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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미 Dec 05. 2022

인생 이모작의 준비~

퇴직을 준비하며

엊그제까지도 이직장에서 목소리가 제일 큰 능력 있는 여 차장으로서 자부심이 상당했었는데

아름다운 단풍이 어느 날 퇴색한 낙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마냥 아름답다고 영혼을 담아내기는 뭔가는 허전함을 느낀다.

조석으로 쌀쌀해지는 날씨와 따뜻한 차 한잔이 그리워지는 계절 앞에서 ~


세월은 가는데 ~

세상은 급하게 바뀌어가고 있는 듯한데 ~

내가 사는 세상이 맞는지에 의문이 들 정도로 급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 또한 급하게 뭔가를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목표가 선명하지 않아

서성이고 있는 내 등 뒤로 가을을 녹여낸 바람 한 자락이 싸아하니 들어와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흔희들 말하는 AI시대, 메타버스, 블록체인, 데이터, 정보화 시대~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 발맞추지 못하면 도태될듯한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격리를 당하는 느낌은 나만이 것일까?


이 나이 먹도록 생각하고 살아온 모든 기준들이 부질없는 듯 어제 일이 아득한 옛일 인양 눈뜨는 아침의 시간은 또 저만치 앞서가며 허위허위 따라가는 걸음이 숨 가쁘다.


아니다.

이건 아닐 거야.

잘 살아왔고 열심히 살아온 것이라면 작아도 잘못 산 것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것은 지난 것으로 접어두고 새로운 것을 하나씩 습득해 가자.


이해하는 머리가 부족하여 설명을 해주는 도중에 절반은 잊어버리지만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되지 않는다면 그 절반조차도 내 것이 아닐진대 절반이라도 얻었으니 감사한 일 아닌가~

토닥토닥~

얼마나 힘들었냐고

지키려고 잘하려고 올곧음에 내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만큼 내가 바르게 서야 한다고 얼마나 고단하였느냐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밤늦게 컴퓨터를 헤집으며 시린 눈을 비벼도 내 안에 채워지는 것은 늘 기대의 절반의 절반~

누군가의 앞에 서서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하던가 하물며 내 얕은 지식의 바닥을 드러나지 않게 포장하며 그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을 잃지 않게 잡고 전해야 할 얘기를 그들의 쫑긋 한 귓속까지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이던가

그래 잘했어
잘한 거야
나는 그 떨림과 부담감을 그들 앞에서 들키지 않을 수 있었어

그리 잘난것도 잘하는 것도 딱히 없지만 말이지 
내가 전하고자 한 모든 것의 핵심은 그들에게 경의로울 것도 새로울 것도 재미조차 없는 평범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쉽고 편하게 전달하는 것이 전부였었거든 


그들은 숙연하고 다소곳이 앉아 편안하게 내가 하는 얘기를 들어주는데

가끔씩 눈빛으로 미소로 끄덕임으로 맞장구도 쳐주면서~

자신감이 생기니까 여유가 생기고 적당한 언어를 고르고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면서 순서대로 하나둘씩 툭툭 튀어나오면서 그들은 내가 하는 데로 나를 비추며 바로 세우고 닦게 하는 거울과도 같았어

그들이 짓는 표정에 맞는 그들이 이해하는 표정에 맞는 적당한 언어들이 그들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대변하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시원함 같은 그러면서 중간중간 힘 있게 꾹꾹 눌러서 기억에 강한 포인트를 함께 접목하며 공감한다는 그 표정이 고향집 언니처럼 친근한 편안함이어서 참 다행이더라.



내려놓자.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다른 누군가도 다 할 수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 뿐.

내려놓고 놓아 가자.

처음 내가 아무것도 몰랐던 것에서 이만큼이라도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는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고 어쩌면 더 잘 해나 갈 것이기에 나는 나를 위한 내일을 준비하자.


인생 일모작은 그럭저럭 ~

항상 후회와 아쉬움은 남지만 되돌릴 수 없으니 일모작을 거울삼아 이모작을 잘 갈무리해가자.

 

노후와의 전쟁이라는 어디선가 본 듯한 단어가 가슴에 와닿는다.

늙음을 어찌 막으랴만 막지 못하면 즐겨야지 않겠는가.

짐을 다지고 죽을 듯이 힘들게 살아도 가벼운 맘으로 다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살아도 하루는 모든 이에게 공평한 그저 하루일 뿐인데


누군가에게는 한 끼의 식사가 걱정인 노후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넘치는 시간과 재력으로 넘치는 향락의 노후도 있을 것이지만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해 가는 길이니 조금씩 나누며 함께 같이 가는 것이 가장 큰 삶의 갈무리가 아니겠는가

 

나눔이 곧 이룸이요 버림이 곧 채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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