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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Mar 19. 2023

악인

더글로리를 뒤늦게 보다. 

보는 동안 요즘 드는 생각이 굳어졌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로 좋은 삶은 이렇다.

악인과 부대낄 일 없는 삶.


악인과 부대낄 일 없는 삶. 


동은이의 삶에 연진이가 없었다면 동은인 다른 삶을 살았을 텐데. 평생 한 사람을 그리워하듯 복수를 꿈꿔야 하는 삶이라니 그 삶은 얼마나 황폐가. 


살아가면서 내가 남들에게 악인으로 머무를 일 없고, 악인이 내 삶에 머무를 일도 없는 삶. 그게 좋은 삶이다. 내가 수백 억 자산가라도 아버지가 악인이라면 혹은 배우자가 악인이라면 내 삶은 현실 지옥이다. 내가 업계 최고 명예를 얻어도 업계에서 누군가 나를 집요하게 괴롭힌다면 내 삶은 현실 지옥이다. 악인을 스쳐 지나가면서 만날 가능성이야 누구나 있겠지만, 그 악인이 내 삶에 진을 치고 내 마음을 공격히지 않는 삶이 좋은 삶이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나 어떤 곳에서 나올 때 서로에게 적당히 나빠서 헤어질 수는 있지만, 상대방이나 내가 악인의 모습까진 아니어야 한다. 관계의 정의는 만남보다 헤어짐에서 밝혀진다. 


내 꿈 안엔 나만 있어야 한다. 복수나 저주를 꿈꾸는 일은 내가 한동안 어떤 지옥을 겪었다는 징표다. 내 꿈에 굳이 타인이 들어올 일 없는 삶이 좋은 삶이다. 남들에게 사기, 살인, 폭력, 강도, 강간뿐만 아니라 지독한 거짓말도, 지독한 시기와 질투, 지속적 가스라이팅과 언어폭력을 당하지 않는 삶이 좋은 삶이다. 


그렇다면 이미 악인이 내 삶에 머무르는 존재가 되었다면? 하루빨리 내가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그가 가령 기족, 상사, 동료, 애인, 선생, 친구라면 끊어내자. 도망치는 게 아니라 그가 내 삶을 더 황폐하게 만들게 하기 전에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지옥은 악인 혼자 스스로 겪어내도록. 그게 악인을 향한 첫 번째 복수이고 저주다. 악인은 대개 자신의 화를 견뎌내지 못해 상대방에게 화를 입힌다. 당해줄 누군가가 없으면 그가 괴롭히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 된다. 동은이처럼 온몸에 연진의 화를 대신해서 다 겪은 후 복수심을 꿈꾸는 일은 허망하다. 덜 당했을 때 자리를 피해 나를 건져내자. 두 번째 복수는 나간 후에 생각할 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악인의 모습이 되지도 않아야 한다. 악인이 되는 것은 상대적이다. 상대방에게는 그 악인이 나일 수도 있다. 적당히 살고 있는 내가 더 잘 살겠다고, 혹은 변화가 싫다고 잘 살아가고 있던 남을 밀어 떨어뜨리진 말자. 내가 갖못한 것을 남이 가졌다고 속으로 시기와 질투를 할 수는 있겠지만, 남에게 해가 될 소문이나 액션을 취하지는 말자. 그런 당신은 악인이 된다. 


지독한 시기심에 모함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던 당신은 내 삶에 악인이었다. 덕분에 풍파가 꽤나 있었던 내 삶이 그동안엔 좋은 삶이었다 여기게 되었다. 어떤 사건을 겪느냐가 삶의 가치를 정하지 않는다. 누구를 만느냐갸가 삶의 가치를 정한다. 교통사고를 당해도, 설사 사업이 망해도 내가 강하면 견뎌낼 수 있다. 교통사고 같은 사건 그 자체가 내 삶을 지옥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로 인해 마음을 다치면 삶은 지옥이 될 수 있다. 마음을 다친 사람의 회복은 더디다. 악인을 만나자 강했던 마음이 약해지고 한 순간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덕분에 내게는 좋은 삶의 기준이 생겼다. 삶에 '악인'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당신의 괜찮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악인으로 머물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적당히 베풀며 사는 것이다. 이것만 지키면 당신은 계속 괜찮을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악인이 내 삶에 머물려고 하면 재빨리 나오면 된다. 곧장 떠나는 용기와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악인의 본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으니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기다리지 말자. 그를 떠난 후 복수에 성공한 동은이가 된 것마냥 입술 꼬리 올리며 비웃고 박수를 쳐주자. 다시는 내 삶에 악인의 쉼터를 건축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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