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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미 Jun 11. 2022

접시꽃

꽃을 피우기 위하여~

예쁘다~

어릴 적 내가 입고 싶었던 하늘하늘한 치마같이  옅은 핑크색 접시꽃~

유난히 옷 시샘이 많았던 나는 비단장사(옷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니던 옷장사 아주머니를 그렇게 불렀었다)가 올 때면 엄마를 졸랐었다.


없는 시골 살림에 먹고사는 것도 감사해야 할 시절~
비단장사 옷 보따리에서 나는 그 새 옷 냄새가 좋았고 이것저것 펼쳐서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예쁜 옷이 있으면 꼭 입어보려 사달라고 떼를 써서 엄마를 많이 곤란하게 했던 적이 있었다.


비단장사가 오는 날은 이웃집 숙난이 엄마 영숙이 엄마 등등 동네 엄마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서 옷 구경도 하고 돈이 없을 때는 너덜너덜한 장부에 이름과 날짜 물건 이름 금액을 기록하고 물건은 선지급하고 대금은 후지급 방식의 외상도 가능하였고 쌀과 보리 등 곡식을 주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비단장사는 우리 집에서 10리쯤 떨어진 중뜰이라 불리는 동네에 살고 있었고 이동 소매상의 역할을 하였으며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이 오랜 단골고객이기도 했었다.
엄마와 비슷한 연세로 친구처럼 지내며 월평균 1회씩은 꼭 방문을 하였고 다음 달 주문을 미리 받기도 하였으며 방문 때마다 항상 우리 집에서 보따리를 풀었고 일이 늦어질 때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날도 가끔씩 있었다.


6남매 중 네 번째인 나를 기준하여 위로 큰언니, 오빠, 작은언니, 그리고 남동생 둘~

엄마는 항상 작은언니 옷은 사고 내 옷은 사주질 않았었다.

큰언니는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별도, 오빠는 당연히 별도, 두동생은 터울이 7년 차라 당연히 별도 구매, 중간에 꽉 끼인 서열의 설음이라 해야 할까? 나는 항상 작은언니 것을 물려받았었다. 심지어 책도 가방도 교복도 모두~


체격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는데도 새 옷은 언니것으로 정해져서 구매가 되었고 나는 새 옷을 바로 입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언니가 먼저 입고 나서 내가 입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었고 가끔씩 언니 옷을 내가 입었다가 엄마에게 혼나기도 했었다. 엄마가 큰 맘을 먹었는지 내가 5학년 되던 해 겨울 딱 한번 둘이 똑같이 겨울 코드를 사준적 있었다. 언니는 천생 여자처럼 가냘픈 체구에 야무지고 학교성젹도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똑똑하였고 집안일도 똑 부러지게 잘 해내어 동네에서도 칭찬이 자자하여 엄마에게는 큰 보람이었던 반면, 나는 고집도 세고 성격도 목소리도 도무지 여성스러운 데가 없는 선머슴아 같다고 늘 엄마는 구박 아닌 구박 차별 아닌 차별을 했었다.


어려서부터 엄마한테 고집이 세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그 고집은 지금도 다 버리지 못하고 데리고 살지만 그때의 엄마 논리가 이해가 안 되었었다.

철도 눈치도 없었던 탓인지 당시의 우리 집 경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엄마는 힘들게 육 남매를 키우면서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었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되도록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오로지 자식들이 비 오면 비 맞을세라 눈 오면 눈 맞을세라 남들 앞에 기죽을 세라 등 따시고 배부르게 먹이고자 꿋꿋이 견뎌오셨던 엄마의 속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그래도 되는 것처럼,

화를 내고 고집을 부리고 울며불며 졸라도 되는 사람인 줄만 알았으니까~


하늘거리는 꽃잎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예쁘게 피도록 묵묵히 받혀주는 넓은 잎사귀처럼,
접시꽃 입사귀는 마치 내 엄마의 거친 손과도 같다.


그 잎사귀가 있어서 여린 꽃이 예쁘게 필 수 있었고

그 잎사귀가 있어서  비바람에도 뙤약볕에도 

씩씩하게 잘 자랄 수 있었다고~

 

그 거친 손을 다시 잡아볼 수 있다면 

그 속을 너무 늦게 알아서 죄송하다고

내 엄마로 와줘서 너무 감사했었다고 

선머슴 아가 아닌 접시꽃같이 예쁜 딸이 되어

사랑한다고~

그 손을 꼭 한 번만 잡아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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