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나는 전업주부이긴 하지만....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되었다.
딸이라고 한다.
휴우
한숨부터 쉬어졌다.
남편은 걱정이 많아졌다.
독립적이고 주도적이며
자존감 강하면서도
자기 일을 끝까지 놓지 않는
그런 여성으로 키워낼 수 있을까..
그런 여성으로 키워내고 싶다.
결혼 지옥에 나온 의존적인 아내를 본 게
너무 잔상에 남는다.
아무리 성장기 결핍이 있었더라도
저렇게까지 의존적일 수 있을까...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하면서도
속상하다.
이제 나에게도 딸이 생겨서 그런지
세상에 독립적으로 우뚝 설 수 없는
성인을 키워낼까 봐 난데없는 책임감도 생긴다...
그러면서 거울을 보게 되면
나라고 뭐 다를까 싶기도 하다.
10년이나 누렸던 내 직함과 명함.
내 일을 하면서 나는 가장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에 비하면 나이가 들수록 왜..
점점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걸까
어찌어찌 살다 보니
내 일을 포기해버린
전업주부가 되어버렸는데
욕심이겠지만
내 딸은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길
솔직한 심정으로
욕을 먹게 되더라도
정말 진심으로
내 딸은
전업주부로 키우고 싶지 않다...
가정과 살림과 육아가 주는 기쁨 큰 거 아는데..
내 명함이 주는 자존감을
명성? 사회적? 조직? 이 주는 성취감을
자양분 삼아 발전하는 그런 여성이 되길 원한다.
내 딸... 나 때문에 너무 힘들까?
엄마는 편한 길 선택했으면서...
휴우
내가 아는 아저씨는 자기 딸들이 전업주부가 되길 바라셨고 실제로도 그렇게 키우신 분이 있다.
(그 아저씨는 부자도 아니며, 농업을 주업으로 한다)
어릴 때 딸들한테는 공부 스트레스도 크게 주지 않았고, 대학에 갈 정도는 안돼서 전문대를 보낼 때도 나중에 살림할 때 도움되라고 조리학과로 입학시켰다. 20대 초반부터 중매를 서셨고 그렇게 해서 그 어르신의 두 딸은 20대 중반쯤 부모님이 맺어준 인연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그 딸들이 나보다 어리다. 어쩌다 기회가 돼서 그들을 만나면 참 밝고 구김이 없다.
나처럼 내 일 포기하고 전업주부 된 거에 대한 방황이나 자존감 상실 같은 거도 없다.
엄마도 언니도 본인도, 할머니도 이모고 고모도 집에서 살림하는 게 당연한 문화라서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
그 아저씨는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짓기 전까진 서울에서 대학도 나오고 직장생활도 하며 나름 치열하게 사셨다고 한다. 그러다 인생의 쓴맛을 겪으시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 여자와 결혼하고 농사를 시작하셨다.
그래서 참, 그 아저씨는
이 힘든 세상 아등바등거리지 말라고
자식도 그런 심정으로 키우셨다고 한다.
사람마다 다른 거겠지만
부모의 욕심으로 자식들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그 아저씨의 가치관도 어쩌면 맞는 것 같기도 한데.....
벌써부터 나는 이렇게 욕심이 생겨버리니
어쩌면 좋을지
내 딸에게 바라는 것 딱 하나가
전업주부가 되지 않는 거라고 하면 참
너무나 큰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