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 손상 없을 듯한 찐초록이 안정감을 준다고 쓴 날 저녁 몬스테라 줄기 벌브가 무름병에 걸렸다. 뿌리가 잘 나는지 들어 봤는데 흐물흐물해서 요모조모 눌러보고 알았다. 당근으로 유리병째 사 온 것을 집에 둔 지 5일 만이다. 무늬종이 겁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일반 몬스테라였기에 더 놀랐다.
왼쪽은 판매자 사진, 오른쪽은 어제 우리 집.
이제 보면 처음부터 좀 물렀던 듯도 하다. 벌브 무름이 뭔지도 몰랐었기에 열심히 검색했다. 줄기 무름병은 알보나 무늬 몬스테라 같은 변이종에서 주로 있나 보다. 일반 몬스테라는 물에 꽂거나 심기만 하면 괴물처럼 자라난다는 후기만 많았다. 하지만 남들이 아니라도 내가 당첨되면 100%. 이제부터는 이 몬스테라를 살려야 한다.
흐물흐물 힘없는 뿌리를 조금씩 자르다 결국 기근만 남기고 뎅겅뎅겅 잘랐다. 줄기도 최대한 잘라냈다. 벌브를 알코올솜으로 닦아 말리고 다시 젖지 않게 조심하여 유리병에 넣었다. 물은 기근 일부만 담기도록, 바닥에 살짝 깔리게끔 넣었다. 그냥 벌브 자체를 다 잘라낼까 했지만 신엽이 한참 올라오는 중이라 더 손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반려식물박람회 출신 금전수도 살펴봤다. 여기는 또 곰팡이가 슬었다. 증정품이라 쉽게 시작했는데 황당했다. 찾아보니 금전수는 워낙 물을 많이 저장하기 때문에, 물꽂이 전 최소한 일주일은 말리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역시 모든 생물은 각자에게 맞는 환경이 있나 보다. 신문에 둘둘 말아 원래 있던 북향방 테이블에 눕혀뒀다. 일주일간 여기서 요양한다.
집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서 북향방도 겨울 분위기로 바꿨다. 수경식물은 기분 따라 화기를 손쉽게 바꿀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앞의 폴란드 커피잔에 놓인 아이들은 신엽 나서 성급하게 잘랐다가 뿌리가 손상된 케이스다. 지금 사실상 절화와 같다. 미안했다. 좀 여물어지면 그때 진행해도 좋았을 걸, 번식이란 걸 해 보고파 지나치게 서둘렀다. 처음부터 다사다난했던 스킨답서스의 고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나로 인해 고생한 옐로 무늬싱고니움, 몬스테라, 스킨답서스에게 오늘 액체비료를 선물했다.
인터넷쇼핑으로 온 스킨답서스가 상해서 한동안 당근만 찾다가, 이번 몬스테라 건으로 당근마켓에도 흥을 약간 잃었다. 이제는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전문가들이 상품성 좋게 만든 상품을 구해올 것이다.
하지만, 비싼 알보몬스테라도 아닌데 굳이 당근으로 산 이유가 있다. 잎이 너무 귀여웠다. 판매 상세페이지를 아무리 보아도 같은 상품을 구할 수 없지만 당근마켓은 그것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 봐도 참 귀여운 잎이다. 디자이너가 그린 도안 같다. 기근만 절반 잘라 남겨둔 상태이니, 모쪼록 물 잘 마시고 소생하기를.
적당한 간격은 인간관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요리조리 들어서 살피지만 않았어도 형광스킨답서스가 더 쉽게 안정됐을 것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궁금했었다.
형광이가 수난을 겪는 사이, 흙을 파헤치기 번거로운 스파티필름은 자구에서 신엽을 내고도 콩알보다 작은 자구 둘이 더 생겼다. 약한 아이 신경 쓰고, 아침저녁으로 안스리움 화분 옮기고, 싱고니움 분갈이한다고 일을 벌이다 삭발시킨 동안이다. 비료도 먹은 적 없이 가끔 햇볕만 보여줬으나 묵묵히 할 일을 했다. 그 사이 스킨답서스는 집의 웬만한 화기를 모두 옮겨 다녔다. 얼핏 기억에도 물갈이를 제외하고 6번 이상은 옷을 갈아입었던 듯하다. 쓰다 보니 역시 형광이에게 미안하군. 성장세가 너무 좋다길래 화분에 옮길 생각은 없었는데 봄에는 이제 형광이를 심어줄까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