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영광이 아닌
같은 것을 공부하는데도 누구는 전교 1등을 하고 누구는 순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IQ의 문제가 아니라 공부 방법에 따른 차이다. 공부와 마찬가지로 업무에서도 일머리가 있느냐, 없느냐로 성과를 이룰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누군가의 성과를 망칠 수도 있다. 나 역시 일머리 없이, 즉 어떤 프로세스나 노하우 없이 무턱대고 열심히만 일했다가 나를 비롯하여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준 적이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직장 동료와 회사를 돕고 빠르게 일을 마치려고 했던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도 느리게 되었고, 민폐만 끼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일머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운이 좋아서 내 곁엔 늘 어느 곳에서든 순위권 안의 사람들이 친구로, 지인으로 있어왔다. 학창 시절엔 전교 순위권 안의 친구들이 내게 공부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수가 있었던 S그룹에서는 그 사수가 손꼽히는 인재였다. L홈쇼핑에서는 별도의 사수가 없는 대신 친했던 언니가 콜탑이었다. 콜탑 언니는 우연히 같은 팀의 비슷한 연배였는데 알고 보니 ‘미움받는’ 콜탑이었다.
처음엔 미움받는 콜탑 언니에게 뭔가 결격사유가 있을 듯해서 그렇게 말하는 팀원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걔 때문에 평균 콜수 올라가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넘사벽 콜탑이 평균 콜수를 올린다 → 평균 콜수에 들지 못하면 실적 압박이 들어온다 →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상대 평가로 받는 인센티브를 못 받는다’,라는 생각의 흐름으로 인해 미움받는 콜탑이 되었다는 것이다.
콜탑 언니에게 자신의 소문을 아는지 물었다. 언니는 이미 알고 있으며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미움받는’이라는 수식어를 뗄 수 있도록 적당히 콜을 받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는 것이 싫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였다. 그러자 콜탑 언니는, 성실하게 일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뭐가 잘못인지, 경쟁 사회에서 소위 잘나가는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이 정당 한 지에 대해 반문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콜탑 언니는 스스로의 성취감과 만족스러운 보상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또한, 팀 실적에도 크게 기여하는 훌륭한 팀원이기도 했다. 개인이 업무에 충실하고 능력대로 일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그런 개인의 성과가 집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걸까?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평화 –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영역의 것이기에 편을 들고 말고도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것은 정당하다. 또한,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라면 그 집단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되며 구성원끼리 조화롭고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팀의 일부 사람들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팀 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믿으며 편 가르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이 주제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콜탑 언니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나를 친동생처럼 잘 챙겨 주었다. 나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콜탑 언니를 좋아하고 무척 잘 따랐다. 콜탑 언니를 좋아하는 만큼 우리 팀 사람들도 좋아했기에 나의 혼란함은 정도를 더해 갔다.
L홈쇼핑 시절에는 일머리 기르는 것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실적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때는 어떤 일을 하던 자신이 없다면 무조건 물어보고 실행했다. 그러면 확실하게 실수할 확률이 줄었다. 데이터를 보면서 패턴을 분석하기도 했는데, 사기에 연루되는 주문 건을 가려내고 VOC 민원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중요하거나 긴급한 일은 팀원끼리 정보를 교환해서 더 큰일로 퍼지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일머리를 채우고 팀워크를 다져보니 일하는 것이 조금 수월해졌다. 실적을 챙겨볼 수 있는 여유도 있었지만, 아직 콜탑은 못한 상태로 워킹홀리데이를 누리기 위해 퇴사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다시 콜센터로 돌아왔을 때, 나는 팀 평균 실적에 맞춰 일을 해보기도 하고, 나만의 실적을 챙겨보기도 했다. 둘 다 장단점이 있었다. 잘할 수 있음에도 팀 평균에 맞춰 일하겠다고 하니,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대신 일할 의욕이 사라졌고 인센티브도 불만족스러웠다. 나만의 실적을 챙기려고 전속력으로 달리면 성취감에 뿌듯했지만, 팀원들의 시기와 질투에 시달리고 스트레스가 늘었다. 특히 K사의 경우는 콜탑에게 너무 이것저것 요구하고 시도하는 게 많아서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여기에 팀장의 관리 미비와 이간질 사건, 도급사끼리 과열 경쟁 등등이 겹쳐서 결국 홧김에 K사를 퇴사하고 경쟁사인 B사로 자리를 옮겼다.
B사는 콜이 어마 무시하게 많았지만 다 같이 힘든 일을 겪으니 서로 응원하고 위로하면서 하루하루를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콜탑으로 진입하는 인원이 많아지면서 인센티브 기준이 콜탑에게 불만인 쪽으로 바뀌었다. 실적별 갭 완화를 이유로 콜탑의 인센티브 금액은 줄이고 실적 등급을 세분화해 버렸다. 당연히 변경된 기준은 콜탑의 영광을 누리던 몇몇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고, 그들은 차례로 회사를 떠났다. 실적 평준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면서 각 팀별 경쟁이 과열되었다.
B사 시절 우리 팀의 팀장은 나보다 나이는 한참 어렸지만 경력이 풍부하고 승부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콜탑을 하고 싶어서 나보다 실적 좋은 동료에게 술사고, 밥 사가며 노하우를 얻을 정도로 승부욕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팀장은 내 실적을 잘 관리해 주었지만, 나만 편애하지는 않았다. 내가 노하우를 얻는 방법대로, 팀장 역시 팀 내외의 콜탑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팀에게 맞게 가공한 후 우리 팀 전체에 전달했다. 그중에는 편법적인 요소도 분명 존재했지만, 타 팀에서는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팀 전체가 하나가 되어 서로 돕고 노하우를 공유하니 우리 팀이 늘 상위권을 달리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렇게 콜탑이란 것이 나 홀로 영광이 아닌 여럿이 나눌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래도록 나를 혼란에 빠뜨렸던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평화가 공존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우리 팀은 해외여행 프로모션에서 팀장을 비롯하여 팀원 2명이 목표 실적을 달성했다. 타 팀에서는 해당 인원이 한 명도 없거나 1~2명 정도였고, 팀장과 팀원이 같이 여행을 가는 팀은 우리 팀이 유일했다. 여행지는 코타키나발루였고, 나 역시 팀원 2명 중 1명이 되어 함께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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