팀과 상담원 본인의 재량을 재치 있게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다. 재치가 없다면 일머리로 바꿔서 채워보자. 천성적으로 눈치도 없고, 일머리도 없을 수 있다. (그 대표 사례가 이 글 쓰고 있는 나 자신이다.) 그러나 팀에서 채워주는 성공사례와 그간에 내가 겪은 경험들을 토대로 일머리는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금융회사인 B사에서 인바운드 상담을 할 때였다. B사에서 취급하는 금융상품이 많은 까닭에 상품별로 스크립트 내용이 달랐다. 첫인사와 문의 목적을 파악하고는 바로 다음 스크립트 내용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것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전 회사의 선배가 했던 대로 스크립트마다 색을 달리 한 인덱스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그 인덱스 별로 어떤 내용인지 제목을 써 놓았다. 몇 번의 손짓에 너덜너덜 해지는 종이는 클리어 파일에 한 장 한 장 끼워 넣는 것으로 해결했다. 문의가 많은 것과 중요한 내용은 형광펜을 비롯한 색깔 펜을 활용했다. 스크립트에는 없지만 중요한 내용과 자주 변경되는 프로모션은 별도의 노트와 파일을 이용했다. 금융사에는 대외비인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노트와 파일은 외부 유출이 불가하여 틈틈이 쉬는 시간을 활용했다. 학창 시절에 하던 거 아냐? 이렇게 생각했다면 나에게 일머리가 있었구나, 하고 여기면 된다. 부끄럽게도 난 학창 시절에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내 성적을 키운 8할은 그 당시 친구들 덕분이었다!)
인덱스뿐만 아니라, 신입 때는 스크립트에 주석을 많이 달아 놓을수록 좋다. 그렇다고 너무 빼곡하게 지면을 다 채우면 정작 읽어야 하는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주석을 적당히 달아주는 기술도 필요하다. 악필인 나는 정성껏 주석을 그려 넣지 않으면 나 자신조차도 알아 볼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번 썼다 지웠다, 다시 쓰는 일을 반복했다. 이렇게 반복해서 써넣다 보면 그 자리에서 주석 내용을 외우는 보너스(!)도 얻을 수 있었다. 만일 쓸 양이 많다면 보조 노트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스크립트에서는 ‘설명 → 노트 1page 2번째 단락’이란 식으로 표시해 놓고 보조 노트의 해당 자리를 찾는 것이다. 대신 주석도 어쨌거나 찾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므로 응대 기술을 통해 약간의 시간을 벌어 놓고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여기서 잠깐, 스크립트 활용에 응대기술도 들어가야 한다고? 맞다. 응대기술도 콜탑의 노하우에 들어간다. 이 부분은 다음에 자세히 얘기해 보겠다. 여기서는 스크립트를 활용하는 방법만 정리해 보겠다. 첫째, 통화중 최대한 찾기 쉽게 인덱스, 컬러 펜 등을 이용한다. 둘째,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주석을 활용한다. 그리고 위에서는 설명하지 않은 세 번째 방법을 추가하자면, 최대한 스크립트가 내 입에 잘 맞도록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아무리 인덱스가 잘되어 있어도 내 손에 익지 않고 내 입에 익지 않으면 바로바로 읽어야 하는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 이것은 아무리 콜탑이고 베테랑이라도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연습 삼아 몇 번이고 읽어보면서 스크립트를 수정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잘된 경우, 그 어떤 유형의 고객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해당 고객에 맞춰 스크립트를 즉석에서 수정해 가면서 자연스러운 응대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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