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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찬 Apr 05. 2024

"넌 하고 싶은 게 분명해서 좋겠다"라는 말의 통증

꼭 그렇지는 않은데.


"넌 하고 싶은 게 분명해서 좋겠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

  내가 학창 시절부터, 그리고 서른이 넘어간 지 꽤 되는 지금 이 순간까지 꽤나 많이 듣는 말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란에 "기갑장교"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장래 희망을 썼었고, 좋아하는 것은 역사, 특히나 전쟁사와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도 그다지 즐기는 취미가 별로 없는 나의 모습을 반추하여 볼 때, 취미생활에 쏟는 대다수의 시간을 '전쟁사'나 '역사'관련 책이나 글을 읽는데 소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오타쿠(?) 스러운 나의 취미와 호불호는, 내가 24살의 나이에 육군 기갑 소위로 임관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음에 틀림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많은 연락을 주고받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은, 내가 육군 장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많은 격려와 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 격려의 대다수는 대부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넌 하고 싶은 게 분명하더니, 결국 하고 싶은 걸 이뤘네!"

  평생 직업군인으로 뼈를 묻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던 나는, 10년 간의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물론 여기에 모든 내용을 다 담을 수도 없거니와, 사실 나의 개인사를 구구절절 논하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나, 결국 나는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단 인사처의 행정처리 미숙으로 인해 틀어지게 되었고, 결국은 전역을 결심하게 된 것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전역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동창들 몇몇은 또다시, 많은 격려를 보내주었다.


"그래도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한 번 해볼 수 있어서 좋았겠네.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명확하지 않아서 답답해. 너는 명확해서 좋겠다."


정말이지, 다시 생각해도 듣기 싫은 말이었다.




  물론, 긍정적 의미에서 나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10년 동안 해볼 수 있었다"는, 경험적 측면의 자산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지난 10년간의 군생활에서 많이 배우고 익힌 나의 경험들도 나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존재들이다. 


  요즘 들어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리고 어떤 것을 하고 싶고 해야 하는지 몰라서 방황하는 청춘(물론 나도 그 청춘들 중 하나이긴 하다만)들이 많은 고민과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나 또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들었을 때 나의 이러한 고민은 정말이지 배부른 고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음에도 매우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쾌하다. 나도 고통스럽고 힘들다. 어찌 보면 더.

하고 싶은 게 분명한 만큼이나 나는 그 하고 싶은 것을 못했을 때 남들보다 더욱 고통받고 있고, 뭘 좋아하는지 너무 명확하다 보니, 그 이외의 직업들에 대해서는 조건 등이 좋아도 도전해 보는 것에 내 마음이 더 움직이지 않는 나름의 똥고집이 나를 괴롭힌다.




  나의 우매하고 부족한, 치기 어린 마음으로는, 나도 그냥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고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그냥 조건만 보고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하루에서 수십 번씩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쓴다. 역사와 전쟁을 공부한다.



내가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 알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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