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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Nov 14. 2022

우리는 자꾸만 메뚜기가 된다

〔커피값 프로젝트〕 초겨울호 2020. 12. 02. Wed.


  역병이 터져 갈 곳을 잃었다. 내겐 써야 할 글이 있고 밑줄 쳐야 할 책이 있는데 번듯한 공간은 없다. 오 평 남짓한 집에 살면서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과 쉼을 철저히 분리해야만 한다. 오후 세 시쯤 되면 노란 해가 바닥에 깔리는 베란다 창가에서 책 읽고, 그러다 에피파니가 떠오르면 방문을 열고 서재로 들어가 창문을 마주보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면 좋겠다. 그러나 바야흐로 이 시대, 대출은 막히고 집 가진 자들은 세금이 높다 목 놓아 부르짖으며 또 한 번 집 없는 이의 설움에 비죽비죽 조소를 얹는 혼돈의 시대에 발붙이고 사는 청년들은 집 안의 것들을 바깥으로 빼내는 것으로 묘안을 찾는다.


  대안은 간단하다. 벽을 밀어 평수를 늘리겠는가, 뼈를 깎아 공간을 확보하겠는가. 거실과 서재를 밖으로 빼면 된다. 집 침대에서 눈을 뜨면 토스트기에 식빵을 넣어두고 곧장 욕실로 향한다. 씻고 나와 아침을 먹자마자 가방에 텀블러 노트북 일기장 넣고 나갈 채비를 한다. 따박따박 꽂히는 공과금 고지서를 우편함에 잘 보관해두는 것과 하루 일과 중 외출 직전까지 준비할 곳을 내어주는 게 내 집의 역할이다. 책을 읽고 싶은 날에는 도서관 앞 카페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포장한다. 도서관 3층의 햇빛 잘 드는 창가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머리에 걸려있던 햇빛이 검은색 스니커즈를 비출 때까지 책을 읽는다. 빛을 받아 잠시 빛바랜 척 하던 신발이 어느새 본래의 검은색으로 돌아오면 다시 잠자러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다음날은 텀블러 잘 말려두고 역 앞 카페로 간다. 천으로 된 차양이 바람에 흔들리며 빛이 속눈썹에 걸렸다 내려앉았다 제멋대로 오르내리는 창가로. 따뜻한 라떼를 시키면 하트 모양 라떼 아트가 올라간 머그잔을 자리로 가져다주는, 카페다운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그곳에는 주인장 취향인 듯한 국내 힙합 노래가 흐르다가 내 커피를 가져다주고 나면 금세 재즈로 바뀌어 나오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 있는 듯한 우연이 있다. 단단하게 튀어 오르는 자판 위에서 여기저기로 손끝을 놀리다가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미련 없이 컴퓨터를 닫고서 그때부터는 음악을 듣는다. 이렇게 현관에서 900미터 떨어진 곳의 베란다와 그보다 가까운 439미터 거리의 서재를 전전하며 의식주 외의 일상을 견지한다. 자기만의 방이 정말 방 한 칸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유칼립투스를 키운 적 있다. 살던 집을 뛰쳐나와 내 공간을 차린 데 설레어 좋아하는 식물 하나를 무작정 집에 들였고, 나는 유칼립투스가 바람과 빛을 아주 좋아하는 식물이라는 것과 내 집에는 햇빛 한 조각 들지 않는다는 점을 모두 간과했다. 바람과 빛이 필요한 건 비단 식물뿐이 아니라는 사실도. 꼭 맞는 신발을 신으면 발이 자라지 않고 뒤틀리듯, 반대로 햇빛이 구석구석을 훑어 녹이는 곳에 몸을 내놓으면 땅 속 뿌리처럼 이리저리로 뻗쳐 나갈 수 있다. 그런 곳에서 같은 문장을 맴도는 것은 이해되지 않아 행과 행 사이에서 헤매기 때문이 아니라 눈 뒤편에 새겨두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집의 범위를 바깥으로 확장하기를 모색한다. 그나마도 당분간은 시간 보낼 곳을 찾기 쉽지 않을 테다. 자기 공간 있는 이도 이럴진대 자꾸만 바깥을 찾을 수밖에 없는, 그러나 가진 자원으로 마땅한 곳을 찾기 어려운 이들은 이 코로나 시대 어디로 가야 하나.

  부산에서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돌림병의 부활로 공간을 제공하는 업종은 모조리 틀어 막혔다. 국힙과 재즈를 넘나드는 그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부산 시내 카페에서는 당분간 포장만 된다고 말하는 주인장은, 그 말을 손님인 내게 전하는 것인지 혼잣말로 한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텅 빈 스무 평짜리 카페를 바라보며 허공에다 대고 읍소하는 것도 같았다. 발길을 돌려 부산에서 제일 크다는 도서관으로 오니 자리의 70퍼센트가 막혀 있다. 어쩌다보니 나는 지금 베란다에서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평소에는 가득 차 있던 자리를 그보다 대폭 줄였는데도 오늘은 헐렁하다. 그 많던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수능이 목전이라 오늘은 집에 머무나. 앉을 자리 생겨 쾌재를 부르다가도 그 자리를 채우던 이들 중에는 공공장소보다 집안이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들도 있을 텐데 싶어 마음이 어지럽다. 일 년을 유예해야 할 위험과 수시로 기우뚱하는 방바닥 사이에서 고민했을 이들은 그래도 다가올 내년을 택해야 했을 테다.


  경전철   공원에는 회색 노인들이 비둘기처럼 줄지어 앉아 있다. 학생들은 있던 자리에 보이지 않고 있을 만한 곳에 있던 프리랜서들은 다른 곳을 찾는  같다. 마주보이는 도서관 창문에는 무어라 외치는 검은 글씨가 붙어 있다. 사람답게 살아가라!




김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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