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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석 Oct 10. 2022

미아즈마(Miasma)

의료 인문학

최근 진료실에서 내 얼굴을 궁금해하는 환자가 부쩍 늘었다. 병원 안내란의 프로필 사진과 비교해 맞는 원장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인지, 아니면 사진과 달리 실물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가 궁금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그 궁금증을 해결은 못 하고 나간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이후에 환자에게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머리 크기와 눈매 정도로 그 원장이 맞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환자는 불공평하다고 느낄 것이다. 자신은 치료를 받기 위해서 얼굴을 다 공개하는데 원장은 신비주의도 아니고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니 말이다. 접촉이야 글러브를 낀다고 해도 공기를 통한 전염을 막기 위해서는 여전히 어쩔 수 없다. 말하는 입이 보이는 투명한 마스크를 써봤지만, 그 모양이 우스워 보일까 봐 결국에는 쓰지 못했다. 마스크 너머의 환자와의 만남은 얼굴 공개의 여부를 볼 때 평등한 만남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만남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마스크 때문이 아니라 환자와 나와의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공기’ 때문이다.


● 실내 공기 정화를 외친 나이팅게일


지금은 폐기되었지만 완전히 폐기되는 1880년까지 의료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미아즈마(Miasma)란 말이 있다. 콜레라, 클라미디아, 흑사병 등 질병의 발병원인이 ‘미아즈마’(고대 그리스어: μίασμα, "오염")라 불리는 ‘나쁜 공기’에 있다는 주장이다. 영어권에서는 ‘나쁜 공기’(bad air), ‘밤공기’(night air), 한자 문화권에서는 장기(瘴氣)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수인성 전염병을 줄이려고 물에 포도주를 타서 마셨다고 한다. 즉 먹는 물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조심했지만, 공기에 관한 생각은 훨씬 후에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미아즈마라는 독성을 머금은 수증기라고 믿었으며 질병을 일으키는 성분이 작게 분해되어 습기의 형태를 띤다고 생각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질병은 그러한 수증기가 발생되는 환경, 즉 오염된 물이나 악취가 나는 공기, 더러운 위생 상태와 같은 조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유해 여부는 악취의 유무를 통해 판별하였으며,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직접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미아즈마 수증기의 영향권에 있다면 전염된다고 믿었다.

나이팅게일의 저서 <Notes on Hospitals>

크림 전쟁의 유명한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역시 이에 따라 병원 내의 냄새 제거와 위생개선에 대단히 힘썼다. 나이팅게일이 병원 설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환기였다. 나이팅게일은 신선한 외부 공기와 햇빛의 유입이 환자들의 상태를 호전시키고 추가 감염을 막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859년 자신의 저서 『병원에 대한 소고(Notes on Hospital)』에서 이를 위한 병상과 병동의 배치를 상세히 제안했고, 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 서구의 병원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이팅게일의 이러한 노력은 비록 잘못된 학설을 근거로 시행한 것들이지만 결과적으로 병원 내 청결 유지와 위생개선, 원내감염 예방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이런 노력은 현대의 병원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19세기 사람들을 괴롭힌 홍역, 천연두 등의 전염병은 실제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었고, 미아즈마 이론은 당대 사람들의 건강에 결국에는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보건 공무원들이 '미아즈마의 제거'를 목표로 악취의 원인을 찾아다니며 부패 유기물과 쓰레기를 치웠기 때문에 서구 주요 도시들의 공중위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효과도 있었다.


● 치과에서의 환기(換氣) 중요성


치과에서 환자가 입을 헹구는 행위는 흔히 볼 수 있다. 가끔 ‘극혐’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한번 이런 질문을 해보자. '다른 사람들이 입을 헹군 물을 함께 마신다면 어떻겠는가. 기겁할 일 아닌가? 그런데, 호흡은 어떤가?' 이 질문은 하버드대학의 공중보건학 교수로 실내 공기 질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하고 있는 조지프 앨런이 지난해 10월 시사 교양지 『애틀랜틱』 기고문에서 실제로 제기한 질문이다. 


사실 느껴지는 혐오감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들이 뱉은 물이나 내쉰 공기를 들이마시는 건 그 사람들이 건강하다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질병에 걸려 바이러스 등의 항원을 배출하고 있을 경우다. 앨런 교수는, "미국의 일반적인 건물에서, 당신이 방금 들이마신 숨의 3%는 같은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의 폐에 들어갔다 나온 공기"라고 말한다. 미국의 건물들이 공간을 훨씬 넓게 쓰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이 비율은 3%보다 더 높게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고 치과에서 환자의 구강내를 치료할 때 나오는 비말을 생각하면 치과는 그보다 몇 배는 더 높을 것이다. 그리고 ‘극혐’이라고 생각하는 환자가 헹궈내 뱉은 물과 비슷한 비말이 공기 중에 퍼져 있을 것 또한 분명하다. 


● 창문을 닫으면 감염원 노출 4배


새로 지은 치과병원 건물을 몇 군데 찾아가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에도 소독 시스템과 환기 시스템에 무척 신경을 쓰신 원장님의 건물과 그렇지 못한 건물도 있었다. 환기 시스템에 신경을 잘 쓴 건물에서 일하고 있다면 행운이다. 앞으로 건물이나 인테리어를 계획 중이라면 반드시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바로 환기다. 그렇지 못하다면 선풍기라도 써야 할 것이다.


영국의 리즈 대학(University of Leeds)이 2013년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창문을 닫아놓으면 항원에 대한 노출 위험이 창문을 열어놓은 경우에 비해서 4배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환기와 기계식 환기(환풍기, 선풍기)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환기’가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효과가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이 내놓은 환기 가이드라인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원문링크 https://www.korea.kr/news/pressReleaseView.do?newsId=156477170)


미세먼지가 없는 나라의 연구결과라 우리나라와는 다르다고 창문을 닫아놓지는 않는 것이 좋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전문가들의 조언에 의하면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도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외에도 실내에는 이산화탄소, 내장재나 가구에서 나오는 화학물질 등 다양한 유해물질이 존재하고 치과는 유해물질이 이보다 훨씬 많이 발생하리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므로 하루에 적어도 2회, 1회에 10분 이상의 환기가 좋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치과의료정책연구원(원장 민경호 이하 정책연구원)의 작년 보고에 따르면 치과의사들의 평균 수명은 65.83세이며, 치과의사 중 암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의 44.92%로 일반인은 물론 여타 직업군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당장이라도 창문이라도 열기 시작하지 않으면 치과의사에게 100세 시대는 여전히 요원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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