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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해준 Feb 05. 2024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데이비드 핀처

브래드 피트의 인도 여행이 그려진 영화

태풍이 심하게 불던 날, 시간을 거슬러 가던 시계가 쿵, 하고 물아래로 가라앉는다.

노년에서 갓난아기로 인생을 거슬러 간 남자의 죽음을 회상하던 여인이 눈감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는 한 시계 장인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시간이 거꾸로 가는 시계를 역 광장에 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장인의 아들은 전쟁에 끌려 갔다가 관에 담긴 채 돌아온다.

아들이 참전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픈 아버지의 염원이 그런 시계를 탄생시킨 것이다.

하나의 우화나 판타지 소설처럼 간결하게 압축된 형식이라서, 그 슬픔은 절절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하지만 광장에 시계를 매단 뒤 죽을 때까지 그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슬픔으로 어디선가 죽었다는 얘기가 들려온 것으로 우리는 그의 아픔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우화.

그 시계가 역 광장에 린 순간, 한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다.

죽음에 임박한 주름 투성이 노인으로 태어난 아이는, 시계가 상징하듯 시간을 거슬러 가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아버지에게 버려져, 양로원에서 일하는 유모 퀴니의 손에 길러진다.


세상에 태어난 대부분의 아이는 봄날의 앳된 초목처럼 여리고 부푼 가슴으로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주인공 벤자민은 자신과 같은 모습의 노인들이 살아가는 양로원의 일상을 바라보며 삶을 시작한다.

젊은 시절의 추억에 잠긴 사람, 벼락을 일곱 번이나 맞고도 살아난 사람,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의 삶과 죽음이 혼재한 공간에서.


죽음에서부터 삶을 시작하기에 그에게는 욕심과 성급함이 없다.

양로원에 비치는 따뜻한 햇살처럼 그의 눈에는 체념이랄까 관조랄까, 부드러움이 늘 함께 다.

노년에서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되었을 때 러시아에서 만난 영국 여인과의 만남에서도, 남녀 간에 생기기 마련인 긴장과 설렘 아래 고요함이 깔려 있다.

밤바다에 떠 있는 불빛의 은은함과 같은.



일생의 여인 데이지와 운명적인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그녀와 딸에게 모든 걸 주고 인도로 떠나는 순간에도, 그는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헤어짐이나 어긋남은 슬픔이 아니라, 단지 함께 했던 순간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것일 뿐.

그래서 이 영화엔 시간 속에서 엇갈리고 마주치는 인연들의 소중함과 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름다운 별빛처럼 반짝인.


모든 사람들이 삶에서 원하는 것을 손에 잡기 위해 숨이 차도록 급하게 달려간다.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아가기 바쁘다.

하지만 벤자민의 걸음은 죽음처럼 고요하고, 무덤처럼 평화롭다.

죽음에서부터 삶을 시작한 남자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나의 연속, 그 명멸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의 순간에도 수긍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기억나는 건, 양로원의 노인이 하나둘 사라져 다른 이들로 바뀌어도 계속되는 따스한 햇볕 같은 바라봄이다.



영화 속에서 )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뿐 마지막 도착하는 곳은 같다.
 
- 퀴니


네가 아니다 싶을 때는 언제든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길 바란다.
결국 남은 진실은, 시간이란 순리대로 살든 거꾸로 살든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누군가는 강가에 앉아있는 것을 위해 태어난다, 누군가는 번개에 맞고..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수영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잘 알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알고.. 누군가는 어머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 벤자민
Ps)
벤자민이 사랑하는 여인과 딸에게 자신의 모든 걸 주고 떠난 곳이 '인도'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인도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이고, 죽음에서부터 탄생이, 파괴에서부터 재생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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