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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Dec 26. 2022

생은 공평할까


버스가 소란스러워졌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언니네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책을 읽다가 고함이 들리고, 정류장에 선 버스가 출발하지 않아서 무슨 일인가 고개를 빼고 보았다. 기사가 한 남자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마스크를 쓰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탔는데 버스 복도에 그 가방의 문을 쫙 펴고 허둥지둥 가방 속을 뒤졌다. 한참이나 마스크는 나오지 않았다.


일단 그는 앉아서 마스크를 찾겠다고 말하더니 큰 가방을 들고 내 자리 쪽으로 왔다. 다가오는 그의 행색을 보니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키가 160cm 이 안 되는 50대 정도의 남자였고, 옷도 가방도 그 얼굴도 땟자국이 가득했다. 기사가 왜 고함쳤는지 알 것 같았다. 태우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결국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계속 마스크를 찾았다. 내 눈은 그의 손길을 쫓았다. 허우적댔지만 그 손에 그다지 힘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아무래도 그는 이제 가방에 마스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저 기사의 관심이 잦아들 때까지 찾는 척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가방이 너무 커서 잘 안 찾아질 수도 있고, 당황해서 더 안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버스는 출발했다. 그때 나는 핸드백에 항상 여분으로 두는 새 마스크가 떠올랐다. 핸드백을 조심스레 열고 마스크를 꺼내 그의 손으로 전달했다. 그를 계속 주시하는 성난 기사가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주는 것처럼 살짝 건넸다. 그는 그걸 얼른 받으며 고맙다, 말했다. 잠시 후 그가 물었다.

"이건 뭐예요? 소독약 같은 거예요?"


그의 질문에 그가 가리킨 것을 보았다. 알코올솜이었다. 마스크와 함께 낱개포장된 알코올솜이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이었다. 핸드백 속을 보지 않고 손에 짚이는 대로 주어서 그게 같이 딸려간 것을 몰랐다. 순간 그가 원하지 않는 것을 준 것이 미안해서, 혹시 그가 내가 동정하고 있다고 여길까 봐, 그게 아님을 표하기 위해 서둘러 말했다.

"아, 그것까지 드린 줄 몰랐어요!"

그것을 도로 가져가려고 알코올솜에 손을 갖다 댔다. 그때 그가 알코올솜을 꼭 붙잡았다. 마치 '낙장불입'을 선언하듯이. 나는 그의 손아귀힘이 강한 것을 느끼고 도로 손을 거두었다.


일부러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는 척하면서 속상해했다. 100개 천 원에 파는 알코올솜이 아까운 건 물론 아니었다. 그가 알코올솜까지 거저 가려는 마음을 가진 게 좀 속상했다. 함부로 속상해했다. 그의 생을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그는 최선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안타까워했다.


잠시 후 그는 기침을 해댔다. 기침의 기세는 거셌고 한 번, 두 번, 멈추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기침을 하면서 손을 마스크 안쪽 입에 갖다 대자 그의 침이나 콧물로 보이는 액체가 내 손등에 떨어졌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당황해하며 외쳤다.

"아이고 내려야겠네!"

그러곤 서둘러 내려버렸다. 탄 지 세 코스만에 말이다. 나는 그가 어느새 정류장에 내려서 밖에 서 있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기침이 잦아들면 다시 타려고 그러시나? 생각했을 무렵 버스는 출발했다. 그가 탔다가 내린 거리는 도보 20분이 안 되는 거리였다. 날이 너무 춥긴 하지만 겨우 두세 코스 타겠다고 1300원 버스비를 날릴 이유는 없었다.


왜 갑자기 내렸을까? 궁금했다. 그는 어쩌면 나 때문에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침이 튄 후에 그가 서둘러 내린 것을 보면. 내게 더 이상의 피해는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2분 전 알코올솜까지 가져가는 뻔뻔스러운 한 남자는 이제 내게 좀 다른 존재로 여겨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버스기사 때문에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기침이 계속되면 다시 내리라고 소리쳤을 기사. 기사가 소리치면 승객들의 이목이 집중될 테고 그는 그 시선을 다시 견디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버스기사는 당연히 '마스크 쓰세요!'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퇴마사 같은 그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너무 차가운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자 예수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가 떠난 후 인생이 불공평하단 생각을 다시금 했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그의 왜소한 몸집 때문이다. 그가 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높은 확률로 그의 몸집도 지금보단 컸을 것이고, 이런저런 일자리를 얻기도 쉬워서 낯선 기사에게 멸시를 당하는 생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지만 나도 버스 기사처럼 행색으로 함부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짐작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의 생이 지금만 좀 침체기를 겪고 있는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생이 공평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끔 생각하곤 한다. 사실 크게 보면 우리는 모두 공평한 생을 살고 있긴 하다. 지구 아래 생명체로 살고 있으니까. 그러니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깨달은 자들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서, 다시금 생각의 림보에 빠진다. 결국 생은 작게 보면 불공평한 게 아닌가. 크게 보면 공평할지언정. 그러니 올해 어려웠던 모두가 새해엔 복을 가득 받기를. 공평하게. 공평하게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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