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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천권 Sep 13. 2023

나의 기미상궁, 설레임을 위하여

기미상궁 TDS


일반 각 가정의 기미상궁은 아마도 그 집에서 미각이 제일 발달한 사람일 것이다. 옛날 궁궐에서 음식을 확인하는 기미상궁이 있었다.  네이버 사전에서 기미상궁은 “임금이 수라상을 받으면, 기미 상궁(氣味尙宮)은 왕이 수저를 들기 전에 검식을 하고 수라 시중을 들게 된다”라고 기미상궁의 역할을 설명한다. 나에게도 최근 내가 만든 커피를 검식허눈 기미상궁을 들였다.


에스프레소든 핸드드립이든 만든 커피를 기미상궁이라는 장비에 몇 방울 떨어뜨리고 측정하면 내가 만든 커피에 녹여진 커피 성분의 양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커피의 정체성을 알고 싶은데 미각과 후각으로만  파악하기엔 그때그때 내 몸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인터넷을 보다가 커피 성분을 파악할 수 있는 장비를 알게 되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내 기준으로 가격이 홈카페에서 지출하기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백만 원이 넘는 장비를 홈카페를 하면서 구입하기엔 아내의 눈치를 보기 전에, 나 스스로 내 호기심을 내려놓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거의 포기상태였는데 내가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적당한 가격의 장비가 있다는 걸 알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판매처에 직접 가서 여러 가지 커피 관련  이야기도 듣고 구매했다. 기미상궁 나에게도 있다!


기미상궁아, 이 커피는 어떠냐?

기미상궁을 데려온 후로는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면 커피농도(TDS)를 측정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 농도를 확인할 수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커피를 만들 때는 이제까지의 경험 데이터와 지금 이 커피의 조합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커피 20그람을 저울에서 무게를 확인하고 그라인더의 눈금을 확인하고, 커피를 투입하고 적당한 굵기로 갈아서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커피를 내릴 때, 물온도를 93도로 해서 물 붓기 방식은 이 커피는 순하게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가체프니까 비니엄홍 방식이 좋겠다. 내려진 원액 커피를 조금 맛을 보고, 이 정도면 커피와 물을 1대 8 정도로 추가하면 마시기에 좋겠다. 이렇게 판단을 해서 저울을 사용하던 눈대중으로 하던 내가 생각한 양의 따뜻한 물을 추가해서 마신다. 이런 내 나름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커피를 만들기 시작하고 만드는 과정에도 사람의 손인지라 약간의 실수가 나와도 적당한 선에서 나 스스로에게 합의를 하면서 만들게 된다.


내가 잘 아는 원두로 커피를 만들 때는 실패할 확률이 확실하게 줄어든다. 맛과 향 그리고 배전도가 전혀 다른 원두를 만나면 여러 번 커피를 만들어 봐야 조금은 내 입에 맛게 커피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기미상궁 덕분에 횟수를 줄 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미상궁이 맛을 검식하고 디지털 데이터로 내가 만든 커피의 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보너스 설레임을 갖게 된 것이다. 커피를 만들 때마다 핸드드립은 특히나 기대를 한다. 이렇게 했더니 이맛이 나오네? 그럼 이렇게 물줄기를 조절해 주면, 그렇지 이 맛이 더 강조가 되는데, 그럼 물온도를 조금 올려서 약간 너티한 맛이 나게 해 볼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커피 내리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뭔가를 수정하고 내가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면 그 기쁨은 참 좋다. 화려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다. 조용히 좋다.


커피를 만들고 기미상궁을 꺼내고 측정 준비를 한다. 깨끗한 물을 준비해서 스포이드로 커피를 옮기고 스포이드를 씻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모바일 앱에서 표시되는 숫자를 본다. 그렇게 알게 된 나의 커피 습관은 아주 연한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디지털 장비가 없었으면 다른 사람들의 입이 강한 커피에 노출이 많이 되어서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끝났을 이야기가 장비하나 추가로 커피에 대한 궁금함에서 사람에 대한 궁금함으로 옮겨간다.


내가 아는 그분은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 대체로 자기 성향이 강한 분들은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주변에서 만난 성격이 무난한 사람들은 어지간한 커피는 다 좋다고 한다.. 연한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내면이 부드럽고 상처받기 쉽다. 성정이 연해서 쉽게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받기도 한다.  뭐 정답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정도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와 비교해서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성향을 커피 한잔을 나누며 생각해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도 조심한다. 주제 선택도 신경을 쓴다. 커피 한잔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낯선 사람을 만나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금방 말을 하게 된다. 비단 커피만 그렇지는 않겠지만 너무나 흔하게 만나는 커피인지라 사람과 소통하게 하는 좋은 도구임에는 틀림 없다.


어떤 분들은 커피 맛을 잘 모르지만 만든 사람을 생각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봉사하는 커피의 맛을 어떻게 느끼는지 굉장히 궁금해한다. 사람들에게 커피를 제공하고 커피 맛에 대해 물어보면 나름의 커피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은 10-20% 정도의 사람이라는 걸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친척들이 모일 때, 내가 커피를 만들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설탕을 기본으로 준비해서 달달하게 만들어 드린다. 어른들은 달달한게 맛있다고 하신다. 상황에 따른 서비스의 차별화가 커피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선물한다. 결국은 커피를 서비스 하지만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배려를 드리는 것이다. 바리스타의 마음으로 어디서나 커피를 대접할 때는 자주 묻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커피를 드릴려고 애쓴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행복하다 좋다 그런 표현들이 나올 때, 감사하다. 그래서 또 다른 누군가를 설레이며 기다린다.


설레이게 하는 사람들

나를 설레이게 하는 일 중 하나는 커피 맛을 잘 아는 사람을 소개받고 그 사람에게 커피를 만들어 줄  때다. 우리 집을 방문한 경우면 기본적으로 4-5가지 커피를 제공한다. 에스프레소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적당한 설탕을 가미해서 주면 첨엔 굉장히 부담스러워한다. 내가 설명을 하면 그들은 조금씩 시도해보고 결국은 바닥을 긁어서 마무리 한다. 맛있단다. 에스프레소가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거냐라고 묻는다. 그날이 더우면 아이스 아메리카도 핸드드립을 내린다. 이런저런 대화 가운데 집에 있는 다양한 커피로 여러 가지 맛을 보게 한다. 어떤 경우 내가 구입한 커피가 그 사람도 집에 있는 커피라면 그 커피를 사용해서 만들어 맛보게 한다. 그러면 정말 이게 그 커피로 만든 거냐고 묻는다. 보통은 단순하게 늘 먹던 방법으로 먹기 때문에 커피의 다양한 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가지 커피로 다양한 방법으로 커피를 만들어 본다. 핸드드립도 몇가지 방식으로 내려 본다. 그 중 제일 좋은 방법을 최대한 기억했다가 손님이 오시면 대접한다.


재료가 어떤 물과 몇 도에서 만나 어떤 방식으로 만드냐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것이다. 내가 마시던 커피도 다른 분이 내려주면 다르게 맛있다. 커피는 정적인 음식이 아닙니다.’ 멋있다. 이런 말을 하다니 속으로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이렇게 되는 게 보통의 그림이다. 내 나름대로 유튜브를 통해서 다양한 핸드드립을 연습해 보고 내가 실제로 사람들을 만났을 때 활용할 수 있는 드립을 평소에 연습해 둔다. 그 결과를 이렇게 사람을 만났을 때 보여준다. 그리고 설명을 해 준다.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커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하는 게 있다. 커피 3알을 입에 넣고 그냥 끝까지 씹어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경험은 보통 잘 없기 때문에 불안한 표정으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본다. 그리고 대다수가 ‘야 이렇게 해도 커피 맛이 나네요’라고 한다. 어느 커피 가게를 방문하더라도 바쁜 가게가 아니면 커피 3알을 달라고 부탁해서 씹어 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커피가 맛있으면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커피 그대로를 맛볼 수 있는 커피를 마셔도 좋지만 씹었을 때 커피 맛이 내 입에 맞지 않으면 커피를 꼭 마셔야 할 경우가 아니면 다른 걸 마시든지, 커피가 든 음료를 선택해서 라떼 같은 다른 걸 섞은 음료를 마시라고 이야기해 준다. 커피 3알을 씹는 게 뭐라고 하지만 이 경험으로 그들은 커피 나라에 발걸음을 한 걸음 내딛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이 사람들은 이걸 시험해 본다. 그러면서 자신의 커피에 대한 지식을 슬쩍 자랑하는 것이다.


내가 만든 커피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장비가 있으면 맨날 설레일 줄 알았는데, 이게 몇 번을 큰 설레임으로 테스트해 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장롱에 두고 잘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잠재적 설레임으로 존재한다. 새로운 커피를 선물 받으면 다시 꺼내어 기미상궁 당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게 잠을 깨워서 꺼낸다.


자유에 대한 설레임

커피 맛있다로 끝인 사람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만난 커피를 매일 매번 만들 수 있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면 어떤 사람은 매번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로 와서 사 먹어할 겁니다. 그런데 항상 올 수도 없답니다.  내 입에 맞는 커피를 내가 원할 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 자유롭습니다.  네, 자유롭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커피도 직접 볶아요. 내 커피만 고집하지는 않아요 고집이 나타나면 바로 꼰대가 됩니다. 자유로움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며, 내가 원할 때 그 자유를 충분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충분한 배려가 있는 자유는 아름답습니다. 자유인은 그 자유를 혼자만 누리기 위해 숨기거나 모른 척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가 누리는 자유를 소개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몇 번 커피를 제공하다 보면 각 사람이 추구하는 커피의 농도와 맛을 알게 되고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번엔 묻지 않아도 그 사람이 원하는 커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일반 카페 같으면 고객을 만드는 겁니다.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이 관계는 고객을 편하게 합니다. 설레이게 합니다. 오늘도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주겠지?


홈카페는 자유입니다

다만 그 자유를 누리기까지 커피와 장비와 내가 친해져서 내가 선호하는 맛의 범위 안에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내 나름의 능력을 갖추는 훈련장입니다


시간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이 훈련을 즐길 수 있는 훈련장입니다 훈련이 기쁨인 곳이 홈카페입니다. 자발적인 훈련이가 때문에 목표한 그것을 해내기까지 내가 시간과 과정을 조율합니다. 그래서 훈련의 부정적인 상당히 면이 제거된 긍정적인 면이 많은 훈련을 경험하는 곳이 홈카페입니다. 훈련이라는 단어가 가진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경험할수록 나의 내공이 깊어질 것입니다. 자아가 성숙해지고 자존감이 회복됩니다. 내가 스스로를 강하게 훈련한 만큼 새로 배우는 사람들을 배려하게 됩니다. 홈카페는 돈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관계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자유, 휴식 그리고 기쁨

홈카페는 자유와 휴식 그리고 고요함 그리고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그때에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를 만들고 홈카페 나를 위한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먼저 그 길을 본 사람이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심스럽게 권할 수 있겠죠? 좋은 드라마나 영화를 권하듯이요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커피 맛조차도 열린 질문을 합니다. 어떤 강요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느끼는 경험들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기애  제 경험은 참고 자료만 될 것입니다.


결코 답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여정을 방해하는 것이 되면 안 됩니다. 그 사람도 이 여정을 즐길 자유가 있는데 그 자유와 기쁨을 뺏지 않아야 합니다


* 이 글을 적던 당시 나는 코 수술을 한 후 맛애 대해 불신과 불안정 상태였습니다. 후각의 상실이 미각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평생 이런 충격적인 경험을 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모를 겁니다. 실제 코 수술 후 100%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는다? 않을 수 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지금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게 완전히 회복된 건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지낼만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선물을 하며 위로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주변 사람들, 가족을 포함해서, 에게 섭섭해하지 말고 해달라고 하고, 아니면 나를 위한 지출도 하세요. 지금의 홈카페는 그런 절절한 심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나중에 제가 좀 회복이 되고 나서는 가족들에게 살짝 미안한 맘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매일 맛있는 커피를 마십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제 커피가 맛있는지 모를 때도 있는데, 밖에서 다른 걸 사서 마시면 그게 맛없는 건 알겠답니다. 우리 미각은 깍쟁이라 좋은 맛과 향에 금방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가족의 소중한 사랑과 배려를 금방 익숙해져서 고마움을 모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가끔 낯선 곳에서 낮은 서비스를 받고 불편한 생활을 해 보면 대번에 집이 좋구나 하죠 맞아요 집이 좋습니다.


집에 나를 가장 설레이게 하는 가족과 삶이 있으면 가장 행복하겠죠? 홈카페, 홈라이브러리를 만들어서 그 공간에 들어가면 집과는 분리되도록 하시면 어떨까요? 오늘은 어떤 설레임이 있으신가요? 방금 만든 라떼를 옆에 두고 창밖을 보며 시간을 누리며 글을 적어 봅니다. 가을로 걸어가는 계절을 봅니다. 캐나다는 이제 점점 화창한 날이 줄어들고 우기로 접어들겠죠? 해도 일찍 지고 늦게 뜨서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 우울함이 우리집에 오지 못하도록 행복으로 가득가득 채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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