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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Nov 26. 2023

껍데기와 알맹이

영혼은 몰라도 육체는 교체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 어느 영화에서 본 거 같은데, 뇌와 척수를 잘 발라서 뽑아내고 새로운 신체에 이식하면 된다. 인간의 몸은 뇌에서 만든 전기 신호를 척수에 태워서 보내면 정보가 각 신경에 전달되면서 신체가 움직이는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또는 각 신체에서 수집된(따갑다, 덥다 같은) 정보를 뇌에 보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하는 것도 결국 척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뇌와 척수만 있으면 현재의 내가 온전히 다른 신체로 갈아타기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면 만약에, 나의 뇌와 척수를 뽑아서 20대의 몸에 이식을 했다면 말이다. 내 인생이 달라질까. 어차피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 텐데 신체가 바뀌었다고 뭔가 큰 변화가 생길 거냐는 말이다.


바뀐다.


가장 큰 이유는 주변과 상호작용에서 오는 차이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나를 20대로 볼 것이고 거기에 상응해서 나를 대할 것이다. 그러면 나도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게 되고 나의 뇌도 지금(40대)과 다르게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가면 이론 같은 건데 나는 원래 못 된 사람인데 착한 가면을 쓰고 사람들과 섞여서 착한 척하며 몇 년을 살고 나면 가면을 벗어도 계속 착한 사람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 같은 식이다.


그건 인간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의 차원에서 그렇다는 얘기고, 생물학적으로는 어떨까. 껍데기가 바뀌면 알맹이도 바뀔까.


응. 바뀐다.


우리가 입는 옷만 봐도 알 수 있다. 슈트를 입을 때와 반바지에 라운드 티셔츠를 입을 때, 그리고 군복을 입을 때와 잠옷을 입을 때는 확실히 다르다. 자세가 다르고 움직임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달라진다. 고로, 신체가 바뀌면 정신도 바뀐다고 유추할 수 있다.


고로 나는 살을 빼야 한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워야 하고. 피부 관리 잘해주면 된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끝.


그러면 거꾸로 한번 생각해 보자. 껍데기를 바꾸기 위해서 알맹이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신체는 단지 기능적 역할만 수행하고 모든 컨트롤은 뇌나 척수에서 처리한다고 했을 때, 그러면 결국 신체를 강화하거나 피폐하게 만드는 건 뇌, 즉 정신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진행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더 나쁘게 하거나 억지로 악화시키는 행동은 저지할 수 있다. 그러니까, 뇌와 척수를 잘 조정해서 굳이 20대 몸을 이식하지 않고라도 쓸만한 껍데기로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오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 수 있다.


오케이. 자, 알았으면 지금부터 그렇게 하면 된다.


살을 빼고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게 하면 된다. 이제 정말 끝.


그런데 왜 못할까. 머리로 이해했는데, 그리고 말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렇게 못하고 있을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자기 계발 협회 같은 게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만약에 있다면 나에게 기밀 유설에 관한 죄를 물어 고소할 수도 있는 엄청 심각한 이야기이다. 뭐냐면, 이론에서 실제로 넘어갈 때는 자연스럽고 스무스하게 연결되는 게 아닌, 다시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처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우선 책으로 준비를 한다. 자전거의 구조나 작동원리 그리고 안장에 앉는 법, 페달을 돌리는 법, 시선처리나 핸들 조작법을 배운다. 좋다, 이제 탈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를 가져와 위에 올라탄다. 페달 위에 발을 올리고 힘차게 도약한다. 자, 가보자.


꽈당하고 넘어진다. 다시 한번 시도한다. 팔에 힘을 잔뜩 주고 핸들이 꿀렁꿀렁 움직이지 않게 해 본다. 그러면서 페달 위에 발도 같이 움직이는데 중심 잡기가 만만치 않다. 얼마 못 가서 다시 스톱. 책에서 배운 걸 다시 상기해 본다. ’맞는데, 이렇게 하면 앞으로 쭉 나가고 나는 조금씩만 핸들을 조정하면 되는 건데, 출발조차 이렇게 어렵네‘ 뭐, 그런 식이다.


이론에서 실제로 넘어가는 구간에서 우리는 원점 회귀를 경험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구간에서 포기를 한다. 이거 안 되는 거네, 당했다 같이 말이다. 반면 혹자는 몸으로 익혀야 하는 이 구간을 잘 극복하고 자전거 타기에 성공해서 자연스럽게 이론에서 배운 걸 연결시킨다.


현재 내가 머리로, 입으로는 알겠는데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구간에 있기 때문이다. 원점 구간. 스스로 몸으로 부딪히며 익혀야 하는 구간. 즉, 자기 계발의 세계는 술술 읽히는 글이나 이해가 쏙쏙 가는 영상에 비해 실천이 매우 어려운 분야다.


마 됐고, 그냥 20대의 새로운 신체를 주세요. 그럼 바로 정신과 육체의 상관관계 이론을 연결해서 잘 사용하겠습니다. 복권에 당첨돼서 갑자기 돈이 많아지게 해 주세요. 그러면 투자의 원칙을 잘 활용해서 더 부자가 되겠습니다. 영혼을 리콜해 주세요. 바로 실생활에 적용해서 좋은 루틴과 긍정적인 사고가 넘치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냥 좀 그렇게 합시다.


너무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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