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륙침략의 첫걸음
동학농민혁명의 불씨가 거세지자, 고종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응하여 청군이 조선에 진주하였고, 일본은 '텐진조약'을 근거로 들면서 자신들도 조선에 출병하기로 결정합니다.
동학농민군은 외국 군대의 진주에 심각성을 느끼고,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해산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고종은 동학농민군이 해산되었음을 양측에 알리고 철군을 요구하였으나 청군과 일본군 모두 이를 거부하였고, 오히려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거하고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살려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영향력을 없앨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군은 경복궁을 공격, 점령하였고 이후 친일파(민족반역자와 다른..) 김홍집의 내각을 세우면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이에 청군이 반발하자, 일본군이 청군을 기습적으로 선제공격하면서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교전에서 일본군은 요동반도까지 공격해들어가면서 청나라를 몰아붙였고, 결국 청나라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으면서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팽창에 불만을 가진 러시아 제국이 독일 제국, 프랑스와 함께 일본이 확보한 다롄과 뤼순을 다시 청나라에 반환하라고 압박을 넣게 되었습니다. (삼국간섭) 일본은 이에 엄청난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동북아에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진정한 적으로 러시아를 상정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