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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of Kims Apr 26. 2022

2020년대 졸업생은 무조건 컨설턴트가 돼야 하는 이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내가 현재 직장에서 일한 지 만 7년 만에 퇴사와 이직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있는, 개인적으로는 큰 변화의 한가운데다. 세부 직함은 늘 바뀌어 왔지만 사회생활 거의 대부분을 "컨설턴트"라는 직업 안에서 일해왔고, 이직하는 곳에서도 컨설턴트라는 타이틀은 계속 따라다니게 된다.


큰 차이가 있다면, 지금까지 십 수년간 내가 해 온 일은 다양한 업종과 규모의 여러 외부 고객사를 무차별적으로(?) 상대하는 단기 프로젝트 위주였는데, 새로운 곳에서는 로펌이라는 하나의 업종, 그리고 한 회사의 내부에서만 일한다는 점이다. 이전 직장의 사람들을 외부 컨설턴트로 불러들여 업무를 진행할 수도 있는, 흔히 말하는 "갑을 관계"의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변화이기도 하다. 더 이상 근무의 일거수일투족을 타임시트에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혜택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신선함도 기대된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외부의 고객이 내부의 고객으로 바뀌는 것뿐, 컨설팅이라고 하는 직업의 본질은 똑같(을 것 같)다.


요사이 컨설팅이라는 직업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컨설팅, 컨설턴트를 한국어로 대체할 만한 단어로 쉽게 떠오르는 건 기획, 기획자 정도가 있겠는데, 일반적으로 기획이라고 하면 접근법, 계획, 아이디어는 강조하고 실행, 도입, 구현, 평가라는 면을 등한시하는 느낌이 있어서 만족스러운 번역은 아니다. 굳이 대체하지 않고 그냥 컨설팅, 컨설턴트라고 부르겠다.


일단 교과서적으로 접근하면, 컨설팅의 두 갈래는 첫째로 사업이 나아갈 방향(direction)에 대해 조언하는 것, 둘째로 사업 또는 작업의 효율(efficiency)은 높이고 비용은 줄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방향에 대한 조언은 일반적으로 경영 또는 전략 컨설팅 업체가, 효율의 최적화 문제는 기술 컨설팅 업체가 주로 맡는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한정된 기간 동안 빌려서 쓰는 조언자 내지는 기술 전문가 개념이다.


그런데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 이런 식의 정의는 컨설팅이라는 직업을 너무 좁게 해석한 거다.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의 상품이 "시간"을 들여 내놓은 전문성 있는 조언 또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결과물(deliverable)이라면 그 사람은 컨설턴트다. 컨설팅이라는 간판을 단 기업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기업 고객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 대 비즈니스 (B2B) 거래가 아니어도 말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의사, 연구원, 교사, 강사, 변호사, 퍼스널 헬스 트레이너, 헤드헌터, 디자이너, 탐정, 광고 제작자 등 수많은 업종들이 컨설팅이라는 범주에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이 사람들의 직함은 개인의 고유한 직무 또는 전문 분야 (예: 법무, 인재 발굴, 이민, 디자인, 데이터 시각화, 홍보, 스포츠 지도, 조경 등) 뒤에 그냥 "컨설턴트"를 갖다 붙여도 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이것 또한 좁은 관점이다. 사실 컨설팅을 얘기할 때 업종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직급, 연차, 전공 분야와도 전혀 무관하다. 그 사람이 몸담고 있는 업종이 뭐든,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 컨설턴트의 마인드로 업무를 처리하고 고객을 상대하고 자신의 입지를 굳혀 나가면 그가 곧 현실의 컨설턴트다. 자재의 반입과 소비를 모니터 하는 사무 보조원은 공급망 관리 컨설턴트가 될 수 있고, 소매점에서 판매를 맡은 사람은 비즈니스 협상 컨설턴트가 될 수 있으며, 도서관의 사서는 리서치 컨설턴트가 될 수 있다. 아니,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자신의 직무를 컨설턴트의 그것으로 전환해야만 인공지능 시대에도 직업을 갖고 경제 활동을 이어나가는 인구에 속하게 된다.


그렇다면 컨설턴트로서의 마인드, 컨설팅 마인드란 구체적으로 뭘까. 컨설팅의 기본 목적은 문제 해결(problem-solving)이다. 여기에는 막다른 벽에 부딪힌 상황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식과 발상의 전환, 늘 하던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것,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개선의 여지를 찾아내는 것과 같은 방식의 가치 창조(value-add)가 모두 포함된다.


이렇게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지금부터의 "나"는 컨설팅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갖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자신을 지칭한다.


먼저, 내 분야에서 권위를 가진 전문가(SME: subject-matter expert)로서 내공과 입지를 다지는 게 기본이다. 이것은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거나 자격증을 딴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은퇴하는 시점까지 멈추지 않고 나의 업무 성과와 지적재산 포트폴리오의 컨텐츠를 계속 쌓아가는 걸 의미한다. 이 분야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나야 나,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 조언에 권위가 실리는 그런 단계를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의 권위란 상하 관계나 직급의 높고 낮음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불편한 진실 하나를 얘기하자면, 일반적으로 "내" 주위에서 나 자신보다 직급이나 연륜이 높은 사람들이 그들의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만한 지적재산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있다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보고 배워야 할 롤 모델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극히 드물거나 전무하다. 그들의 프로필은 열에 아홉 "무슨 무슨 분야에서 이십 수년간 경력을 쌓은 전문가"로 시작해 그걸로 끝난다. 이십 수년 동안 쌓아온 전문 지식, 관점, 철학을 응용한 그분들만의 컨텐츠는 어디서 발견하고 배울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뒤집어 말하면 이것은 곧 "나"의 기회다. 전문성이니 지적재산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 거창하거나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찌 됐건 나의 고객/조직/팀/상사보다 한 걸음 이상 앞서가면 된다. 정보를 생산, 배포할 방법이 넘쳐나는 지금 시대에 석박사 논문만이 나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글이 됐건 말이 됐건 발명이 됐건 어떤 채널이 됐건 나의 지적재산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정보가 전문성을 증명하는 지적재산인 건 당연히 아니지만, 전문성을 증명하는 모든 지적재산은 인구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는 정보의 소비자가 아닌 소수의 생산자에게서 나온다.


다음으로, 내가 컨설팅 고객으로 삼은 기업, 팀, 또는 개인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모든 컨설팅에는 고객이 있다. 좁게 보면 나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는 내 상사/감독/건물주/교수가 고객이다. 고객이 누가 됐건 그들의 우선순위, 일하는 방식, 프로세스를 면밀히 또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어떤 개선점이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고객이 맡긴 업무를 수행하면서 왜 이 일을 나에게 맡겼는지를 고객(client) 또는 고용주(employer)의 입장에 서서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바라보면 나에게 주어진 작업 너머 또는 행간(between the lines)에 숨어있는 문제의 본질을 발견하기도 한다.


간단하면서 실질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항상 이메일로 접수받아 온 어떤 워드 양식(form) 안에 지금보다 더 많은 각주, 지시 사항, 가이드라인을 집어넣는 작업 대신, 사용자가 입력한 데이터의 문제점을 접수 이전에 능동적으로 잡아내는 온라인 앱을 만든다면? 이 같은 현대화, 자동화된 접근 방식을 제안하고 실현 가능성(proof of concept)을 보여줌으로써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면 나의 현재 직함과 직급에 관계없이 컨설팅 마인드로 성과를 이룬 것이다.


또 하나 컨설턴트로서의 자세는, 질문에 단답형 대답 대신 가정(assumption)을 전제로 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질문자의 질문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예스/노를 말하는 건 부적절하다. 컨설턴트인 나 자신이 이해한 상황이 무엇인지를 먼저 명확히 하고 (그게 질문 자체를 되풀이하는 수준일지라도) 그 같은 이해가 진실일 경우 이러이러한 옵션들이 성립하며 그 가운데 내가 최선의 길로 꼽은 건 이것이고 그 이유는 이러이러하다,라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모든 컨설팅 질문에 대한 기본 대답이 영어로는 "It depends, " 한국어로는 "케바케"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의 성과를 수치화(quantify)할 수 있어야 한다.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전에는 얼마나 느렸던/비쌌던/힘들었던 문제였는지 기록하고, 문제 해결 후 얼마나 빨라졌는지/저렴해졌는지/쉬워졌는지를 측정한다면, 나의 결과물이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업적이 되는 건 당연하다. 더불어, 수치화된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파워 BI와 같은 도구를 이용해 높으신 분들이 좋아하는 대시보드의 형식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글쓰기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숫자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이고, 그 둘이 합쳐지면 의사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면서 가장 시급한 질문, 즉, "지금 우리에게 가장 답이 필요한 질문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할 수 있게 된다.


결론은, 컨설팅 마인드를 갖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지금 어떤 업종, 어떤 조직, 어떤 직급에 있든 관계없이 1인 컨설팅 기업인 것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시를 기계적으로 따르기만 하지 않음, 현 상태를 세심히 관찰함, 권위 있는 지식에 기반해 문제 해결에 나섬, 그리고 자신이 내놓은 결과물에 책임을 지는 자세 모두를 포함한다. 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컨설팅이 만지거나 먹을 수 있는 현물이 아닌, 사람의 "시간"을 파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계는 스스로의 시간에 가치를 매겨 팔지 않는다. 내려온 지시 사항을 기계적으로 최단 시간 안에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그 같은 지시 사항을 창조, 개선, 파괴하는 건 다름 아닌 컨설팅 마인드, 기획력,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인간들이다.


직장에서 최근 신입, 경력 사원 채용 인터뷰를 다수 맡아서 진행하면서, 또 수개월 전 입사한 신입 사원들이 각자 성장하고 적응하는 속도가 천차만별인 것을 관찰하면서 컨설팅이라는 직업에 선천적으로 잘 맞는 타입과 그 반대가 있는 건지 자문하게 되었다. 언젠가 따로 다루게 될 주제인데,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 사원이 컨설팅에 어울리지 않는 유형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컨설팅 간판을 단 회사에서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오랜 기간 하는 게 좋거나 정답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컨설팅이라는 직무가 요구하는 마음가짐(mindset)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은 2020년대에 커리어를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더 솔직하게는 15-20년 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다.


[이 글은 필자의 영문 링크드인 기고문을 한국어로 재적용,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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