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 배워서 남 주는 사람
오래전, 내 꿈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국민”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였으니 그 꿈이 꽤 오래갔다. 그러나 교사 임용까지의 난관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어느 날, 나는 교사란 직업을 내 버킷 리스트에서 지웠다. 돈부터 벌어야 하는데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하는 직업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랜 꿈은 꼭 정식 임용교사가 아니어도 이뤄지긴 했다. 어느 해인가는 방과 후 교사 신분으로 교단에 설 기회가 있었다. 오랜 꿈속의 모습대로 교단에 섰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선생님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전에도 방문 교사를 하면서 “선생님” 소리를 여러 번 들었지만, 교실에서 듣는 선생님이란 호칭은 내게 어떤 형태든 꿈을 실현해 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제야 나는 “교사”가 꿈이 아니라 “가르치는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래서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하는가 보다.
아직 열 몇 번째 직업으로 일하고 있을 때, 나는 문득 강사가 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언뜻 강사 자질이 있는 것도 같았다. 첫째, 여행 가이드로 일하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건 무섭지 않았다. 둘째, 할머니와 엄마 덕분에 설명하거나 이해를 돕는 이야기도 잘 끌어왔다. 즉, 스토리텔링도 잘했다. 셋째, 비즈니스 미팅 때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반응이 좋았고, 무엇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게다가 밑바닥부터 제대로 배운 분야인 가방·핸드백 디자인과 텔레마케터 쪽은 후배양성의 뜻도 있었다.
가르치는 행위만 놓고 보면 교사나 강사나 비슷했고, 내가 될 수 있는 쪽은 강사에 가까웠다. 이걸 빨리 깨닫고 움직였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기 그지없다. 여기에는 작은 후회가 하나 있다. 아직 가방·핸드백 디자이너일 무렵, 나는 업계에서 꽤 괜찮은 패턴사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20년은 가뿐히 뛰어넘는 기술자들의 노하우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문 책으로 제작방법을 배웠기에, 나는 패턴사 두 분에게 책 출판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책을 내고 강의도 하시면서 후배양성에 힘 좀 써 주시라 당부도 했는데 두 분 모두 거절했다. 그렇게 이 일은 잊히고, 해가 바뀐 후 내가 예상한 책을 다른 누군가가 써서 출판했다. 패턴사가 낸 것은 아니라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는데, 대중을 위한 책이었기에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뒤로 비슷한 종류의 책이 몇 권 더 나왔다. 질투와 욕심이 들었다. 내가 처음이 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만일 처음 생각했을 때 패턴사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나라도 책을 출판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후회와 아쉬움이 짙게 남았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주변에서 책 출판이나 강의는 아무나 하냐고 해서 바로 포기해 버린 것이다. “안 돼요, 싫어요, 못해요”는 패턴사들의 입버릇인데, 어느새 나도 거기에 물들었던 것인지, 너무 쉽게 포기했다. 주변에서 안 된다고 할 때가 내가 진짜 해야 할 때였는데 그것을 놓쳐 버린 것이다. 사실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당시에 내가 업계에 현역으로 있었고, 노하우를 줄 패턴사는 나와 매우 친했다. 심지어 글 쓰는 것, 그림 그리는 것 모두 내가 큰 힘 들이지 않아도 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부끄러우니까 하나 핑계를 대자면 그때는 지금 유행하는 “메타 인지”가 내게 없었다고 해 두겠다. 나 자신을 너무 몰라서 놓친 기회였던 셈이다.
강사가 될 기회는 또 찾아왔다. 1인 기업가가 되었다가 바로 망한 후, 텔레마케터로 다시 돌아갔다. 마침 인터넷 은행이 출범할 때였다. 처음 출범한 인터넷 은행에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망한 이전의 삶을 잊게 해 주었다. 이전 경력도 있다 보니까 일도 쉽게 배우고 낯선 금융 환경에도 적응이 빨라 주변에 널리 전파했다. 새로운 금융 환경에 낯설어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보면서 고객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려워할지 금방 알아차렸다. 사내에서는 팀워크도 좋아서 정보공유도 바로바로 되었다. 다만, 아직 초짜 은행이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다. 방향 잃은 배를 버리고 비전을 찾아서 두 번째 인터넷 은행으로 옮겨갔다.
두 번째 인터넷 은행은 규모가 어마어마했기에 고객센터가 두 군데였는데, 나는 두 번째 고객센터의 오픈 멤버였다.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하루 힘들었지만,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은 넘쳤다. 어느 정도 실적을 이루니까 팀장이 내게 신입 동석 교육을 자주 시켰다. 동석 교육은 단순히 전화 응대를 옆에서 지켜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응대 시 주의사항이나 전산 처리 노하우 등등을 세세하게 교육하는 것인데, 아마 후배들 사이에서 내 주가가 좀 올랐던 것 같다. 그때 즈음 사내 인원 중에서 교육 강사를 뽑는다는 구인공고가 나왔다. 이미 내가 하고 있던 교육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당시에도 나를 잘 몰랐다. 하고는 싶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으니까 고개가 갸우뚱거리면서 바로 포기해 버린 것이다.
고객센터를 관두고서야 강사에 도전하고 싶어서 경력 무관이라는 곳에 강사로 지원했지만, 자격증 하나 없이 지원했다고 핀잔만 받았다. 자격증이라는 게 필요한 지도 몰랐기에 이전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던 고용노동부의 HRD 직업 훈련 과정을 찾았다. 마침 주말에도 과정 교육이 있다고 해서 바로 신청했다. 주중에는 쇼핑몰 고객센터에서 중간 관리자 일을 했는데, 작은 회사의 중간 관리자다 보니까 전화 응대도 하고, 신입 교육도 했다. 이전에 한국어 강사 교육을 받았는데, 그때 기억으로 교재도 만들고 나름의 커리큘럼도 작성했다. 기획하고 실행하고 보고서 올리는 일이 낯설지 않았기에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면서도 아주 어렵지 않았다.
CS강사 양성 과정은 여러 과목을 짧은 시간에 배워야 했다. 하지만 체계적인 커리큘럼 덕분에 어렵지만 잘해 나갈 수 있었다. 열정적인 강사님들의 멋진 강의 모습이 바로 동기부여가 되니까 어떻게든 꾸역꾸역 이뤄냈다. 나와 같이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은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 중엔 이미 강사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강사의 뜻은 없지만, 학원의 권유로 강사 양성 과정을 수료한 사람도 있었다. 한 분은 내가 치아 재교정을 하면서 주의해야 하는 부분을 세세하게 잘 알려주셨는데, 이미 그자체가 강사의 모습이어서 감동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일상에서 이분과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갔던 사람이 좀 더 쉽고 빠르게 목적지에 닿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던. 이런 사람이 교사이고 강사라면, 나는 이미 강사였다. 또한, 우리는 이미 누군가에게 강사다. 누군가 우리는 모두는 작가이고 화가라던데, 나는 우리가 모두 강사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강사란 배워서 남에게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남보다 빨리 배워서 남에게 쉽게 알려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강사 양성 과정을 지나면서 나는 누구나 강사가 될 수 있는 것을 알았다. 다만,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로 성공하는 강사가 적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