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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Mar 26. 2023

혼자 사는 삶

영화 <오토라는 남자>에서 오토는 아내가 죽고 자살을 결심한다. 다행히 수다스럽고 다정한 이웃 덕분에 살아간다. 오토가 자살을 결심한 건 아내가 죽은 지 6개월 만이다. 6개월이란 대사가 나오는 순간 속으로 what? 하고 외쳤다. 수십 년 혼자 살아간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아내 사랑이 지극해도 그렇지. 이 영화의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웃사랑으로 삶의 의미를 찾다니.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웃이 없는데 말이다. 아니 이웃은 있지만 눈인사만 하는 사이니 블로그이웃보다 못한 이웃이다. 이런 판타지 같은 스토리를 접하면 허무하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괜찮다.)


한국의 700만 독거인 혹은 천만 예비독거인들은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 영화에서 말하는 결론대로 일단 빨리 이웃을 구해야 할까? 아니면 애인을 얻을까? 

실제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소설가들 중에는 글감을 찾기 위해 꾸준히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었단다. 누구는 불륜까지 저지르며 애쓴다는데,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일 정도는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나. 일단 사람을 꾸준히 만나기 위해 힘쓰기로 한다. 사람은 한 세계를 만나는 일이니까. 사무치게 외롭기 전에 친구에게 가볍게 연락해 보고, 그런 친구가 없다면 동네 구청에서 발행하는 신문에서 무료 강의 찾아다니고, 매주 종교 행사 나가고, 동네 모임 찾아다니면서 '사람 허기'를 달래야 한다. 내 경험상 종교 기관 '새신자모임'을 주관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었다. 길거리 전도로 간판도 숨기는 사이비종교에 끌려가지 말고, 어엿한 건물이 있고 세간의 평이 나쁘지 않은 종교기관 새신자모임 시간에 가면 된다.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각자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외로움을 덜 타는 편이고, 사람을 자주 만나면 오히려 마음이 어지러웠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만난다.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을 때-난 이럴 때가 많다- 는 사람 구경을 하러 돌아다닌다. 버스, 지하철 혹은 동네 공원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내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다. 세상에 내가 속해 있다는 위안. 구경하는 나에게 그들이 해를 끼칠 리도 없다. 


하지만 집에서 나가기도 어려운 사람에게 연애를 하라, 이웃을 구하라, 사람을 찾으라는 말은 허망하다. 우리 중에 일부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사람 만나라는 말은 판타지일 뿐이다. 사람 상처를 극복하기까지는 혼자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몇 달 전 글에선 인생에 '사랑 없는 삶'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다. https://brunch.co.kr/@particcle/20 하지만 이 결론이 좀 미적지근한 것 같아 계속 생각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꿈에서 답을 주었다. 정말 꿈이었다. 꿈에서 말하길 '상상'을 하란다. 조앤롤링의 예를 들면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조앤롤링은 세상에 혼자 떨어진 것 같은 상황이었기에 위대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다. 해리포터 같은 넘사벽 상상을 할 필요까진 없다. 5만 원 여윳돈이 생기면 뭐 시켜 먹을지 상상하고, 내가 뉴진스 민지처럼 예쁘다면 어떤 삶이 펼쳐질지 상상해 본다. 그 상상을 온라인 어딘가에 쓰거나, 그림 혹은 음악으로 남기면 세계와 연결될 수도 있다. 인정받을 거라 기대하지 말고 그냥 올린다. 나를 드러내는 게 부끄러우면 '티끌'처럼 익명으로 올려도 된다. 어딘가에 올릴 정도가 아니라면 그냥 내 메모장에 기록한다. 상상이 나와 세상과 하는 대화다. 


상상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웹툰이나 소설, 웹소설을 읽고 인물의 이후 이야기나 이전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 좋겠다. 영화, 드라마보다는 텍스트가 있는 매체가 상상력에 도움이 된다. 이런 상상력도 없다면 나만의 칼럼이나 리뷰를 쓰면 된다. 일기는 당연히 좋다. 이런 것들은 모두 '마음에 누군가가 말을 하게 만드는 수단'이 된다. 저녁이 되면 잠을 충분히 자려 애쓴다. 테아닌, 트립토판, 마그네슘, 멜라토닌 중에 한두 개를 먹고 잠자리에 든다. 그래도 잠이 안 오면 또 상상하면 된다. 걱정이 아니라 상상을 해야 한다. 살짝 말이 안 되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게 좋다. 불면증이 심했던 내가 요즘은 이런 약물과 상상 덕분에 좋아졌다. 한 가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안에만 머물면 미칠 수 있다. 미치진 않도록 외부 세계와 약간은 연결되는 게 좋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라도 말이다. 


정리하면, 먼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애쓴다. 어려우면 사람 구경을 하러 다닌다. 이것도 어렵다면 상상으로 세상과 대화를 나눈다. 어떤 신도 내게 말을 걸지 않지만, 상상은 내게 말을 건다. 아무도 없는 삶의 끝에서 우리에게 구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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