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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해준 Feb 14. 2024

호텔 뭄바이 - 안소니 마라스

뭄바이 테러 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

때는 2008년, 11월 26일이었다.

장소는 인도의 최대 도시 뭄바이(Mumbai)의 인디아 게이트 근처.


이 날의 어두운 저녁이었다.

20대의 젊은이들 10명이 고무보트를 타고 뭄바이 해변에 도착한다.

이들은 인도 북서쪽에 붙어 있는 파키스탄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이들이 뭄바이에 여행을 오거나 학업을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불안해 보이는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건, AK 계열 자동소총과 권총, 수류탄 등이었던 것이다.


끔찍한 테러의 서막이었다.

9시 20분 트라이던트 오베로이 호텔시작으로, 이들은 뭄바이 중앙역, 타지마할 호텔, 유대교 나리만 회당 등에 침입하여 수류탄과 총으로 무차별 살상을 시작한다.

11월 29일 소탕되기 전까지, 이 공격으로 무려 195명 사망자 350명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최악의 테러를 후일에 '뭄바이 테러 사건'이라 부른다.

이 사건을 토대로 10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가 '호텔 뭄바이'이다.


영화의 시작, 고무 보트를 타고 뭄바이 해변으로 온 테러리스트들

영화는 4일에 걸쳐 일어난 이 사건을, 인도 최고의 럭셔리 '타지마할 호텔'을 중심으로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목숨을 걸고 호텔을 지킨 직원들과 다양한 개성을 지닌 투숙객들은 실제 인물을 토대로 꾸며지거나, 여러 인물의 특성이 한 인물로 재탄생한 것이다.

'손님은 신이다'라며 끝까지 투숙객들을 보호한 셰프 '오베로이'와 아래서 일하는 충직하고 헌신적인 시크교도 직원 '아르준'(데브 파텔 분), 부유한 인도인의 딸 '자흐라'와 미국인 남편 '데이비드', 그들의 어린 딸과 유모, 전 러시아 특수전 교관 출신의 NV 캐피털 창업자 '바실리' 등의 투숙객들까지.

이 개성 있는 주인공들이 엮어가는 에피소드들은 어느 정도, 때로는 완전히 창작된 것들이다.   


여느 평범한 날처럼, 뭄바이 중앙역에 사람들은 오가고 레오폴드 카페에는 각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웅성거리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인도의 자존심 타지마할 호텔의 밝고 화려한 로비는 국내외 인사와 직원들의 움직임으로 활기차고 분주했다.

일순간, 역에서 시작된 무차별 총격.

이어진 수류탄 폭발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도시울려 퍼지기 시작하는데...



파키스탄은 과거에 인도와 한 나라였다가 종교 차이로 갈라선 나라이다.

인도는 힌두교를, 파키스탄은 이슬람을 신봉하여, 두 나라는 끊임없는 종교 분쟁을 일으켜 왔다.

뭄바이 사건의 범인들 역시 파키스탄의 테러 조직 '라쉬카르 에 타이바'(Lashkar-e-Toiba)에서 보낸 것이었다.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 해도, '성전(聖戰, Jihad)'을 위한 것이라면 알라 신에게로 간다는 믿음을 주입받는다.

영화엔 나오지 않았지만, 여러 날 잠을 자지 않고 테러를 저지르기 위해 LSD 등의 약물까지 복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항간에 잘못 알려진 사실 중 하나가, 모든 이슬람교도가 저런 믿음을 지닌 근본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무슬림 중, 수니파 IS와 탈레반(Taliban)으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만 무장 테러를 저지른다.

저들 외에 기도와 단식, 금욕을 통해 신앙 생활을 영위하는 무슬림 다.

특히 '수피즘'이라고 하는 이슬람 신비주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미(Rumi), 하피즈(Hafiz) 등의 위대한 시인을 배출한 종교 전통으로, 신과의 강렬한 합일을 갈망하는 매우 순수하고 영적인 사상이다.

따라서 이슬람이라고 하여 모두 위험하고 폭력적인 집단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인도를 여행한 것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도 초였다.

여느 배낭 여행자들처럼 가장 주요한 이동 수단은 기차였는데, 제때 도착하거나 출발할 때가 드물었다.

한두 시간 늦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8시간이 넘게 기다릴 때도 있었다.

기차뿐 아니라 비행기도 그랬고, 사람들과의 약속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수많은 종족들이 섞여 살아가는 인도에는 '인디언 타임(Indian Time)'이란 것이 있었다.

이 시간은 계대로 가는  아니라, 각자의 사정대로 맘대로 흘러가는 것이 특징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8년도에도, 인도의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심지어 대규모 테러 사건의 대응에조차도.


너무나 느리고 안일하고 훈련이나 장비도 터무니없이 뒤처졌던 인도 경찰들은, 초동 대처에서 무장 테러단에 모두 사살되고 말았다.

뒤늦게 인도의 정예 대테러부대(Black Cats)가 델리에서 출발하여 뭄바이에서 작전을 시작한 것도 첫 공격이 시작된 지 10시간이나 지난 때였다.

뭄바이 테러에서 550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상자들이 나온 것은, 안일하고 부족한 대응 정책의 탓도 컸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묘사된다.

그래서 뭄바이 테러 사건 이후, 인도에서는 반테러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하는데...

실제로 인도에서 이런 사건을 만난다면, 모든 건 각자의 운명이고 신의 뜻이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테러로 불타고 있는 타지마할 호텔

90년대 중반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은 인도 여행기들에서는, 인도를 둘러싼 국가들과의 긴장 상태나 심각한 범죄 등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 책들에서 인도는 낙관과 달관이 일상화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나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인도인들의 거짓말, 사기, 성폭력, 자연재해, 버스 기차 사고 등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따라서 인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상과 신화에 젖은 이상향만을 투사할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적인 측면에서 주변국들과의 긴장 상태와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분쟁, 사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 '호텔 뭄바이'는 인도의 고질적인 종교 분쟁의 무시무시한 현실을 알려주는 데 공헌했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인도라는 나라의 민낯을 보여주는 데 있어 보다 균형감 있는 사실에 가까워진 것 같다.

지난번 다룬 영화 '라이언'이나 '신의 아이들'에서 지독한 가난과 아동 방치 등의 사회 문제는 소개됐지만, 파키스탄과의 종교 분쟁이라는 국제 정세는 이번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인더스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유수한 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치 사회적으로는 보호장치가 부족하여 신변을 불안하게 하는 무방비 상태의 나라.

이 나라의 빛과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때, 우리는 인도에서 고자 하 무언가를 구하는 여정에 제대로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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