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문학
오늘도 역시나 대기 컴플레인을 여러 명에게 받았다. 약속 장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했고, 직원들도 충원해서 서비스에 빈틈이 없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병원의 대기 줄은 조절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약속 장부를 너무 느슨하게 잡을 수도 없고, 찾아오는 환자를 기다릴 것이라는 이유로 돌려보내기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대기 환자를 조절할 수 있을까? 직원들의 인력활용도를 최대로 끌어올리면 해결될까?
‘들인 힘과 노력에 대하여 실제로 얻은 효과의 정도를 나타내는 비율’. 효율의 정의다. 즉 효율이 높다는 얘기는 ‘덜 힘들이고 효과는 높은’ 것을 말한다. 의료의 현장에서 이처럼 목말라하는 정의가 어디 있을까. 환자를 좀 적게 보고 신경을 덜 써도, 환자는 잘 낫고 돈도 잘 번다면 말이다. 아니 ‘덜 힘들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가 노력한 것만큼만 이라도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것이 대부분 병원 경영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병원의 경영이 가능할 것인가는 효율의 정의에 그 실마리가 있다. 바로 ‘들인 힘과 노력’을 조절하는 것이다. 효율을 높이려면 결과치는 같게 유지하면서 힘과 노력을 줄이는 것이다. 힘과 노력을 줄이면 효율성이 좋아질 수 있는데 왜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못하는 것일까?
오너들이 가지는 한결같은 마음이 있다. 직원들 ‘노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인력활용도(Utilization)’를 높인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신의 인력활용도는 100%에 가깝다고 자랑하듯이 얘기하는 오너도 있다. 과연 그런 게 자랑할 만한 일일까? 쉽게 이야기해서 인력활용도가 90%라고 가정해 보면, 총 업무시간을 1시간으로 봤을 때 1시간의 10%에 해당하는 6분을 제외한 54분을 일하는 데 온전히 썼다는 말이다. 즉, 야근과 초과근무를 밥 먹듯이 한다면 인력활용도는 100%를 넘길 수도 있는 일이다.
● 인력 활용과 응급 상황
‘큐잉이론(Queuing Theory)’는 고객 흐름의 최적의 비율을 얻기 위한 수학적 관리 시스템이다. ‘대기 행렬이론’ 또는 ‘대기 이론’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공정이나 서비스업에서든 낭비적 요소로 취급되는 대기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이론이다. 인력활용도와 연관 지어 보면 다음과 같은 공식이 나온다.
대기하는 사람 수 = <인력활용도/(1-인력활용도> X 인력활용도
만약 90%의 인력활용도라면 “예상되는 대기 수는 <0.9/1-0.9> X 0.9 = 8.1”이라는 답이 나온다. 예를 들면, 우연히 병원에 들어갔는데 대기하는 환자가 8명 정도면 인력활용도가 90%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이 공식에 의하면 인력활용도가 99%로 거의 100%에 가깝다면 대기 환자는 100명에 가깝게 된다. 긴 대기 줄은 직원들과 의사들의 부담을 일으키고, 그 부담은 실수, 치료의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력활용도가 60% 정도라고 한다면 대기 환자는 1명 정도다. 하지만 80% 이상으로 올라가면 응급환자의 대처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나라의 응급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응급실 직원의 과도한 활용도로 제때 응급환자를 보지 못하게 되고, 그에 따라 업무는 더 과중해지는 악순환 말이다.
● 위기 대처 능력
인력활용도가 높으면 일을 잘하는 것처럼 들려서 위기 대처 능력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말이 그렇게 들릴 뿐 대기의 행렬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위기를 잘 대처할 리 만무하다. 의사가 너무 피곤하고 바쁘다면 병원의 수많은 문제에 제때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다. 업무는 갈수록 과중해지고, 몸은 축나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눈덩이처럼 다시 커져서 의사를 스트레스로 짓누를 것이다.
수학자들은 이 공식에 의해서 “80% 정도 내외의 인력활용도가 과제를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는 최대치다”라는 의견을 냈다. 적당한 수의 대기 환자와 긴장감이 조화를 이루는 수치라고 보면 된다. 결국, 지나치게 높은 목표, 예를 들어 “인력활용도를 100%까지 높여야 한다!”라는 것은 자칫 지금 어느 정도 잘하고 있는 일마저도 모두 망칠 수도 있는 목표인 것이다. 조금은 낮은 목표가 오히려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수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효율적인 목표치는 있다.
● 과중한 부담은 효율의 적
일본어 ‘카이젠(改善, Kaizen)’이라고 불리는 지속적인 개선은 도요타 기업의 주된 철학이다. ‘린(Lean) 경영’이라는 경영 이론 방식을 의료현장에 도입하고 있는 것도 효율성을 높이려는 도요타의 경영 방식을 이론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린 경영을 통해 낭비를 감소하고 불필요한 비용 지출 제거, 진료의 질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고하는 병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상적으로 지속 가능한 품질의 질 개선을 달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티핑 포인트다. 여기서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이런 도요타의 경영 방식으로 유명한 ‘3 무(無)’의 원칙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1. 낭비하지 말라(MUDA)
2. 직원과 기계에 과중한 부담을 주지 말라(MURI)
3. 업무 처리 과정의 불규칙함. 불균일함을 피하라(MURA)
여기서 주목해서 보고 싶은 것은 바로 두 번째다. 흔히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실천하기 위해 대부분 노력한다. 하지만 인력활용도만큼은 최고로 끌어올리려는 것이 좋은 것인 양 직원들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더 높은 차원의 문제 해결과 혁신, 개선을 원한다면 두 번째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병원은 피로하다. 의사도 직원도 모두 그렇다. 이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바로 좀 ‘덜’ 노력해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게으름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쉬어야 한다는 뇌의 신호를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게으른 것처럼 보이는 의사가 제일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