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던 어느 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출산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새벽, 떨리는 몸과 함께 너를 안았다.
임신이 확정된 후, 나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출산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대병원에 근무 중인 친구가 있어 자연스럽게 그 병원을 선택했고, 정기검진도 그곳에서 받으며 출산을 준비해 왔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진 어느 날 아침,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기 위해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고개를 숙인 채 머리에 물을 붓는 순간, 몸에서 이상한 느낌이 밀려왔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 뭔가 알 수 없는, 본능적인 불안. 무언 지는 모르지만 큰일이 난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급히 수건으로 몸을 닦고 택시를 타 병원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입원하자마자 병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매시간마다 의사가 다녀갔고 양수가 터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출산 준비에 돌입한 것이다. 이후에는 인턴들이 교대로 들어와 상태를 체크했다.
인턴이 들어와서 자궁에 손을 넣어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궁 안을 손으로 휘저어 보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 중얼거리듯 이 상황에 대해 주고받았지만, 그 안에 내게 들려주는 설명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감각이 또렷했고, '산모'이자 '여자'이자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실험 대상처럼 느껴졌다. 존중도 설명도 없는 그 무언의 손길들 속에서 수치심과 공포가 동시에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 수치심도 잠시, 진통이 시작됐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지금껏 살아오며 겪어본 어떤 통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의 끝에 도달한 듯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 혼자였다. 남편도, 가족도, 아무도 내 옆에 없었다. 드라마 속에서처럼 남편의 머리채를 잡고 울 수도 없었다. 누구 하나 내 손을 잡아주지 않는 그 공간에서 나는 홀로 고통을 견뎌야 했다.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이렇게 아픈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했다.
그 고통은 점점 더 자주 일어났다. 20분마다, 10분마다. 죽고 싶지만 죽을 수도 없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고통을 이때 나는 다 격었다.
전날 아침에 병원에 입원했고, 그 밤을 넘겨 새벽 4시 10분. 마침내 딸을 낳았다. 모든 진통이 끝났을 때, 내 몸은 탈진해 있었고 정신은 아득했다. 그 순간 간호사들이 다가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딸이에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희미하게 맴돌았다. 그 말은 분명 기적 같은 소식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딸’이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곧, 손끝이 파르르 떨리더니 그 떨림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추워요… 이불 좀 더, 좀 더 주세요.”
나는 의식을 잃어가는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했다. 이불을 한 겹, 또 한 겹 덮었지만 한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빨이 부딪히며 달달 떨리고, 몸은 말 그대로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간호사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하혈이 심하셨어요. 체온이 확 떨어져서 그래요.”
기쁨도, 안도도, 눈물도… 그저 차가운 떨림만이 내 몸을 지배했다. 그렇게 나는, 덜덜 떨리는 이불속에서 또다시 의식을 놓아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남편이 병실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그제야 말했다. “고생했어.”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였다. 친구가 나를 특실에 보내주고 일반 병실에 입원시킨 것으로 해 두었기 때문에, 특실에 있는 나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내 병실이 어디 있는지 몰라 밤새 병원을 헤맸고, 아침이 되어서야 병실을 찾았다고 했다.
2박 3일간 병원에 머무르고, 그제야 처음으로 아기를 품에 안고 얼굴을 제대로 마주했다. 놀라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딸인데, 나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 정말 놀랍도록 시어머니를 꼭 빼닮은 얼굴이었다.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을 견디고 낳은 아이인데, 그 얼굴이 나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내가 사라진 것 같은, 내가 없는 결과물 같았던 그 순간. 나만 그런 걸까?
그 모든 고통, 외로움, 수치심, 그리고 낯선 얼굴을 마주한 그 순간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해, 아가야.”
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든, 나와 얼마나 닮았든, 그 모든 건 중요하지 않았다. 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 끝에 얻은 선물이고, 그 순간부터 나는 너의 엄마가 되었다.
세상에 너를 낳고, 너를 안고, 너의 체온을 처음 느낀 순간, 나는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기쁨과 동시에 가장 아프게 가슴을 친 감정 하나.
너도 언젠가, 이 고통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그래왔듯, 너 역시 언젠가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면 오늘의 나처럼 이 찢어질 듯한 고통과 외로움, 두려움을 홀로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게, 너무도 가슴 아팠다.
그래도 엄마는 기도할게. 네가 겪게 될 그날이 오늘의 나보다 덜 아프고, 덜 외롭기를.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