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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미 Nov 12. 2023

그 녀석들의 세상~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손님 아닌 손님~

2023년 8월은 유난히 비도 많았고 덥고 그야말로 고온 다습이 지배적인 날씨였다.

그런 와중에 남편은 오랜 숙원이었던 사업장을 이전하는 공사를 진행하였고 거의 2개월의 시간을 공들여 9월 2일 무사히 확장이전을 완료하였고.


그 녀석은 8월 말 즈음 손주 녀석들을 보고 싶어 하는 친할머니가 오신다는 딸아이의 말을 듣고 예사 남해 펜션을 예약하셨고 아이들을 데려가서 하루 정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쉬어가시고자 한다고 하여 그러려니 했다.


아침나절,

이사 후 정리가 덜된 곳은 없는지 빗자루를 들고 이리저리 쓸고 다니는데도 벌써 땀이 흥건하다.

언뜻 건너다본 출입구 쪽으로 6인승 승합차 한대가 슬그머니 들어온다.


혹시?

역시~

그랬다.


우리 작은 손자가 백일을 갓 넘겼고 큰손자가 겨우 세 살이던 때 그 생활이 지옥 같아서 도망친 그 녀석이 손자의 할머니랑 할머니의 새 할아버지랑 함께 내렸다.


7년을 기다렸고 잘잘못을 떠나 돌아와 주기를 간절한 맘으로 기도했었다.

그런데도

그 녀석은 한 번도 찾아오지도 않았고

심지어 내 딸의 행복 내 외손자들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그래도 가족이 낫지 않을까 하여 장문의 문자를 보내서 다 이해한다. 다 용서한다고 그리고,

내 자식이 좋아서 내 가족으로 왔으면 내 자식이 된 건데 내 자식과 똑같이 대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언제든 자네가 오고 싶을 때 돌아오라고 ~~~


그러한 간절함에도 한마디 대꾸조차 없었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옛말처럼 오히려 이혼을 요구하며

돌아서서 뒤도 보지 않는 그 녀석을 망부석처럼 기다리는 딸의 청춘이 너무 안타까워 포기를 하고 새 삶을 찾기를 권했었다.

그리하여 2년간 연애하여 8여 년간의 결혼생활 중 3년은 한집에서 그나마 행복했다 하고 5년이 불행했던 애증의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돌아섰을 딸아이의 맘을 알기에 10년 세월을 그냥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음인데~


그 녀석이 돌아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밝은 모습으로  6년 근 삼을 한소쿠리 담아 들고 잘 지냈냐는 안부를 전하면서~

이렇게 만나질 거면서 이렇게 올 거면서 ~


어색한 만남이었으되 손주들이 좋아라 하고 새벽부터 먼 길을 오신 손자의 할머니와 친구분의 입장을 배려해야 하는 것이 순서일 듯하여 사무실로 들어가 얼떨결에 함께 자리를 하였고. 딸아이는 커피 메이커에 콩을 붓더니 이내 얼음 가득 시원한 커피를 내오고 과일을 내어 준다.


그 표정인즉 편할리 없음을 알면서도 난 그 표정을 애써 외면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한 그분들의 마음을 배려하려 반가 웁게 맞으려 애썼다.


자식일이 어찌 부모맘 데로 되랴!

그 부모 맘인들 내 마음과 다를 리 있으랴!


얼마 전 딸아이를 통하여 전해 들은 가슴 아픈 사연을 알고 있음에 난 같이 눈시울을 붉혀 같이 울고 있는 엄마의 맘으로 얘기를 하고 있었음을~


아이들의 고모는 일찍이 유학을 떠나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생 끝에 캐나다에서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 곧 결혼을 할 것이라는 얘기를 친할머니가 하더라는 얘기를 하면서 딸아이는 그런 소소한 집안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들어줘야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인간적인 연민은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판단이 모호하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시어머니의 맘으로 아직 며느리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었지만 그 녀석의 반응이 너무 무반응인 상태였고 이미 이혼까지 한 상황인데 응대하기 난감함도 이해되었기에 그렇구나 하고 넘겼었다.


지난겨울 조카들을 보고 싶다고 손자들과 제주도에서 3박 4일 여행 후 아이들을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러 왔을 때 잠깐 인사를 했던 키가 크고 잘생긴 외국인 남자가 고모의 짝이라고 소개를 해서 가볍게 인사를 건네었었고 좋은 사람 같아 보였었다.

고모는 아기를 가진 상태였고 순산하라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었고 딸아이도 언니라고 부르며 서로가 좋은 사이였음을 아쉬워하면서 안녕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고 두세 달 시간이 흘렀을까
이보다 충격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좋은 집안사람으로 장차 결혼할 사람이라고 결혼해서 같이 살 집을 짓고 있다고 들었었는데~


드라마도 이런 일은 지어내기조차 힘들 것일진대 급성으로 온 희귀병으로 갑자기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과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쯤 하늘나라로 가서 수목장을 치렀다는 얘기까지 들었었다.


그 할머니에게 그 딸은 하늘이요 삶의 전부였음을 알기에 그 고통을 어찌 견딜까 가슴이 져며졌었던 걸 기억한다.

죽지 못하여 숨을 쉬니 살아있는 것이지 어찌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떠나보냈던 어미심정도 가슴 아플진대 그 딸의 뒷바라지도 변변히 못했음에도 꿋꿋이 견디고 스스로 헤쳐나가느라 얼마나 고된 삶이었을까


이제 겨우 그 시름에 종지부를 찍고 행복할 날만 남았는데~어찌 이런 일이


그 할머니는 일찍이 이혼하여 혼자인 몸으로 없는 살림에 딸아이 유학 뒷바라지를 하느라 60이 가까운 나이임에도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오로지 그 딸이 행복해지는 것만이 유일한 행복이요 희망이었을 것을~


어찌 그리 허망하게 떠나보내야 했는지~

갈 때까지도 그 엄마에게 밝고 긍정적으로 웃으며 갔다는 그 엄마의 말을 들으며 같이 울고 같이 목이 메어 무슨 말로도 위로를 할 수가 없고 휴지를 건데 주고 같이 눈물을 닦고 그저 등을 쓰담쓰담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여기까지 와서 눈물 바람에 청승이라며 불현듯이 눈물을 거둬들이며 같이 식사를 하기를 원했었고 손주와 놀던 그 녀석은 아이들이 짜장면이 먹고 싶대요 하며 해맑은 표정이다.

그 누나랑 얼마나 다정한 남매였음을 서로 같이 지낼 시간조차 없이 안타까운 누이를 어찌 이렇게 잃어버렸는가~

그 녀석 속인들 오죽할까~


그 할머니도 눈물이 다 마르지 않은 얼굴에 코를 훌쩍이면서도 아이들을 보며 웃는다.

"그래? 짜장면 먹고 싶어? 그럼 짜장면 먹으러 갈까?"

가까운데 맛집이 있기는 한데~ 식사를 하면 좀 더 대접하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장소가 결정이 되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탁자가 넓은 곳은 다 채워져 있고

아이들 할아버지는 못내 못마땅하여도 표시를 내지 않더니 사무실 마무리를 하고 가야 한다면서 식사자리에서 빠진다.

4인식탁에 세명 네 명으로 테이블이 나눠지고 모처럼 네 가족이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모양이 어색하여도 나는 보기 좋았다.

얼마나 맘 속으로 그려본 그림이던가~

딸아이의  눈치를 보자 하니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제자리에 잘 맞혀진 퍼즐이라면 그대로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그 녀석은 아이들이 좋아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딸아이의 눈치를 슬쩍슬쩍 살피고 딸아이는 뜨악한 사항에도 싫다 좋다 표현을 하지 않고 아이들 챙기고 제 밥그릇만 쳐다보며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혼을 했음에도 딸아이는 아이들에게는 아빠니까 아이들이 아빠라는 존재를 기억하는데 오해가 없도록 얘기를 했었다.

3학년이 된 큰아이가 불쑥 물어오기를

"엄마, 왜 엄마는 아빠랑 같이 안 살아?"

"그냥 아빠랑 성격이 좀 안 맞아서라고 할까? “

"그래?"

"그래도 준이는 준이 아빠니까 아빠한테 하고 싶은 얘기도 하고 묻고 싶은 것도 물어보고 그렇게 해"

"알았어, 근데 아빠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별로 없는데?"

"물어보고 싶은 거 물어보고 그래 궁금한 거 있으면 전화도 하고"

"응, 알았어"

그런데 손주는 별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그저 참고할게라는 뉘앙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의 존재감을 잊고 살아가는 날이 거의 태반인데 어찌 아빠에게 궁금한 것이 있을 것이며 어떤 질문이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생활은 습관처럼 없으면 없는 데로 마음에서 접고 살아가다 보면 궁금한 것도 관심도 한층 낮아지고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게 되는가 보다.


문득 그때가 생각난다.

준이가 세 살 때 더운 여름날 저녁 공원에 산책을 갔다가 우연히 초등 2~3학년정도 되었을 성싶은 형아가 아빠랑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 손을 놓고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한참을 그 광경을 보고 있더라.

그 뒷모습이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것이 준이에게는 없는 평범한 아빠와 함께 운동을 하는 모습을 부러워서 혹여 준이의 마음을 다치면 어쩌나 가슴이 저려오던 그때

준이는 성큼성큼 운동장으로 들어가 형아에게 간다.

"형아, 나도 한번 해 볼까?"

세 살짜리가 당돌하면서 당차게 제안을 하니 형아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공을 건네준다.

제보다도 커 보이는 공을 받아 들더니
 "웃차"하면서 공을 넣는 시늉을 한다.

한번 더 주니 또 한 번

"웃차"

그렇게 두어 번 하더니

스스로 형아에게

고맙다는 듯이 "안녕"

하고는 손을 흔들며 성큼성큼 돌아 나온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뒷모습이 세 살 아기인데도 대견하면서도 그 마음에 아빠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하여 물었었다.

"준이 아빠 보고 싶어?"

"웅"

그렇게 짧게 대답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어쩌면 준이에게 아빠가 가장 필요했던 그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준이는 어려부터 혼자서 무엇을 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깔끔하고 야무지게 해내는 모습이 보였었다.


밖에 다녀오면 손 씻기부터도 그냥 설렁설렁하는 예가 없었다.

비누질도 야무지게 싹싹해서 몇 번을 헹구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깨끗해진 것 같이 야무졌다.

어쩌면 저런 모습은 딱 부러지는 지애비와 많이 닮았다 싶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지금도 앞마당에서 공을 차더라도

축구화를 신고 유니폼에 양말까지 갈아 신고 완벽하게 갖추어서 하고 운동도 건성이 아닌 진심으로 슬라이딩을 하면서 공을 막고 어린 나이여도 항상 최선과 진심을 다하여 행동한다는 것이 놀랍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자기중심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한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모습의 표본처럼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어느 하나 느리거나 뒤처지지 않는다. 학교생활도 잘 적응하여 3학년이 되면서 학급장을 맡았다.
음감은 또 어찌 저렇게 금방 기억이 되는지 한번 들은 음악에 절대음감 같은 기억력으로 피아노를 쳐서 그 음정을 소리로 표현해 내고 그림을 그렸는데 섬세하게 표현해 내고 깔끔함 또한 나무랄 데가 없고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본인이 설정해 놓은 목표에 달성될 때까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게 비록 컵 쌓기 이 든 야구공 던지기 든 간에.

소위 말하는 입 댈 것이 없다 해야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같은 형제임에도 동생인 형주는 손이 참 많이 가는 아이다.

초등 2학년인데도 아직도 국어가 잘 안 된다.


왼손잡이라 밥숟가락 드는 것부터 힘들어했고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양손을 쓰다 보니 동그라미의 방향이 매번 다르고 "ㄱ"의 방향을 바로 쓰는 것을 연습시키는 것을 너무 싫어하고 틀리고 이해하지 못하였음에도 반복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다.

자유분방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습성이 강하고 감성은 여려서 상처를 잘 받는다.


항상 손가락을 입에 넣고 코딱지를 먹는가 하면
모기가 유난히도 잘 타서 석 달의 여름 중 하루만 방심하면 온몸에 모기가 난도질을 해서 부어오르고 긁어서 상처자국이 가득하고 얼굴이나 몸에 딱지가 앉은걸 참지 못하여 딱지를 떼고 피를 내어 기어이 병원을 가게 하고
옷은 또 얼마나 더럽히는지 물티슈를 코앞에 두고도 손에 묵은 음식물이나 이물질을 옷에 써억 닦아 버린다.


밥은 먹이는 것은 늘 전쟁이고 단것만 먹으려 하고 과자 부스러기등 먹을 것을 달고 있고 여름 내내 냉장고를 떠나지 못하며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떨어지면 당장 사 오라고 억판이 나오면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구해서 대령해야 조용해진다.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거의 우유와 아이스크림으로 여름을 나려 한다.

단것을 먹고 양치질을 시키려면 얼마나 구슬려야 하는지 형아보다 늘 두 배 세배 에너지를 쏟아야 끝이 난다.


두 녀석의 공통점은 단 하나!

휴대폰 아이패드를 하는 시간의 집중력이다.

준이는 이어폰을 켜고 게임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주야는 유튜브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씩 형아랑 로블록스 게임을 하기도 하는데 형아가 자기를 죽였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쳐서 형아가 거의 안 건드린다.


얘기가 잠시 이탈을 한 것 같다.

그 녀석이랑 닮은 것을 얘기하려다 둘째 녀석까지 얘기를 하다 보니~


어찌 되었건

둘이 만나 한가족을 일구고 평생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각자의 사연이 있어서 피치 못하게 헤어지거나 떨어져서 살아가는 이도 있겠지만 함께 산다 하여 좋은 시간 좋은 것만 있을까?

궂은 것도 보고 힘든 것도 견디고 뾰족한 것도 시간이 지나고 버티다 보면 둥글어지고 그러면서 넓어지고 부드러워지며 시간을 초월한 평화와 안식을 찾게 되는 것을~

가족의 울타리란 아무나 허락되지 않는 자기들만의 시간과 정성과 사랑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있어줌으로 감사와 위로가 되고 스펀지처럼 포용하며 새로운 에너지가 되는 것~


힘이 넘치고 불같은 청춘이 있음애도 지레짐작으로 겁먹고 부딪혀 보지도 않고 피하려드는것만큼 어리석은 이 가 있을까~

그 평화와 안식은 훗날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인생의 훈장인 것을 ~

어찌 고통 없이 얻어질까~

힘든 것도 견디면 스스로 내성이 생기고 더 강해지는 것을~


누군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나의 아침을 깨우면
두발을 힘차게 도약하는 원동력이 되고 세상에 지쳐 들어올 때는 봄눈처럼 녹아내리게 하며 또 다른 에너지로  내일을 충전한다.

인내하지 않은 이에게는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곳~

비로소 인간이 숙성되는 시간 ~

우리는 그곳을 가정이라 부른다.


피치 못할 사정 이 아님에도 아집과 손톱만 한 자존심 때문에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금싹 양보하고 조금씩 배려하며 멀리 볼 줄 아는 해안을 가져야 후회할 일이 없으리라.

그 후회를 제발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맘이기에 아쉽고 저리다.


격지 않고 어찌 알 수 있으랴만 자식을 키워본 이가 키워보지 않은 이 보다 많고 부모 된 것을 후회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품에 안고 키워본 이라면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힘들고 지칠 때 혼자서 슬그머니 꺼내보며 빙그레 미소 짓는 기억이 한 조각이 바로 행복인 것을~


워라밸이라는 신종어가 유행하고 저출산으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고민을 해야 할 가장 큰 숙제이다

직장에서 면담시간 5년째 사실혼관계에  있는 청춘과의 대화에서 띵~한 충격을 받았던 일이 생각난다.

세대차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심각하단 생각이 들어 잠깐 언급해 본다.


‘결혼해야지?‘

아니요 결혼 생각 없는데요

응? 같이 생활한 지 꽤 되었다면서 결혼하고 2세도 보고 그러는 거 아니야?

같이 산다고 결혼해야 하나요?

엥?

각자 필요하에 공유할 건 하고 한집에 같이 살아도 각자의 삶은 터치를 안 하는데요

아니~ 그게 가능해?

경제권도 각자 생활비도 각자 반반 부담하고  굳이 터치할 일이 별로 없는데요

어머~ 그럼 왜 같이 살지?

아니~좋으니까 살지요

으응? 좋으면 서로 관심 있는 거고 아기도 낳고 알궁달궁 그래야 진짜 가족이 되는 거지~

저는 자식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집사람도 그렇고.

그럼 어디에 관심이 있어?

돈 버는 목적이야 있죠 좋은 차 좋은 집 시간적 여유가 목표입니다

돈 있으면 여유 있으면 뭐 하려고?

시간에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살려고요

그래? 생각은 멋진데~가능할까? 외롭거나 그렇진 안 울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오메~준비는 잘하고 있고?

서른여섯인데  앞으로 9~10년  그 정도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아휴~꿈은 좋네 근데 이나라의 미래가 큰일일세~


대충 이런 대화를 나눴었고

이런 세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사회라는 반증이기도 하고 마음 놓고 자식을 낳아서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준비가 미흡하여 미래를 믿지 못하는 청춘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구가 감소되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AI를 통하여 얻는 지식이상으로 편리함은 얻었으되 AI에 지배당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이 속수무책 흡입되어 가는 듯하다.

인간을 만드는 것에는 소홀하고 기계 만드는 것에만 치중 을 하는 것은 아닌지~\


사람의 정이 있던 곳에 기계가 대신 친구가 되고 가족이 있던 곳에 AI가 들어와 대화가 점점 단절되고  웃음이 사라져 간다.

사람은 없어도  심심함을 못느끼지만 기계가 없으면 잠시도 못 견뎌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인간의 두뇌를 이길 만큼 인공지능이 높아지는 시대를 살면서 가까운 미래에 기계가 기계를 만들어내는 기계들의 세상으로 변해버리는건 아닐까?

인간의 편리성의 부수적 역할에서 벗어나 인간을 지배하는 기계들의 세상!

삭막하고 무지막지할 것 같은 ㅠㅠ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현실이 되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그 녀석처럼 자식을 키우는 것이 지옥처럼 느껴져서 도망을 가고 책임 지기 싫어서 차라리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하는 이기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가는 현실이 만들어내는  멀지않은 미래는 어떤 모습이 될지~


그 녀석들이 만들어 갈 세상이란?

공연한 내 기우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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