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샐리(Sally)와 나 사이

by 샐리

“이름이 뭐예요?”

영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자주 들은 질문이다.
그 짧은 문장 앞에서 나는 한순간 말을 고른다.
내게는 한국 이름이 있다.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You can call me Sally.”

‘샐리’.
한국에서 영어 이름을 하나쯤 갖고 있다는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선생님이 기억하기 쉽고, 외국인들이 부르기 쉬운 이름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렇게 불려 왔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아, 살리?”
“샐리? 아, When Harry Met Sally?”
“아니야, 여기선 Sally를 '살리'라고 읽어.”



나는 샐리라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살리라고 한다

샐리는 내가 생각하기에 참 예쁜 이름이었다.
발음도 부드럽고, 어딘지 모르게 따뜻하고 여성스럽다.
그런데 영국에선 그 이름이 ‘살리(Sally)’라는 전혀 다른 발음으로 불렸다.

그들이 말하길,
“Sally는 영국식 발음으로는 ‘샐리’보다는 ‘살리’에 가까워.
그렇게들 불러.”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자신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생각하던 ‘Sally’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내가 지은 영어 이름에서조차 소속감을 잃은 듯했다.


이름 Sally에 담긴 이야기

그 후에야 나는 Sally라는 이름의 의미를 찾아보게 되었다.

Sally는 본래 Sarah(사라)의 애칭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Sarah는 히브리어로 “공주”, “귀부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Sally 역시 ‘공주’, ‘귀한 사람’, ‘우아한 여성’을 의미한다.

게다가 영화 When Harry Met Sally에서
샐리는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똑똑하고 따뜻한 여성이었다.
그래서 그 이름은 나에게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어떤 여성상, 내가 닮고 싶은 누군가의 이미지였다.

그러니 더 혼란스러웠다.
내가 애정하던 그 이름이 이곳에서는 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름이 묻는 정체성의 질문

영국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영어 이름 말고, 너의 진짜 이름은 뭐야?”

그들은 진심이다.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더라도, 알려줘. 연습해 볼게.”
“그건 네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이름이니까.”

놀랍게도,
여기서 만난 대부분의 외국인 친구들은 자신의 본명을 정확히 말한다.
긴 이름이든, 발음이 어려운 이름이든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인들, 특히 나를 포함한 우리 세대는
자신의 본래 이름 대신 영어 이름을 ‘기본값’처럼 사용한다.
이름은 점점 자기소개가 아닌, 편의와 타협의 결과물이 되어간다.


나를 부르는 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시동생을 처음 만났을 때, 나도 늘 하던 대로 말했다.
“My name is Sally.”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영어 이름 말고, 진짜 이름은 뭐야?”

내 한국 이름을 조심스레 꺼내자,
그는 몇 번이고 따라 발음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두고, 왜 영어 이름을 써?”

그 말에, 나는 순간 부끄러움과 해방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내 이름은,
내가 포기해도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름은 나의 가장 단단한 뿌리

요즘은 K-컬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제는 한국 이름도 낯설지 않은 시대다.
오히려 “영어 이름이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되돌아오기도 한다.

나는 이제 생각한다.
‘샐리’든 ‘살리’든, 혹은 내 한국 이름이든
그 이름이 가진 뜻과 이야기를 알고,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진짜 이름을 가진 사람의 태도 아닐까.

다시 내 이름을 부른다

누군가 다시 묻는다면,
“당신의 이름은 뭐예요?”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My name is Sally — but more importantly, my real name is KIM
It means something beautiful, and I’d be happy to teach you how to say it.”


그 순간,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하나의 고유한 사람으로 남게 될 것이다.

샐리도, 살리도 아닌, 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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