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개전 이후, 국군은 압도적인 북한군의 전력에 맞서 치열한 지연전을 펼쳤습니다. 미군이 참전했지만, 북한군의 남하를 막아낼 순 없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이 낙동강 인근에 다다르면서 점차 공세종말점에 도달하고, 또 낙동강이라는 자연적인 지형지물의 이점을 살려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간신히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군은 이제 공세를 유지할 여력을 잃어가고 있음에도, 군사적 승리의 목표인 대구와 부산이 가시권안에 들어오자 무리해서라도 공세를 지속했습니다. 국군도, 북한군도 "이곳"만 뚫리면(혹은 뚫으면) 모든게 끝이라는 생각에 어마어마한 전력을 쏟아부었습니다.
이렇게, 북한군 8월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북한군은 대구로 가는 최단방향의 다부동을 공격하였고,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유학산을 중심으로 국군은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이후 이 전투에서 한미연합군은 북한군의 처절한 공격을 치열한 혈전을 통해 막아내는데 성공했고, 낙동강 방어선을 구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그 유명한 "사단장 돌격"이 나왔던 바로 그 전투였습니다.
다부동 전투의 패배 이후 북한군은 공격 방향을 바꾸어 영천 부근으로, 새로운 9월 공세를 계획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