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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미 Jun 09. 2022

사과 서리

그때 그 어르신의 큰 가르침~


거사(?)를 앞둔 듯 한 상기된 표정을 살짝 가려줄 어둠이 내리던 어느 하굣길,
하얀 셔츠에 초록색 리본, 초록색 치마의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 여섯명이 우루르 사과밭으로 진입을 한다.

사과밭은 야트막한 강 건너에 있었고 이렇다 할 울타리도 담도 없이 풋풋한 사과향을 즈릅즈릅 풍기며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희야 망 잘 보고 있어?"
"알써~ 부엉부엉~"

어슴프레한 어둠에 몸을 숨긴 사과 하나를 따서 교복 치마에 썩썩 닦아 베어 문 그 신선함과 상큼함은 지금도 입안에서 달큼 새큼한 맛이 느껴지는 듯 침이 고인다.


"와아~~ 아이 상큼해 너무~맛있어 맛있어"

"진짜~ 꿀맛 꿀맛~~"

여섯 소녀 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눈짓으로 소리 없이 함박 웃었다.

국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너희들 나이 때는 소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을 때다"하셨던 그 웃음과는 사뭇 다른 약간의 긴장이 가미된 의미심장한 웃음.

맛있어서 웃고, 가슴 벌렁거림에 웃고, 운동화를 신고 저벅저벅 물을 건넌 것이 재밌어서 또 깔깔 웃고 ~
살금살금 기어 어둠이 내려앉은 물가에 앉아 찰랑이는 달빛에 흙 묻은 발을 씻으며 깔깔깔~

무사히 얻은 사과를 먹었음에 만족한 웃음 한번 더 웃던 그때~~

"어머 저기 과수원집 할아버지 같은데?"
"엄마야"
"오매 오매~ 우짜 까나~"
저만치서 하얀 모시적삼을 입으시고 지게를 지고 내려오시는 어르신의 풍채는 분명 매일 오가며 보던 사과밭 주인 어르신이 맞았다.

"옴마야 우리 큰일 났다 우짜지?"

"얘들아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망설이고 있던 그 잠시 동안은 정말 가슴이 쫄아드는 것 같았다.


달아나기도 늦어버린 듯 그 어르신은 벌써 우리 곁으로 가까이 와 있었고 우리는 고개를 숙인 채 숨도 쉬지 못하고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이지만  머릿속을 지나가는 수만가지의 상상들~

혹시 학교에 알려지면 어쩔까~

 반성문 쓰고  그창피함은 또 어찌 할까~

부모님 대면에 불같은 성격을 어찌 감당할까~

그남 참고 지나갈껄~~ㅠㅠ

잘못를 했으면 벌을 받기는 해야겠는데 예상못한 발등의 불을 어찌할줄 몰라   대책없이 귓볼만 달아올랐었다.

"늦었구마 얼릉 집에 안 가고 와 그라고들 있노?
그 케도 너무 자주 오지는 마래이"

심장이 딱 멎을 것 같은 긴장감에 멈출 줄 알았던 발걸음을 재촉하며 들릴 듯 말 듯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씀을 하사고 저만치 앞서서 저벅저벅 걸어가신다.
?????

?????


사과밭 주인 어르신은 우리가 사과밭에 진입하는 것부터 사과나무 밑에 앉아서 사각사각 먹어치우는 것까지 다 알고 계신 듯하였다.
피땀 흘려 키운 사과를 서리하러 온 어설픈 도둑들을 보며 어르신은 아마도 사과 한알의 소중함보다 하굣길 배고팠을 자녀들을 먼저 떠올리셨으리라.


누구 집 아들이고 누구 집 딸인지 알려하면 모를 리 없건만 아는 척도 아니하고 사과 한 알을 기꺼이 먹도록 배려하셨음을 알고 진심으로 죄송하고 감사하여 그일이 있은 후 여섯 도둑들은 사과밭은 곁눈도 하지 않았었다.


야단을 쳐도 할 말이 없을 일에 오히려 늦을라 얼릉가라 걱정해주시던 어르신의 사과 한 알에 대한 가르침은 우를 범하지 않는 기준이 되어 주었고 가끔씩 밴댕이 속처럼 좁아지는 나 자신을 꾸짖는 잣대가 되어 주기도 한다.

"어르신 큰 가르침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20리 길을 새벽밥 먹고 걸어서 저녁달을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반복되어도 조잘조잘 끝없는 얘기들이 사과처럼 주렁주렁 열렸던 등하굣길의 그 시절 그 어설픈 도둑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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