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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Dec 10. 2023

극적인 변화를 원하십니까

어느 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창고로 쓰는 빈 방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소리 같다. 문을 연다. 아주 작은 빛이 보인다. 이건 뭐야. 빛의 정체를 쫓아 서서히 다가간다. 갑자기 방안이 환해지더니 마치 광속으로 우주를 달리는 사람처럼 빛줄기가 퍼져 보인다. 주변 물건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빛뿐이다. 내 고막을 가득 채우며 성인 여성의 음성이 들린다. 마치 성우같이 또박또박하고 차랑차랑한 목소리.


“자, 그럼 지금부터 리콜을 시작하겠습니다”


응? 리콜이라니, 아 내가 요즘 쓰고 있는 연재 에세이 ‘내 영혼을 리콜해 주세요’ 그거 말하는 건가. 소재를 찾아 몰입하다 보니, 이제 환상까지 보이는 건가. 아니, 나 이제 미친 건가.


“잠시만요. 뭘 리콜한다는 거죠?”


“영혼 리콜 신청자가 아니신가요”


“맞습니다만. 아, 그럼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요”


“영혼을 싹 갈아드립니다”


“그러니까 영혼을 갈면 저는 어떻게 되나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삶을 살게 되나요? 그럼 시공간 초월처럼 내 주변도 달라지나요?”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영혼만 바뀝니다. 다만, 기억 중에 일부 불필요한 것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습관 중 나쁜 것은 대거 새로운 것으로 대체됩니다. 최신형 버전의 마인드 업데이트도 됩니다. 지금 진행할까요?“


머뭇거린다. 뭐가 바뀌고, 어떤 게 달라질지 전혀 가늠이 안되기 때문이다. 음.


”저기 생각할 시간을 좀“


현실을 벗어나고픈 마음에 극적인 변화를 원한다는 말을 자주 하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급진적으로 변화가 생긴다고 하니 두려운 마음이 엄습한다.


”일단 제가 천천히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오늘은 그만 가셔도 좋습니다“


“오케이, 신청 취소. 라져“


빛이 사라지고 원래 방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으 춥다. 얼른 내 방으로 돌아와 이불 안으로 몸을 넣는다.


바꿔 준다고 했을 때 그냥 바꿀 걸 그랬나. 굴러온 기회를 뻥 차버린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생긴다. 그런데 살짝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이 소중하고 어떤 게 중요한지, 버려도 되는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이 아직 스스로 정리가 안 되어 있다.


마치 방 청소 대행업체를 불러서 그들의 로직대로 내 방을 모조리 정리하고 났을 때, 혹시나 나에게 소중한 어떤 물건들이, 그들에게는 쓸모없는 것으로 분류되어 처분될 수도 있겠다는 그런 불안감이다.


그래, 내 방은 내가 치워야지. 내 영혼을 갈더라도 내가 해야지. 그런데 사실 그게 잘 안되니까 사람을 부른 거긴 한데, 아 모르겠다. 일단 찬찬히 한번 생각을 해보자.


나는 무엇을 바꾸고 싶은 건가.


순서는 이렇다. 나는 직장인이다. 직장인의 루틴과 생활로 내 주변 모든 환경이 세팅되어 있다. 주중에는 회사를 가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예상되는 월급의 한도 내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그 수준에 맞게 여행을 가거나,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산다. 만나는 사람은 거의가 나와 같은 직장인이다.


성벽에 갇혀서 벽 밖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 체 살고 있다. 성밖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이 산다던데, 본 적도 없지만 굳이 만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제 직장인 말고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성 밖으로 나가야겠다. 일단 입체 기동장치(만화에 나오는 거인과 싸울 때 쓰는 장치) 사용법이나, 거인의 약점을 일격에 공격할 수 있는 기술도 훈련해야 한다. 용기도 있어야 하고 동료도 있어야 한다.


고로, 마인드가 달라져야 한다. 직장인 마인드에서 전사의 마인드로 갈아타야 한다. 그래야 훈련도, 기술도, 동료도 가질 수 있다. 새로운 루틴을 짜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생산해 내고 실행하고, 극복하고, 도전하는 강한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렇게 스스로 변화가 일어나면 주변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이런 프로세스.  


이 순서로 진행하기 위해 나는 지금 영혼의 리콜을 바라는 것이다. 아니, 그런 걸 원하면 그렇게 하면 되지, 뭘 또 리콜을 해 달라느니 말라느니 하냐고 물어볼 수 있다. 대답해 주지. 아까 내가 방 청소 업체를 언급했던가. 왜 그랬겠어. 그게 혼자 잘 안되니까 그런 거다. 방 정리하며 깨끗하게 살아봐야지 하고 마음은 먹었지만, 이게 생각처럼 진행이 척척 잘 안되다 보니. 아 씨 그냥 사람 부를까. 하는 거다.


(그냥 네가) 내 영혼을 (알아서 좀) 리콜해 주세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내가 바꿀 것인가, 사람을 쓸 것인가. 여기는 가정법이나 상상력이 충분히 발동해도 좋은 여긴 상념의 세계니까 현실적인 가능성의 여부(리콜이 어떻게 돼? 따위)는 차치하도록 하고. 내가 해? 남이 해? 딱 이거 두 개를 놓고 고민을 해보자. 두 가지 모두 나쁘지 않다. 다만 선택의 차이일 뿐.


어질러진 방을, 내가 직접 치울 것인가. 아니면 돈을 들여서라도 업체를 불러서 그냥 싹 밀어 버릴 것인가. 영혼을 스스로 개조할 것인가, 요청해서 리콜을 받을 것인가. 비용 차이, 시간 차이, 커스터마이징 차이, 만족도 차이 각각 장단점이 있으니 꼼꼼하게 잘 따져 보고 선택해야 한다.


나는 일단 내가 해보고 안되면 리콜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다시 사람 불러야지.


새로운 세계에서 살고 싶다.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인드가 지금과 달랐으면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직장인 말고도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나하나 짚어 보고 살펴보자. 리콜을 할 일인지, 아니면 고쳐서 쓸 수 있는 일인지.


사십 년 넘게 산 내 영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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