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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안 Jul 11. 2024

전시 : 올리비에 드브레, 세컨드 임팩트

수원시립미술관의 유쾌한 한방






운이 좋았다. <올리비에 드브레 : 마인드스케이프> 전시를 개막일에 관람했다.



작가의 아들이 개막식에 참석하였다



원래 뭉크 전시 갈까 하다 일정도 꼬이고, 날씨도 꾸물꾸물해 가까운 곳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기압이 낮은 날이고 졸렸기에 개막식 행사를 일부 놓쳤다. 하지만 전시 기획자의 도슨트를 직접 듣는 호사를 누렸다.

올리비에 드브레는 이미 1999년에 작고하였다. 가족들이 프랑스에서 직접 수원으로 방문하여 개막식에 참석하였고 작가의 작업실과 몇몇 작품에 관하여 해설해 주기도 하였다.

거기에 수원시립미술관 상설전 <세컨드 임팩트>까지 아주 만족스러웠다. 제목만 듣고는 혹시 에반게리온 오마주가 아닐까 생각했으나 그건 아니었다.






개막식에 참석하다니 완전 럭키비키







추상은 마음으로 느끼는 거야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이 현대미술의 벽을 가장 크게 느낄 때란 바로 추상화를 접하면서부터이다.

구상화와 달리 무엇을 그렸는지가 불분명하니, 부랴부랴 해설과 도슨트를 찾아도 작품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부터 관람행위 자체가 버거워진다. 예술가들이 아무리 '작품은 그냥 느끼는 것'이라 외쳐도 소용없다. 최소한의 이해 없이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는 것이다.



<올리비에 드브레 : 마인드스케이프>는 추상화가의 전시임에도 뭘 그렸는지부터 알려고 애쓰는 고통의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편안했다.



나치의 사악한 미소, 1946



기호 연작들은 다소 난해했지만 작품 옆에 적절한 설명이 있어 해석하는 기준을 세워 주었다. 본인이 느낀 세상의 이미지를 그대로 추상화한 작품들이 좋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카샨의 짙은 여름. 몇 번이고 사진을 남겼다.

허공에 떠서 짙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다. 캔버스를 가득 메운 청색 아래에서 자꾸만 비집고 튀어나오는 녹색이 약동하는 여름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전시의 하이라이트, 루아르의 방.

모네는 지베르니에 머무르며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수련의 변화를 남겼다. 올리비에 드브레도 색 아래 또 다른 색, 또 다른 물빛,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루아르 강을 여러 점의 작품으로 남겼다.

이번 전시에 함께한 그림들은 그 중에서도 역작들만 모여 있다.







폭풍우 몰아치는 날의 루아르 강



그간 추상화 전시를 보러 다니긴 했지만, 솔직히 해설을 들어도 작품을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정말 달랐다. 키워드를 들으면 풍경이 인상으로 변해 다가왔다.

언제의 강을 그렸을까, 해질녘일까? 비 온 다음날 흙먼지가 일어나 소란한 물일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한때 파격이고 새로움이었으나 이제는 너무 대중적인 인상주의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이랬으려나 싶기도 했다. 그만큼 느낌이 바로 다가서는 작품들이었다.

왜 다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엄청난 풍경에 압도되어 나름대로 카메라 감도를 조절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결과물은 그에 비해 한참 단조로운 것.

올리비에 드브레는 자기가 받은 인상을 이렇게 극대화해 다른 시대와 공간에 사는 관람객에게 남겼다. 예술가의 참 부러운 능력이다.








가 본 적 없는 노르웨이를 궁금하게 만드는 그림.

욘 포세의 소설 속 북유럽은 비명조차 삼켜 버릴 정도로 거대하고 시리고 차가웠다. 올리비에 드브레의 그림에는 생명력이 있다. 강렬한 이미지가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관객에게 자기가 받은 인상을 전달하고픈 작가의 의지는 드브레가 작품을 명명하는 방식으로도 드러난다. 전시장 내 작품 설명에도 있듯이 <분홍색 멕시코>가 아니라 <멕시코의 분홍>, <루아르의 연보라>처럼 핵심 색상으로 제목을 지었다.

확실히 다르다. <수련>이 아닌 것이다. 드브레가 수련 연작을 그렸다면 <수련의 보라색>이라고 제목을 썼을 것이다. 결국 관객은 핵심 색상을 마음에 남기고 다음 작품으로 향한다.








노르웨이를 여행하며 남긴 작품들.

한때 재미로 여행지에서 크로키를 즐기다 보관하기 어려워 그만두었는데, 가까운 문구점에서 색연필이라도 사고 싶어졌다.







뭉크 전시에 가려다 여기에 왔는데 드브레의 뭉크를 만나다니!

이 연작은 올리비에 드브레가 뭉크의 <절규>를 다양하게 해석해 그렸다. 하늘 아래 같은 절규 없다고, 이 많은 절규가 다 다르다. 모든 삶은 가까이서 보면 각각의 비극이라고 말하는 듯도 하다. 이 방에는 의자가 비치되어 있다. 조금 떨어져 앉아 이 절규들을 바라보았다. 슥슥 그린 듯 재치있다. 나는 이 모든 삶을 한 걸음 떨어져 희극으로 읽었나 보다.

이번 전시에는 기존 걸작을 드브레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 몇몇 더 있다. 원본과 비교하여 보는 재미가 있다.



공부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편이라면

예술은 세상을 폭넓게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자신만의 그림을 남길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기존 작품을 컬러링할까 생각하다 오늘 미술관에 오며 본 거리를 나만의 인상으로 남겼다.

오랜만에 그림을 다시 배우고 싶어지는 전시.






드브레가 의상과 무대 미술에 참여한 발레 <사인>









복제는 진본의 하위일 뿐인가? <세컨드 임팩트>


<세컨드 임팩트>는 습관적으로 전시를 관람하고 사진을 남기는 관객들을 빤히 바라보다 기획한 것 같았다. 생각하고 이야기할 거리를 만드는 전시가 좋다. 그것이 예술의 능력이겠지.








현대인들은 어딜 가든, 뭘 보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켠다. 원본의 수많은 복제품이 각각의 시선으로 만들어진다.

실컷 찍어 만든 복제품은 정말 진품의 열화된 위치밖에 안 되는 것일까?

복제품은 어떻게 해야 의의를 가질 수 있는가?






수원 서장대. 캔버스를 설치하여 서장대를 설치 작품으로 만들었다



현대 수원 화성은 그 옛날 설계도를 따라 완벽하게 재현되었다. 화성 행궁은 요즘도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과거의 설계도 그대로 만들었기에 '원본'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그대로 현대에 만든 화성은 복제품이 아니라 원본인가? 올해 말이나 내년에 복원이 완료될 행궁도 원본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받을까?

과연 무엇이 원본인가?

수원화성을 관람하며 느꼈던 의문이 리플렛에 비슷하게 쓰여 있어 신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의문을 가졌다는 것이리라.



바로 직전 <마인드스케이프>에서도 '원본'을 가져오기 어려워 스캔 및 재인쇄한 노르웨이 크로키 연작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주 간단한 선으로도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관람했다.

사정상 반출이 어려운 외국 작품이나 외부 노출이 길어지면 안 되는 유물 같은 경우, 이렇게 정교하게 만든 복제품으로 전시하곤 한다.

아마도 영원히 원본을 보지 못할 나의 감탄은 과연 무엇을 향한 것일까.

사본을 보고 느낀 감탄은 가짜일까?

관람자가 느낀 감정이 진짜라면 이 때, 그 사본은 원본과의 위상을 뒤집을 수도 있지 않을까?






도자 작품 원본, 그리고 3D프린터로 구현한 사본



로마인들은 오랜 세월이 다 지나 칠이 벗겨진 그리스 조각상을 보고서 자신들의 조각상 또한 희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진짜인 줄 알고. 이 이야기조차 수도 없이 정정된 상식이지만 그리스 로마 조각상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수 년 전 로마에서 '사실은 이랬답니다'하며 복원한 총천연색 조각상을 본 적 있다. 어색했다. 이미 나 또한 로마인들이 만든 복제품에 길들여진 탓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의 위용을 호화롭게 과시한 개막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들은 먼 조상이 총천연색 조각상을 세웠음을 알지만, 로마인들이 잘못 퍼뜨린 지식을 따라 짐짓 흰 조각상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전세계인은 감탄했다.

사본이 진본의 위상을 압도한 순간이다.



한때 '나보다 더 잘 찍은 사진 인터넷에 많다'며 사진을 포기했었다. 내 사진을 명확하게 진본의 열화, 그 중에서도 더 못 만든 열화품이라고 인지했기 때문이다. 해서 한동안은 정말 어디를 가든 아무것도 찍지 않았다.

그러다 요즘은 기억을 이끌어낼 매개가 필요해 다시 사진을 남긴다. 당연히 그 사이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지는 않았다. 아직도 내 눈보다 더 잘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많다. 그것을 찾아봐도 되는데 굳이 카메라 어플을 켜는 이유는 무엇인가?

행위의 주체자가 '나'이니까.

포즈나 구도가 어색해도 '나'라는 필터를 한 번 거쳐서 본 세상은 남이 찍어서 보여 준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에 대해 요즘 다시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다-맞는 말이다. 기록을 더 멀리까지 전달하는 쪽이 최후의 승자다. 이겨서 기록이 남는 게 아니라.

얼마 전 넷플릭스의 네안데르탈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내린 결론과도 같다. 네안데르탈인은 훗날 호모 사피엔스들이 던질 숱한 오명과 모욕을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들의 마지막을 남겼을 뿐. 오랜 시간이 흘러 어떤 사피엔스들이 결국 그것을 발견했다. 아직도 수많은 억측과 신비가 남아 있지만, 그들의 오명은 점차 벗겨지고 있다.


남기는 자가 이긴다.


그러니 네안데르탈인은 아직까지 사피엔스에게 지지 않았다.






우리는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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