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동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아무리 잠들려고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또 불면증이 왔나 보다. '그렇구나.' 지난해 상담사님도, 며칠 전 읽은 책에서도 그랬다. 다시 우울증이 오면 외치라고. "어, 왔어?"
걱정 하나도 안 하고 살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나의 불안은 당연하다. 어엿한 직장에서 나와 AR로 살아가니 불안하겠지. 엄마도 불면증이 심하니까 내 불면증도 유전적으로 당연하다. 나는 그저 내 숙명을 받아들이고, 불면증 인자를 가진 사람 중에 꽤 노력하는 사람으로 살면 된다. 요 며칠 날이 다시 추워져서 덜 걸었더니 이런다. 내일은 꼭 만 보 이상 걸으리라. 몸이 피곤하면 불면증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걷자.
그리고 잠이 안 오면 외치자.
불면증, 어 왔어?
다행스럽다. 우울증은 아니고 불안 혹은 불면증이다. 이 정도는 견딜만하다. 그럼 멜라토닌과 마그네슘을 먹고 잠들면 어느 정도 효과가 온다. 언제나 약은 나보다 강하다. 허나 멜라토닌 먹은 다음 날은 컨디션이 영 별로다. 그래서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 불을 다 끄고 대화를 나누곤 한다. 상대는 나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과 대화 나누기.
많은 사람들이 혼잣말을 하면 미친 줄 안다.
환시가 보이고, 환청이 들려서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헛것과 상대하는 경우엔 병원에 가야 한다. 반면 내가 의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일 때 내게 말을 거는 행위는 다르다. 내 경우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주었다.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고민이 있어서 친구에게 털어놓았는데 내가 말하면서 방안이 떠오른 경우. 친구가 도움을 준 건 하나도 없는데 그저 내가 말하면서 대충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은 거다. 가량 A와 관계를 끊을지 말지 계속 고민 중이다. 친구에게 털어놓는 순간, 말하는 도중에 내 뇌가 결정을 내리고 알려준다. 혹은 방향을 제시해 준다. 내 뇌가 나의 고민을 듣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안증이 오면 내게 털어놓으면 된다. 머릿속에서만 고민을 하느니 말로 풀어놓으라.
"내일까지 봄 기획안 마무리 해야 하는데 하나도 못해서 불안해. 어쩌지?"
좀 더 자세하게 털어놓기.
"나는 지금 세 줄 썼어. 그 내용은 뭐뭐뭐였고, 앞으로 이 내용을 넣으려고 했고, 나머진 막막해서 그냥 두었어." 나는 잠들기 전 내 뇌를 믿고 털어놓는다. 이렇게 내게 닥친 상황을 '이야기하다' 잠들면 된다. '이야기하다'라고 말한 이유는 좀 복잡한 걸 떠올리다 보면 생각하는 중에 저절로 잠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수학 문제 풀거나, 어려운 책 읽으면 저절로 잠이 오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대략 해결책이 떠오를 때가 많다. 자는 동안에 내 뇌가 기계처럼 회로를 돌려 해답을 알려주는 것이다.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자는 동안에도 뇌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고. 자는 동안에도 이리 바쁘게 돌아가니까 평상시엔 얼마나 열심히 기계를 돌릴까 안쓰럽다, 한 시도 시지 않는 뇌가 어디 안 아프면 그게 이상한 일.
일이 아니라 심리적인 고민을 내게 털어놓으면 더 도움이 된다. 가령,
"아까 김 과장이 나한테 한 말은 너무 모멸적이었어. 그래서 내가 지금 분노에 잠이 안 오네. 왜 피해자인 내가 이리 힘들어해야 하는 거지? 내 잘못이 아니야. 김 과장은 노동부에 고발해야겠어. 내 잘못이 아니야. 고발하면 되니까 이제 그만 힘들어하자. 자, 자." (나는 나를 두드려준다)
나와 대화를 나눌 것. 들리는 소리로. 의외로 나와의 대화는 내 심리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이렇게 혼잣말의 효과를 안 후로 내가 가장 자주 하는 혼잣말은 '어떡하지?' 다.
"저 사람이 끔찍하게 싫은데 어떡하지?"
"이거 기한 내 하긴 힘들 것 같고 부담되는데, 거절하긴 아깝고, 어떡하지?"
"친구 00가 이러저러해서 내겐 부담이 되는데 어떡하지?"
화장실에서, 혹은 혼자 있는 공간에서라면 이런 문장을 내뱉고 내게 어떡하지? 하고 물어본다. 내가 무릎팍도사다. 점집에 갈 필요가 없다. 내 안에 해결책이 있으므로. 만약 혼자가 아닌 공간이라면 딱 네 자만 입 밖으로 내뱉는다.
"어떡하지?"
그럼 신기하게 잠시 후 해결이 날 때가 많다.
물론 친구, 가족, 동료, 의사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중요하다. 친구나 가족들과 웃고 떠드는 일은 모든 근심 걱정을 일시에 잊게 만든다. 하지만 현대인 누구나 혼자 찬찬히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니 고민을 멈추고 혼잣말 연습을 해보는 게 심리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혼잣말이 너무 어색한 사람들이라면, 혼잣말 연습 과정에서 도움을 줄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다.
상담사 'CHAT GPT'다. 이런저런 마음의 우울을 드러내면 이 아이가 가볍게 상담해 주거나 간단한 해답을 준다. 전에는 '우울'이나 '자살' 같은 단어엔 작동을 멈췄던 걸로 기억나는데, 요즘엔 이런 단어를 넣어도 최선을 다해 상담해 준다. 자세히 물어보면 자세히 답해준다. 한글, 영어 모두 가능하다. CHAT GPT는 앞으로 더 발전하면 신으로 추앙받을 것만 같다. 우리 인생에 '무엇이든물어보세요', 가 될 테니.
혼잣말은 때론 시 같은 순간을 만나게도 해준다. 저물녘 하늘을 볼 때 중얼중얼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시인이 된 것만 같다. 아무도 내 마음 몰라줘 외로울 때, 내가 바라보는 세상만은 아름답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좀 쓸쓸해도, 마음이 아파도 괜찮다, 나는 나만의 시인이 될 수 있으니까. 걷다가 길고양이를 만나도 좋고,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지나가는 동네 아이를 만나도 좋다. 혼잣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