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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천권 Sep 27. 2023

변화가 찾아왔다

눈치채지 못한 첫 만남

매 주일 저녁이면 인조잔디가 잘 깔린 풀 사이즈 운동장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운동을 함께 한다. 캐나다 온 뒤로 몇 년째하고 있는 일정이다. 한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이보다 좋은 게 있을까 싶다. 한번 모이면 25분 4 쿼터의 경기를 한다. 나는 운동을 하러 왔으니 열심히 해야지, 일주일에 한 번이니 다 풀고 가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리고 공을 찬다. 수비수를 할 때도 있고 공경수를 할 때도 있다. 어느 위치도 상관없다. 나는 운동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수비를 보던 어느 날 상대방이 우리 골대 쪽으로 찬 공을 걷어내려고 굴러오는 공을 차려고 다리를 뻗었다. 그런데 살짝 내 발이 밀리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순간적인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일이 장차 내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그 당시는 몰랐다.


어느덧 내 몸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대학 때, 100미터 12초를 달렸었다. 내 키는 170cm에서 조금 모자란다. 지금은 더 줄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해서 허벅지와 몸에 근육이 탄탄하게 있는 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갑작스럽게 학원 강사를 하면서 운동보다는 차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몸에 근육들이 점점 줄어드는 게 그때부터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꾸준히 했던 운동덕에 40대 후반까지도 그럭저럭 버티며 지내왔다. 최근 5년 동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몸의 변화들에 대해 무방비로 지내왔다.


언제부턴가 나이 드신 분들이 내게 50이라는 나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곳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그분들의 이야기가 와닿지 않았다. 그랬다. 남의 이야기였고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운동장에서 뵙는 어른들의 몸을 보고 내 몸을 비교해 보며 조금만 열심히 하면 내 몸은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을 변화는 생각보다 크고 강했다. 나라는 나무가 쓰러지는 느낌이었다. 파도가 나를 덮쳐서 그 아래 깔려서 살려달라고 신음하는 나를 본다. 그 신음을 다른 사람들은 못 듣는다. 그러는 사이에 육체적인 면의 변화에 추가로 정서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몸은 운동을 해서 어떻게든 다시 돌려보려고 하는데, 정서적인 변화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다. 마치 어른 아이 같았다. 물가에 혼자 내버려진 느낌이었다.


정서적 변화가 서서히 몰려오기 때문에 내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어느 정도 깊이 나를 잠식한 상태였다. 한국에서 태국으로 다시 캐나다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안정감이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정서적인 충격이 아주 크게 왔다. 캐나다 와서 ‘더 패키지’라는 드라마를 봤다. 2011년 스페인 순례자 길을 걷기 위해 프랑스로 입국을 했다. 프랑스 파리를 하루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프랑스를 패키지로 여행하는 그룹에 대한 이야기다. 한번 가 본 곳이라고 그래도 살짝 친한 듯 느낌을 가져봤다. 드라마 배경도 음악도 참 멋지다. 몽셀미셀 성 꼭대기 장면은 장관이다. 그 장면에서 아마도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그 감동은 대단했다. 프랑스의 특별 배려로 아무나 갈 수 없는  성당 탑 꼭대기를 올라가서 촬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몽셀미셀 https://ko.m.wikipedia.org/wiki/%EB%AA%BD%EC%83%9D%EB%AF%B8%EC%85%B8%EC%84%AC

관련자료는 검색해 보면 많은 정보가 있다.


여기 다양한 커플들이 나온다. 스타트업을 진행하면서 곧 계약이 될 듯한 기대를 가지고 여행하는 젊은 커플과 아내의 병을 알게 된 중년 커플과 아빠와 딸이 있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커플은 중년 커플이다. 속으로는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아내가 말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아내의 병을 알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저씨 이야기가 내게는 너무 크게 다가왔다. 함께 고생하며 살아온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내가 한번 했던 여행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아내가 원하는 나라의 여행을 찾지 못하고 이 패키지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내 모르게 남편은 절에도 가서 빌고, 성당, 교회 빌 수 있는 모든 곳에 가서 아내의 병 치료를 위해서 기도한다. 이렇게 순애보 같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아저씨. 하지만 여전히 아내에게 대하는 모습만 본다면 정말 답이 없는 아저씨 모습이다. 여행 후반부로 가서 두 사람이 따로 밤 여행을 하는데 두 사람이 다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함께 울고 난 뒤 부부는 화해를 한다. 남편의 이야기가 나를 찔렀다.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인데 어떡하냐고’ 이 장면에서 내 깊은 곳의 마음이 터졌다. 시골 우리 가정에서 내가 보고 들은 걸 생각해 봤다. 우리 부모님의 관계를 떠올려 보고 내 모습을 생각해 봤다. 사람은 보고 들은 것으로 사는 것이지, 말로 배운 것으로 사는 게 아니다. 그날 나도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보고 듣고 자란 것들을 받아들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나와 먼저 화해를 했다. 그래야만 내가 아내와 가족에게 나의 못난 모습으로 마주 할 수 있을 용기가 생길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서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고 난 뒤에 그즈음에 내가 아주 많이 변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이때 갱년기가 이미 진행 중이었나 보다.


갱년기를 지내면서 가장 힘든 건 나 자신이다. 이 시기의 나는 내 인생의 모든 못남을 일부러 찾아서 보는 것처럼 기억이 난다. 자꾸 난다. 그래서 더 힘이 든다. 지금 살고 있으면서도 실수가 있고 실패가 있는데, 지나온 날들의 수많은 실패와 실수가 계속 떠오르면 사람이 어떤 기분으로 살 수 있을까? 매일매일 아주 자주 실패감으로 살아가게 된다. 점점 우울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어쩌면 내재되어 있던 나의 우울감이 이때다 하고 튀어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사람 만나는 것이 어려워진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올 때는 그 만나는 동안 했던 이야기 중에 내가 잘 못 말했거나 제대로 전달이 되지 못한 이야기 위로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이전에는? 나는 그날 이야기 중에 내가 잘 이야기한 것과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은 것을 생각했었다. 그래서 실수를 해도 나는 행복했다. 좋은 점들을 더 많이 보는 사람이었으니까. 철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꼭 그런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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