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모든 것이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듣고 느낀 싱가포르의 이미지와 비슷했다. 도시의 화려함에 취하기도 잠시, 완벽한 이곳에도 그늘과 어두움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1년 365일 매일 따뜻하고 화창한 햇살이 있는 이곳에 나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이 기분을 따라 투어버스에 몸을 맡겼다. 풍요가 가득 찬 푸른 거리의 나무들과 마천루를 보고 또 바라보았다. 나의 가난한 마음에 가득 채워지도록.
싱가포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가이드 Meg의 환영인사를 들으며 창밖의 초록색 풍경에 멍을 때렸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이 나라는 국민의 85%에게 99년이나 임대주택을 제공하는데, 그 집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복지가 잘 되어있다면 일할 필요가 없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는데 혜택을 받으려면 일해서 모든 걸 증명해야 한다고, 피곤하지만 프로다운 표정으로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냥 한국과 같은 인적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니까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투어버스는 우리를 아주 유명한 마리나베이 호텔이 보이는 머라이언 파크에서 내려주었고 잠시 탁 트인 해변과 마천루를 감상했다. 이 풍경을 볼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을 거쳤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늘은 푸르고 아주 가벼운 구름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제각기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직은 코로나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기 전이었다.
우리는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가든스 베이에도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예뻐서 몹시 감동받았다. 이 순간을 엄마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생각하며 한참을 구경하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투어버스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 다른 분들도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 가든스 베이 동서남북으로 뛰어다니다가 마지막으로 거꾸로 되짚어간 곳에 투어버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탄 순간 40여 명의 사람들이 나에게 박수를 쳐주었고 아무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제대로 잘 찾아서 다행이라고 나를 다독여주었고, 어떤 호주 언니는 나 덕에 야경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며 미안해 말라고 오히려 고맙다고 해서 눈물이 났다. 이렇게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에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질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맘 편히 즐기거나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안도하고 기뻤다. 이 풍요로운 도시의 풍경과 여행자들의 따뜻한 마음을 조금씩 주고받으며 내 마음에 회색빛 먼지 쌓인 그늘에도 어느새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공항에 돌아온 순간 다시 시간이 리셋된 것만 같았다. 인천공항에 오기 전, 후의 시간 그리고 싱가포르의 풍경들은 아득해져만 갔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독일에서 만날 친구를 위해 면세점에서 과자를 사서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방랑자 신세의 사람들과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밤의 공항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긴 하루가 끝이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