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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of Kims Apr 26. 2022

위대한 퇴사? 묻지 마 퇴사! "그레이트 레지그네이션"

한국에서만 모르고 있는 the Great Resignation

팬데믹 이후 시대에 "그레이트 리셋", ESG, 탈중앙화만큼이나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는 현상들 가운데 이상하리만큼 한국 매체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the Great Resignation "그레이트 레지그네이션"이다. 2022년 4월 현재까지 이 현상을 다룬 한국어 기사 또는 사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떤 용어로 불러야 할지 조차 애매하다. 2021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북미, 서구권, 그리고 남반구 주요국들의 많은 기업들이 주시하고 전전긍긍해하고 있는 이 현상의 영어 이름을 직역하면 "대(大) 퇴직" 정도가 되겠는데 만족스러운 의미 전달은 아니다. "위대한 퇴사"는 더더욱 아니다. 가장 근접한 의역을 굳이 쥐어 짜내 보자면 "대량 사직" (대량 해고는 아니므로), "인력의 대거 이탈" 또는 "묻지 마 퇴사"가 되겠으니 여기서는 "묻지 마 퇴사"라고 칭하고 얘기를 풀어 나가 보자.


일단,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이 같은 묻지 마 퇴사 현상이 "남의 나라" 이야기인 듯하다. 그 이유로는 경제 현실과 동떨어지고 획일화된 최저 임금, 이민에 의존하지 않는 노동 시장의 구조,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지 못하도록 규제한 데 대한 불만, 늘어나지 않는 청년 일자리 등을 복합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게다가 사회 통념상 "퇴사"를 무모한 행동으로 바라보고, 어딜 가든 연차를 따지고, 정규직이라는 신분에 목숨 거는 정서가 강한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본격적인 인구 절벽을 경험할 한국의 입장에서 다른 선진국들을 광풍처럼 휩쓸고 있는 묻지 마 퇴사 현상에 계속 무관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묻지 마 퇴사 현상의 표면적인 정의는 이렇다. 팬데믹 이후 이동과 접촉이 다시 자유로워지면서 기업들이 원격 근무를 폐지하고 사무실로의 완전한 복귀 또는 일정 시간 이상 사무실 근무를 강제하게 되면 많은 직원들이 여기에 반발해 망설이지 않고 퇴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원격 근무라는 것이 결국 아무리 팬데믹이 끝났다 하더라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국가 간 이동의 불확실성,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대면하는 업무에서의 마스크 필수 착용처럼 이전으로는 절대 되돌아갈 수 없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가운데 하나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표면적" 정의인 이유는 묻지 마 퇴사 현상이 원격 근무가 가능한 업종에만 딱히 한정돼 있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간호사 등 헬스케어 직종, 소매업 매장에서의 판매직 등 원격 근무가 해당되지 않는 곳에서도 묻지 마 퇴사 현상이 관찰되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이 될까?


전통적으로 이민을 통한 인구 증가가 이루어져 왔던 나라에서는 팬데믹을 기점으로 신규 이민과 취업 비자로 외국 인력을 수급하는 길이 끊긴 결과, 실업률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고 경제가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에 이르렀다. 호주의 경우 2022년 3분기 예상 실업률이 3.75퍼센트로 50년 만의 가장 낮은 실업률 달성을 앞두고 있다. 그만큼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같은 업종간 수평 이직이 수월해졌고 결과적으로 고용주(employer)의 입김이 약해지면서 원격 근무와 관련이 있든 없든 무언가를 강제하는 사측의 결정에 즉각 반발하고 그것이 별다른 망설임 없는 퇴사로 이어지는 빈도가 높아진다, 라는 자연스러운 해석이 나온다.


약간 논외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은 팬데믹이 한 나라의 정치와 경제에 가져다준 긍정적인 면이라고 보는 시각도 분명히 있다. 외국인들과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긴다는 고질적인 불만을 바이러스가 한 방에 잠재웠으니 정부로서는 팬데믹 이후 관광업의 재개는 반기면서도 이민에 대해서는 선뜻 빗장을 풀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다음으로, 묻지 마 퇴사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정작 중요한 것, 즉, 인재 유출과 확보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어떤 솔루션이 있는지를 알아보자.


먼저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현상의 본질이 원격 근무, 사무실 근무, 그리고 그 둘을 절충한 이른바 하이브리드 근무 등 근무 형태의 우열을 가리는 게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히 원격 근무를 금지하는 게 싫어서 퇴사를 한다, 라는 인식으로 접근한다면 묻지 마 퇴사를 오히려 부채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조금 뒤에 다루겠지만, 핵심은 "묻지 마"라는 전제를 깨고 물어야 하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시대에 기업의 입장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일반화(generalisation)에 기반한 인사 정책 또는 전략 수립이다. "우리 회사는 어떤 형태의 근무가 가장 적합한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이 되는지를 근본적으로 의심해야 한다. 이 질문에는 한 업종 전체를 일반화하고 그것을 사업상 판단 기준으로 삼는 위험한 발상이 깔려있다. 물론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보다는 더 합리적인 판단 기준을 적용하려고 한다. 지역별, 사업장별, 직무별 특성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회사 자체의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내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사무직 = 원격 근무 가능 = 사무실 복귀 강제 시 묻지 마 퇴사"와 같은 단순한 인식으로 흘러가거나, "A지역 B사업장 C직무 = 주 3일 이상 사무실 근무"라는 식의 기계적 통보가 된다면 묻지 마 퇴사에 대한 솔루션이 될 수 없다.


지난 2년 동안 기업들은 좋든 싫든 기존의 근무 형태를 깨는 실험을 했고, 그것이 조직의 성과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데이터로 축적해 왔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얼만큼의 결과물이 나오는지 학습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나온 결론이 간단명료한 전사적 방침이 되기는 힘들다. "우리 회사는 앞으로도 계속 모든 직원들이 원격 근무를 한다" 또는 "우리 회사는 이 날을 기점으로 모든 직원들을 사무실로 복귀시키고 원격 근무를 폐지한다"와 같은 결론을 용감하게 내리는 기업들은 극소수다. "최소 주 3일 사무실 근무" 방침을 발표했다가도 직원들이 호응하지 않는 걸 보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기업들도 있다. 이 말은 곧 수많은 기업들이 지난 2년 간 모은 데이터로 내릴 수 있는 명확하고 일괄적인 지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 영어로 "It's complicated"인 것이다.


현실은 이렇다. 묻지 마 퇴사 현상에 대한 연구 결과나 백서(whitepaper)를 아무리 들이밀어도 결국 특정 직원에게 유효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근무 형태는 그 직원 스스로만이 알 수 있다. 뻔한 말 같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매주 월, 수, 금 오후 세 시에 가족 구성원 누군가를 외부에서 픽업해야 하는 사람은 그 전후 30분 동안에는 사무실에 있을 수도, 집에 있을 수도, 화상 회의에 참석할 수도 없는 대신 잃어버린 만큼의 시간을 다른 곳에서 떼어내 혼자서 수행 가능한 업무로 보충한다. 이와 같은 업무 외 책임뿐 아니라 개인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경력 관리 측면에서의 지향점 내지는 목표, 몰입할 수 있는 환경 등 본인에게만 해당하는 요소들을 종합해서 지난 2년 동안 테스트하고 다듬어 온 패턴이 바로 그 사람에게는 최적의 근무 형태가 된다.


따라서 고용주의 역할은 직원들에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을 할지를 통보하거나 강제하는 것이 아닌, 근무 형태(way of working)의 개인화(personalisation)가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같은 개인화가 앞으로는 기업의 모든 인사 관련 프로세스에 가장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할 전제가 되어야 하며, 인재의 확보 그리고 유출 방지라는 관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당연히 드는 질문: 그렇다면 직원들은 스스로 찾아낸 최적의 근무 형태를 개인화라는 이름으로 사측에 요구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물론 아니다. 개인화라는 것도 회사가 정한 허용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허용 범위라는 것의 대표적인 기준을 몇 가지 꼽자면:


업종의 특성 (당연한 얘기지만) - 지식 산업, 자원 관련업, 제조업, 물류업, 소매업, 헬스케어 등 각각의 업종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다르다.

회사의 업종 안에서 해당 직원이 수행하는 직무의 특성 - 예를 들어 요양 병원의 간호직은 애초부터 원격 근무를 고려할 수 있는 직종이 아닐 확률이 높다.

팬데믹 기간 동안 회사가 실험, 학습한 결과 가능하다고 증명된 근무 형태

회사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할 의지와 여유가 있는지 여부

제시된 근무 형태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지 여부

금전적인 부분 외에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

적용되는 법 체계


위와 같은 테두리 안에서 직원 개개인의 입장과 그들이 선호하는 근무 형태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개인화된 재검토 과정(review process)을 통해 건설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기업이어야만 인재의 대량 이탈을 막을 수 있다.


더불어, 직원과 회사 양쪽 모두 각자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우선순위가 시시각각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적용하고 있는 근무 형태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필요시 조정해 나감으로써 직원 개인, 소속 팀, 그리고 회사 전체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종합해 보면, 팬데믹 이후 묻지 마 퇴사 현상의 시대에도 여전히 기업의 근본 역할은 소속 구성원들이 높은 생산성을 발휘해 기대한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은 먼저 안전하고 현대화된 근로 환경을 제공하는 게 기본이다. 특히 원격 근무가 비교적 수월한 지식 산업에 한정해 얘기하자면,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점점 대세가 돼가는 공유 오피스 트렌드를 관찰, 수용하고 최적의 시간, 최적의 장소에서 몰입과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찾아 나가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묻지 마 퇴사"라는 것은 용어의 부정적인 어감을 한 꺼풀 벗겨내고 보면 단순히 근무 형태의 개인화와 최적화를 위한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다. 그 본질은 전혀 급진적이거나 혁명적이지 않고 지극히 상식적이다. 여기서 멀리해야 할 것은 일반화인데, 통일성을 갖추는 것이 효율의 극대화로 이어진다는 대량 생산 시대의 경영 철학을 팬데믹 이후 시대의 근무 형태에 똑같이 적용하려는 시도야말로 직원들을 묻지 마 퇴사로 몰아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기업들은 깨달아야 하겠다.


[이 글은 필자의 영문 링크드인 기고문을 한국어로 재적용,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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