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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미 Oct 05. 2022

동행

시월의 한밤
문득 잠이 깨어 불을 켠다.


창문을 여니 싸아한 바람이 훅 밀고 들어오고

여름내 울어대던 개구리랑 풀벌레는 어디 가고

귀뚜라미 녀석이 내 세상인양 목청을 높인다.

뚜르르 뚜르르~


너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냐

너를 핑계 삼아 책상머리에 앉았거늘


이 가을밤을~

 

내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여 선잠을 깨었다가

새 잠을 청하는 이가 있으니 평소에 하지 못했던

미안하고 고마운 말을 전해 보련다.

귀뚤아~ 

너는 아느냐

검던 머리가 희어지고 

곱던 얼굴에 세월이 얹어지고

오래 묵은 돌꽃처럼 묵묵히 견뎌주는 이에 대한 애잔함을

수많은 시간을 함께 해 왔거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가장 소중하고 든든한 나의 울타리에게  

정작 난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못 건넸구나.


청춘이라서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 때문에 고민하느라

당신의 전부를 보려 하지 않았고

불같은 젊은 시절은
직설적이기만 한 내 못난 마음을 표현하느라 

당신에게 배려하려 하지 않았고


미리 져 줄 것을 알기에

잘못을 하고도 미안하단 말을 건네기보다

화를 내며 당신을 당황스럽게 했었지

귀뚤아~

라땐 말이야

목소리가 크면 이기는 것인 줄 알았거든?

난 사실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당신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얼마나 반듯하고 고운 심성을 가졌는지

알면서도 항상 내편이었고 항상 나를 먼저 배려했으니까

내가 먼저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지

나는 당신이 가장 아끼는 당신의 아내니까


귀뚤아~

나 못됐지?

그래 그럴 거야


시도 떼도 없이 쏜 화살에 

그 가슴이 얼마나 멍들었을까

당신 탓도 아닌데 말이지~

지나고 보니까 다 보이더라구

아니 어쩌면 그때도 다 보였고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미안하다 하면 왠지 내가 너무 부끄러울 것 같고

또 당신이 토닥토닥 달래주는걸 안 해 줄까 봐서~

귀뚤아~

너 알지?

똥 낀 놈이 성낸다는 말?

그래 바로 그거야

난 당신의 관심이 온전히 내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거야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깊이에 

어디까지가 내 몫인지 파고파고 또 판 거지


귀뚤아~

그런데 있지?

난 말이야 아직도 그 바닥을 못 봤다?

평생을 판 것 같은데 그 깊이도 알 수가 없다?

평생 헛 삽질을 한 거지

정말 바보같지만

속으로 얼마나 감동했는지 

아마 당신은 모를거야


귀뚤아~

이제 와서 문득문득 맘이 저리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눈이 작아지고

볼살이 홀쭉해지고

키가 작아져가는 모습을 보니까

눈시울이 불거지더라?


내 탓인 것 같아서

내가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서

조금만 더 잘해 줄걸~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난 아직 미안하단 말을 못 했거든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바람 불면 바람을 맞고
해가 뜨면 따가운 햇살을 견디면서

그렇듯 묵묵히 돌처럼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도 

귀뚤아~

내 부탁 하나 들어 줄래?

더 늦기 전에 전하고 싶은 말


그세월을 감싸주고 다독여줘서 

감사하고 고맙다고

난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아내로

살고 싶다고 


그리고 

받은 사랑 조금이라도 돌려주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 줄래?

꼭이야~

꼭!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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